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결혼식 가는 길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20년 9월
평점 :
현실의 고통을 어떻게 통과할지 어림하게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 맹인이 화자로 여러 목소리를 묶는 형식도 적절하고 면사포를 연상시키는 표지의 색과 질감도 좋다.
니농은 지노의 품에 안겨 있다. 슬픈 곡조에 담긴 아픔은, 수세기 동안 이어 온 억누를 수 없었던 희망을 마음으로 전한다. 이탈리아의 어느 마을에 있는 시장에서, 아이 엄마가 유모차를밀고 정육점에 가는 길이다. 그녀의 다리는 아직 햇볕에 타지 않았다. 마렐라를 만난 아이 엄마가 아는 척을 하고, 마렐라는 유모차안을 들여다본다. 유모차의 덮개는 열려 있고, 아이의 눈에 햇빛이비치지 않도록 웨딩드레스에서 떼어낸 레이스를 달아 놓았다. 마렐라는 입으로 쭈쭈 소리를 내며 아이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지노랑 똑같이 생겼네, 그렇지 않아? 이것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이상황이, 그녀가 결혼식에서 거기에 맞춰 춤추는 음악 안에 담겨 있다. 시간이 진동이 될 때, 음악이 그렇게 만들 때, 영원은 진동들 사이의 침묵 안에 담긴다. - P1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