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22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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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느낌은 가볍고 상큼한 귤빛이었다. 청소년들의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 정도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글 속으로 들어갈수록 빛깔과 향기가 깊어졌다. 카를 융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페르소나'가 보이기도 했고, 느닷없이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떠오르기도 했다. 애잔하게 서랍 속에 감추어둔 나의 첫사랑이 떠오르기도 했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한참 생각나게도 했다.


문학의, 소설의 묘미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작가가 말하려는 의도와는 또 다르게, 작품 속 푸른 정원을 산책하며 독자가 스스로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고, 과거와 현재 또 미래를 기억하고 상상하도록 만드는 것! 짧은 책 한 권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을 만나 웃고 떠들고, 실컷 울고 돌아온 느낌을 갖도록 만드는 것!


나이 차이가 많이 남에도 불구하고, 쌍둥이처럼 닮은 형과 동생.

형이 가상 세계 속에 남겨둔, 가장 깊은 곳의 비밀스러운 마음.


형의 학교에 입학한 동생이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던 중,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형의 모습을 발견해가며 아파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성장해가는......



세상이며 주변 사람들을 다 이해하고 아는 것처럼 생각하다가

돌이켜 보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 하나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깨달음.


하물며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과, 세상은 얼마나 제각기 나름의 인연과 고민 속에서

끝없이 발버둥치며 견디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일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시간이 필요하고, 무언가를 더 오래 들여다 볼 마음이 필요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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