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과부하가 아닌 감각의 과부하. 언뜻 보면 이해되는 듯 싶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둘은 서로 구분되기 쉽지 않은 듯 하다.개인의 주관적 경험은 분명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걸 남에게 보이는 건 또다른 문제다. 말 그대로 꺼내서 보여주고 싶지만 불가능한게 우리의 경험과 마음이기에.그렇지만 이 책은 분명히 와닿는 무언가가 있다.스스로의 인생을 정의할 수 있는 방법 중에 자폐라는 단어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여태까지의 혼란스러움 과는 또 다른 혼란스러움에 빠진 작가는 걷기를 통해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소화하고 인정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 혼란의 중심에는 ‘원래의 자아‘와 ‘만들어진 자아‘ 중 어느 것이 본래의 자신인지 헷갈리는 과정이 들어있다. 걷기를 통해 자신이 정해둔 계획, 원칙, 기준이 무참히 부서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작가는 그러한 혼동 조차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다.나 역시도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감당할 수 없이 온 감각이 날이 서서 어딘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여기로부터 어딘가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 들곤 한다. 작가는 그동안 감각의 과부하로 부터 벗어나 조용하게 휴식을 취하고 싶어하는 자신의 욕구에 지나치게 무심해 왔다고 고백한다. 자폐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감각경험을 감히 내가 안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 심정만큼은 공감이 너무 되는 사람으로서 나 역시 언젠가 모든 걸 제쳐두고 걷기든 독서든 한가지 일에만 몰입하는 시간을 꼭 가져야 할 것만 같다. 왠지 진짜로 그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때때로 괴로움의 절규에 대한 가장 좋은 대응은 솔직담백한 대답이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우리의 암울함을 참아주고, 다시 땅에 발을 딛고 일어설 때까지 약한 모습을 보이게 내버려두는 친구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늘끝까지 버틸 수는 없고, 때로는 모든 게 망가진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기분장애를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파악하고 받아들이는 일을 잘 못하는 이유는, 감정이 우리의생각과 느낌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일상생활에서 늘 기분변화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기분장애자가 종종 낙인찍히는 이유는이런 어려움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단순하게 말하면, 과학과 의학의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이 기분장애를 질환의 집합이아니라 개인의 약점이나 나쁜 행동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 P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