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
A.M. 홈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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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이 '갖고' 있는 자가 부자가 아니다. 많이 '주는' 자가 부자다. 하나라도 잃어버릴까 안달을 하는 자는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아무리 많이 갖고 있더라도 가난한 사람, 가난해진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부자다. 그는 자기를 남에게 줄 수 있는 자로서 자신을 경험한다.                

                                                                               _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아빠'란 존재에 대한 생각_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잠들기 전에 아빠 얼굴을 본 기억이 없다. 아빠는 늘 바빴다. 함께 놀 시간도 없었고, 함께 식사할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난 그런 의미에서 '바쁜' 사람이 싫었다. 난 이 다음에 결혼을 하면 나와 자주 이야기 할 수 있고, 결정적인 순간엔 일보다는 사랑을 택할 남자를 선택하고 싶었다.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살짝 스치듯 지나가는 마음이 아니다. 온전히 자신의 것들을 줄 수 있는 것.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누군가의 마음에 흠뻑 빠지고, 그 속에서 허우적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법.

 

 

언제든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면 자신을 만나야 한다고_

 

 어느 순간 여러 책을 만났다. 중요한 것은 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그것이 문제였다. 나는 점점 내 자신 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러면 그럴 수록 내 속에 갇혀 나를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나 자신을 알아간다는 건, 그 속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의 밖에서 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려면 완벽하게 내 바깥에 타인으로 존재해야 된다는 말이다. 그건 아이러니 하게도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자기 자신을 내맡길 때라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나를 알려면 나를 잊고 타인을 온전히 만나야 했고, 내 침몰했던 감정에서 벗어나려면 타인을 위해 내 온 힘을 쏟아야 함을 알았다.

 

 

리처드 노박에게 일어난 일_

 

 이 소설의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알 수 없는 통증이 시작된다. 도무지 자신에 대해 떠올려 봐도, 통증에 대해 떠올려 봐도 알 길이 없다. 어디서부터 시작 되었는지 또한 언제 시작되었는지. 기억도 사라지고, 존재도 사라지는 순간이다.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911에 구조 요청을 한다. 금세 통증이 사라지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노란 버터빛의 환한 도넛 가게를 발견하게 된다. 도무지 그냥 스쳐지나갈 수 없는 운명의 이끌림이 느껴진다. 인생은 때로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압도 당한다. 그것은 아마 제 속에 운명을 되돌릴 방향키가 우리를 어떤 곳으로 이끄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매일 그는 앤힐의 도넛 가게에 간다. 도넛 만드는 걸 진정으로 즐기는, 맛있는 도넛을 만들어서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한 부자라고 믿는 앤힐을 만난다.

 

 가족 모두에게 온 마음을 다해 애를 쓰지만 늘 불평만 되돌아오고, 자기 자신은 늘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생활에서 지친 신시아는 마트 농산물 코너에서 홀로 울고 있다. 그것을 본 노박은 그녀가 신경 쓰이고, 그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차를 몰고 가다가 앞차의 위험 신호를 알아차리고, 트렁크에 납치된 여성을 구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이고, 행복인지를 알게 된다. 보답을 바라지 않고 온 마음을 다해 타인을 돕는다는 게 얼마나 쓸모 있고 기쁜 일인지를!

 

 

이 책이 내게 준 것들_

 

 나에게 좋은 책이란 정답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물론 정답을 알려주는 책은 없다. 내게 좋은 책이란 내가 잊고 있었던 기억들을 불러 일으켜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책 혹은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세계 혹은 경험 속으로 나를 초대해 온전히 그것을 이해하고 느끼게 만들어 주는 책. 마지막으로 내게 좋은 책이란 평범하고 다 알 것 같은 내용이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큰 여운과 함께 새로운 생각들이 샘솟는 책. 보통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눈다. 세 가지 중에 하나인 경우에도 나는 꽤 만족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 세 가지가 잘 버무려진 책 같다. 다소 어지러운 감이 있어서 중간 부분에서는 집중력을 잃기도 했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아주 명료하게 다가왔다. 모든 것이 상쾌한 그런 느낌이 분명히 있었다.

 

 

연결고리를 찾아서_

 

리처드와 신시아 (농산물 코너에서 울고 있던 한 여자)

리처드와 닉(시나리오 작가이자 소설가, 아주 유명하지만 잠시 그 속을 떠나 있다)

리처드와 앤힐(도넛 가게 주인, 버터의 따뜻한 빛이 흐르는 도넛 가게!)

리처드와 벤(리처드의 아들, 리처드가 늘 함께 하고 싶어하던 아픔과 상처가 많은 존재)

리처드와 그의 아내(늘 바쁘고, 일이 많고, 잡념을 두려워하고, 쉴 틈을 주지 않는 여자)

 

 이렇게 연결 고리 속에 펼쳐진 그들의 대화와 그들의 상황들은 나를 때로 아프게 했고, 나를 되돌아 보게 했다. 모두가 너무도 다른 존재들이지만 모두가 원하는 건 평범한 관심이나 사랑일지도. 그들은 내색하든 내색하지 않든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같은 존재다.

 

 

 

 

뒤죽박죽 정신없이 전개 되는 이야기 속에서 그 분위기들을 한껏 느끼기 위해 내 기억을 연결_

 

 때로 소설 속에서 나의 기억이 폴폴 흘러간다. 그 상황, 그 분위기. 내가 느꼈던 그 순간과 닮았다. 그래서 나는 그 기억을 떠올리며 어렴풋이 그들의 기분을 짐작해 본다.

 

 

 

 

 그는 유리창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본다. 그리고 너무 늦게서야 그것을 본다. 새의 폭격이다. 리처드와 새의 눈이 마주치고, 다름 순간 둔탁한 소리를 내며 새가 유리를 들이받는다. 바로 앞에서 백 퍼센트 살아 있던 존재가 유리를 때리고는 백 퍼센트 죽은 존재가 되어 땅에 떨어진다. 그는 부엌에 가서 커다란 국자를 찾아 들고 밖으로 나가, 땅을 파고 새를 묻는다. 집 안으로 돌아가서 꽃을 가져다가 무덤 위에 놓는다. p.70

 

 

 고등학교 때, 한 학년 언니가 옥상에서 자살을 했다. 그녀는 한낮에 옥상에 올라가 뛰어 내렸고, 수업 시간에 잡념에 잠겨 칠판 대신 창문을 바라보고 있던 한 학생이 스치듯 추락하는 언니의 눈과 마주쳤다. 그날 이후, 그 눈을 본 학생은 반쯤 미쳐 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채로 얼마나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존재를 던진다는 것이 때로 타인의 인생을 반쯤은 망가뜨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방향으로의 에너지를 뿜어낸다면 타인의 인생을 구제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새' 였기 때문에 그가 미치지 않고 묻어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새의 존재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사람의 존재의 위력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벽 네시 반, 누군가가 복도를 오가며 종을 울린다. 사람들이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차가운 물, 차가운 샤워, 거친 수건. 그리고 모두 명상실로 향한다. p.215 

 

 한평 짜리 고시원에서 방음되지 않은 벽 사이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새벽. 누군가가 슬금슬금 화장실로 향한다. 물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는 빨랫감을 가지고 세탁실로 향한다. 누군가는 나갈 채비를 한다. 명상실을 향하고 있는 그 모습과 소리들을 느끼며 한 공간 속에 가장 밀착되어 있으면서도 완벽하게 모르는 척 타인이 되어 웃지도 않고,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고시원에서의 생활이 떠올랐다.

 

 

 

 

 그들은 세이지 횃불을 밝히고 둥글게 앉은 사람들에게 돌린다. 북이 울리기 시작한다. 허공에 향이 가득하다.

"이게 바로 와우와우 부분이지." 앤힐이 말한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북소리와 바다가 부서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그리고 우리가 혼자이면서 함께임을 알라." 닉이 말한다.  

 리처드는 몸을 기울이고 벤의 귓가에 속삭인다. "네가 원하면 언제든 갈 수 있다."  -p.368 

 

 우리는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거나하게 술을 마셨고, 가마솥에 구운 삼겹살을 다 먹어 해치운 뒤였다. 마음 치유집단이었던 우리들은 그렇게 앉아 중간에 모닥불을 피웠다. 돌아가며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다. 집단을 이끌어 가는 전문 지도자는 둥그렇게 떠오르는 달을 향해 손을 내밀며 '님은 먼 곳에'를 불렀다.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님이 아니면 못 산다할 것을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 망설이다가 가버린 사람
마음 주고 눈물 주고 꿈도 주고 멀어져 갔네 님은 먼 곳에
영원히 먼 곳에 망설이다가 가 님은 먼곳에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망설이다가 가버린 사람
마음 주고 눈 물주고 꿈도 주고 멀어져 갔네 님은 먼 곳에
영원히 먼 곳에 망설이다가 가 님은 먼곳에

 

 

 왜 그렇게도 이 노래가 아렸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어쩌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텅 빈 시선이었는지도 모른다. 불꽃이 타닥타닥 타오랐고, 시간이 흐르자 각자 소리 없이 이동을 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마음에만 머물러 있느라 다른 사람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수용되는, 서로의 입김과 공기로 뒤섞였던 그 시간들이 오래오래 기억났었다. 그 흩어지던 밤의 분위기, 잊지 못할 여름밤. 이 구절을 보자 그때 생각이 간절하게 났다. 어쩌면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네가 원하면 뭐든 할 수 있어." 라고.

 

 

 

 

"내가 왜 쉬어야 해?"

"그 일을 사랑해? 만족스러워?"

"그런 생각할 시간 없어."

"그래서 그러는 건가? 생각하지 않으려고?" p.485

 

 나는 때로 심심하고 외롭지만 바쁜 것 보다는 여유로운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엄마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여유를 모르고 살았다. 자신에게 쉴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 자체가 재앙으로 여겨지는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어쩔 줄 몰라한다. 자신이 할 일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지극한 두려움. 자신의 영역에 대한 행사, 자신이 꾸려나가고 있는 것에 대한 자신감, 자신만의 규칙에 따라와 주길 바라는 강력한 마음들을 자식들에게 보여준다. 어쩌면 뭔가를 생각하기를, 스스로에 대한 감정을 느끼기를 거부하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에게 말하고 싶다.

 "이젠 제발 좀 쉬세요! 이제 그래도 돼요!"

 

 

 

 

"요전에 자동차에 치인 다람쥐를 봤어.

죽지는 않고 누워서 미친 듯이 다리를 차고 있더군."

"깔아뭉갰어?"

"무슨 소리야?"

"다람쥐를 깔고 지나가서 그 비참함을 끝내줬느냐고."

"아니, 왜?"

"흠, 당신이 길가에 그렇게 누워 있다면 누군가가 그렇게 해주길 바랄 것 같지 않아? 비참한 순간을 끝내주길?"

"아니." 그는 충격을 받는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아니야." 그는 분명히 하려고 다시 말한다.

 "나에게 말을 걸어줘. 내 손을 잡아줘. 깔고 지나가지 말고." p.486

 

 자신의 비참함을 멈추는 방법은 '죽음'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늘 스스로 뭔가를 헤쳐온 그녀와 자신의 손길이 누군가에게 생명을 건네는 방법임을 아는 리처드. 생각의 차이는 생과 죽음을 오간다. 우리는 이렇게 다 다르다. 그런데 어떻게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그저 손을 맞잡고 나아가는 수밖에.

 

 

 

 

"우리 신혼여행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

"화산이 폭발해서 떠나야 했잖아. 재가 날리고 용암이 흐르고."

이것은 예전에 했던 놀이였다. 사귀면서 있었던 일들을 계속 다시 이야기하는 것. p.484 

 

 

 나에게 늘 달콤하고 로맨틱한 이야기만을 해주던 사람이 있었다. K와 내가 만난 건 버거킹에서였고, 그는 쉬는 날에도 늘 먹을 것들을 사들고 매장에 와서 나를 도와주었다. 도넛을 잔뜩 사와서는 스파이에게 내가 도넛을 몇 개를 먹는지에 대한 보고를 하라고 했다. 트레이를 정리하려고 가면 어느새 그가 와서 내 트레이를 뺏고, 쓰레기 봉투를 집어 들라치면 잽싸게 들고가 정리했다. 생일에는 로커에 책과 편지를 넣어 두었고, 집에 도착하면 우편함엔 초콜릿 조각 케잌과 커피가 들어 있었다. 그와 사귀는 2년 동안 나는 우울해질때마다 그에게 첫 만남 이야기를 토시 하나 빼먹지 말고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마치 처음 하는 이야기처럼 늘 그렇게 내개 말해 주었다. "처음 봤을 때 말야. 너는 야자수 모자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이 있는 것처럼 웃고 있었어....."로 시작되는. 그 말을 듣고 있으면 내 삶이 언제나 분홍빛으로 샤방샤방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좋았던 이야기를 계속 계속 다시 이야기하는 놀이. 그건 정말 최고의 위안이었다.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은 나에게 인생은 어찌 될지 모르니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니 잘 한 번 살아보세요, 하고 시원스럽게 알려주는 것 같다. 책의 마지막은 밝다. 딱히 밝은 상황이 아닌데도 리처드가 웃고 있는 것이 즐겁고, 그의 상황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나도 그를 따라 내 몸과 마음을 그냥 이 세상에 맡긴 채로 둥둥 떠다니고 싶다. 얼마 간은.

 

 내가 좋아하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암리타'의 구절로 이 소설의 리뷰를 끝내려고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이렇게 해야할 것만 같아서.

 

『나중 일이야 어찌 되었든, 아무튼 지금 손을 맞잡고 날지 않으면,

이 어지럽게 변화하는 인생으로부터 낙오되고 만다.

 

서로 연결돼 있으면서도, 사람은 무력하다. 무력한 것 같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다. 』

 

                                                      _요시모토 바나나, '암리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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