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할 수 있는 이유는 눈으로 본 것의 기억이 몸으로 느낀 것의 기억보다 훨씬 오래가기 때문인 것 같다.
여행 그 자체는 근사한 것들에 둘러싸인 고생스러움의 연속일뿐이다. 낙원행 기차를 타기 위해 폭염 속에서 질주하기도 하고, 점점 무거워지는 배낭을 메고 알프스의 절경 속을 지나기도하고, 복통에 시달리면서 옛터의 장엄함에 압도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그런 고생스러움이 아니라 눈으로 본 근사한 것들이다. 여자들이 출산의 고통을 기억할 수 있으면 대체 누가 둘째를 낳겠느냐고 엄마는 언젠가 세 번째 자식의 셋째인 나에게 말했다. 내가 태어난 것은 망각 덕분이고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것은 시각적 기억의 우위 덕분이라는 뜻이다. - P229

지금 영국에서 누군가가 정원 같은 쾌적함을 누릴 수 있는 것은 한때 아일랜드에서 누군가가 감옥 같은 억울함을 겪었기 때문이 아닌가? 영국에 목가가 있고 목가가 상징하는 안정과 풍요가 있는 것은 다른 나라들이 궁핍하기 때문이아닌가? - P2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젠가 테오도어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시가 존재할 수 없다고 했지만, 참상 속에 나비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세상을 좋게만들기 위해 애쓰는 우리는 세상의 좋은 것을 맛보면 안 되는것일까? 혁명가들과 활동가들이 줄곧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질문이다. 케이스먼트는 대답한다. 좋은 것을 맛보자. 청옥색 &유황색 나비를 잡으러 다니자. 강에서 수영을 즐기자. 일기를 쓰자. 정의를 위한 투쟁이라는 끝없는 과업에는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 - P1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산(heritage)을 팔려고 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관광업이유산을 파는 사업(industry)이라는 것도 이상하다. 관광업이라는 사업이 파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상품을 소비할 기회이고,
관광객이 그 기회를 사는 목적은 여가 선용이다. 그 외에 관광객이 사는 것은 유적지 기념품이나 토끼풀 무늬가 들어간 소금·후추통 같은 공예품 정도이다. 지금은 이렇듯 여가 (leisure)가 사업(industry)의 목적이 되었지만, 한가함(leisure)이 근면함(industry)의 반대말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어쨌든 지금 관광업은 정보화시대의 완벽한 사업, 곧 여가와 소비와 이동과 연출을파는 사업이다. 관광은 식민주의의 역전(부유한 나라의 재화 중 일부를 가난한 나라에게 돌려주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반복(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를 계속 침입하고 통제하는 수단)인 듯하다.
- P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제나 양해를 구하는 양해중 씨의 19가지 그림자
임소라 지음 / 하우위아(HOW WE ARE)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섭도록 진짜인 소설. 내가 만나본 게 틀림없는 양해중 씨. 좋고 슬퍼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시는 우리가 거리를 방랑하면서 읽는 책이다. 그 텍스트는 역사의 한 버전을 선호하는 대신 다른 버전을 억압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확장시키거나 축소시키고, 당신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당신을 중요한 사람처럼 느끼게도 만들고 버려도 되는 사람처럼 느끼게도 만든다. - P2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