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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니주의보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평점 :
이런 건 정지아 작가만 쓸 수 있는 소설 아닐까?
그럼 그건 독보적인 거네…
이런 글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거 같다.
너무 젊은 작가들의 이야기는 신선하지만
뭔지 모를 아쉬움이 남고….
너무 오랜 기성인들의 옛이야기들은 꽉차있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단절감이 없지 않다.
역시… 공부하고 취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나보다.
그리 살아가면서
그렇게 고민하고,
또 그렇게 생각하면 그 자체가
개성이 되고, 눈물이 되고, 웃음이 된다는 진리를
또 한번 배운다.
*****
찌니들의 귀촌이야기.
단순히 시골 살이가 아니라,
숨기고 싶고, 지키고 싶은 상처와 비밀을 안고
그들만의 요새를 만들고 싶었을지도…
평균나이 78세의 노인들만 남은 수평마을.
어느 누구하나 사연없고 아픔없는 사람없는…
다들 알면서도 할퀴고, 훔치고, 찌르며
또 돌아서서 멋쩍게
아닌 척 모른 척 검정 비닐을 걸어두고
매기매운탕을 끓여대는 그들의 속내….
어찌 생각하면 이야기는 너무 뻔한 것 아닌가 싶기도하다.
허나,
그 이야기 속에 담긴
한 명 한 명의 레파토리는 그야말로 찬양지차다.
그래서 매력적인 거다.
누구에게나 있는 그 비밀,
누구나 있는 이유,
누구나 조금은 나쁘고, 누구나 조금은 이상한….
그것들을….
조금만 물러서서, 때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순간
넌지시 깊숙이 이해하고 마주잡는 그 찰나의 따듯함.
그건 정말이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걸 이해하고 감싸안아 내는 건
상투적이지만 결국 사랑이란 말로 대신할 밖에…
*****
다방 레지와 레즈비언도 구분 못하는 노인네들,
살아온 이력에 묻은 도벽으로 말려드는 호박하나를 훔치고
또 그걸 욕해대며 경찰에 신고하라는 생트집…..
흉하다고 내쫓아버리자는 막말에,
손가락을 흔들며 진짜냐고 물어대는 노골적 질문들..
허나 결국은 조금 다른 것임을 몰랐을 뿐…
필리핀에서 건너와 이제 더 전라도 쌍욕을 잘하는 이도,
닭도 애완동물이라며 밀웜을 챙겨먹이고 이사까지 하는 이도,
모두 자기 기준으로 살 뿐.
악의 없이 그리 서로 문 열고 살면…
연대도 공동체도 사랑도
모두 수평으로 귀결되리라는 믿음…
*****
“예상치도 못했던 집단적 주목은 증오와는 사뭇 달랐다.
순수한 호기심이라고 해야 할까,
호기심에 손이 달려 찌니들의 옷을
팬티까지 순식간에 휙 벗기는 느낌이었다.”
“….. 니는 묵제 싫다는디 왜 자꼬 멕이는 것이여!
….. 쑤언이 그때만 해도 짧았던 한국말로 쏘아 붙였다.
…… 나 된장찌개 싫어. 근데 맨날 먹어.
…..하모, 묵고 자픈 것만 묵고 살 수 있가니, 싫은 것도 묵어야제.”
“가장 쓸모 없는 것들이 생명력이 오지게도 질겨
고춧대가 찬바람에 시들때도 저 홀로 무성했다.
그가 풀을 베다 진저리칠 때면
너무 글지 마라, 죽이는 니가 힘들 것냐,
죽는 쩌것들이 힘들것냐…..”
“그 순간….. 레즈비언이라는 말에 내포된 은밀함,
비밀스러운 같은 것들이 햇빛 맑고 바람 좋은 오늘 같은 날
빨랫줄에 걸린 빨랫감처럼 순식간에 꼬들꼬들 말라
바삭바삭 부서지고 마는 것이었다……”
“누구도 침범하지 않을 어둠 속에서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존재라는 게 서글프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진과 혜진은 숨이 쉬어지는 이 어둠이
절실하게 반가웠다….
발가벗긴 채 이리저리 끌려다닌 하루도
결국은 저물어가고 있었다.”
“편이 있으면 괴롭지 않을까?
편이 있으면 견딜 수 있을까?”
“뭐? 느그는 꼬치 달랬다고? 젖도 없는 것들이
반의반의반도 안되는 꼬치, 것도 딸랑 하나 달랬다고
저 지랄엠벵을 떨어쌓네. 조오컸다. 꼬치 달래서….”
*****
ㅋㅋㅋㅋㅋ
이 예민하고 어려운 세상 문제를
이렇게 넉넉하게, 것도 쌍스럽게 욕해댈 수 있을까?
단, 저속하거나 부끄럽지 않게 말이다…
한참을 웃었다.
난 남자지만…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한평생 수모와, 차별앞에서 숨 한번 내지르지 못한
그녀들이기에 가능한 호탕함일지도 모르겠다.
몰라도 되고, 조금 이상해도 된다.
또 조금은 나빠도 된다.
진실된 마음과 자기 삶 앞에 당당함이 있다면
누가 뭐라하겠는가?
심각한 폭염주의보 앞에서…
한여름이 아프지만,
휴가같은 책을 읽고…. 온세상 찌니주의보가 물들였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