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빠진 소녀
악시 오 지음, 김경미 옮김 / 이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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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신부도 아닌 자여, 누가 당신을 선택했나요?

내가 날 선택했어요.

- 바다에 빠진 소녀, 36-37p

이 책은 아주 환상적인 동양풍 판타지 로맨스를 다루고 있다. 처음 책의 표지와 제목만 보았을 때는 심청전을 재구성해서 심청과 용왕의 로맨스에 좀 더 집중한 단순한 로맨스 소설이겠거니 여기기 쉬운데(본인이 그러했다...), 책을 읽다 보면 친숙함 속에서 낯섦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그것이 매우 신선한 흥미를 이끌어 책의 마지막 장까지 정독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먼저 '심청전'이라는 한국 전래 소설을 모티프로 쓰였기에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심청'과 '용왕'이라는 캐릭터가 나오는데, 그와 더불어 첫 장면이 심청이 용왕의 신부로 바다에 제물로 빠지기 직전이라는 점과 '미나'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야기를 처음부터 차분하게 풀어나가는 게 아니라 바다에 빠지기 직전의 극적인 장면으로 시작하면서, 기존에 알던 심청전에는 나오지 않은 '미나'라는 등장인물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도 전에 폭풍은 지나가고, '미나'는 청이 대신 바다로 뛰어들어 용왕을 만난다.

이야기 속에서 '미나'는 한결같이 굳은 의지와 높은 자존감으로 주체성 있게 행동한다. 그리고 그간 용왕의 신부로 제물 삼아 바쳐진 신부들의 선택 또한 각자의 이유가 무엇이든 신부들이 선택한 결과라며 모든 이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선택하고 책임지며 살아간다고 믿는다. 그래서 자신에게 드려진 수많은 사람들의 소원이 적힌 종이배를 등한시하며 신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버리고 용왕에 대한 분노로 살아가던 달과 기억의 여신에게 분노하기도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뱉은 말을 지키려 하는 '신(shin)'에게 다정함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기도 한다.

자, 폭풍 속에 바다로 뛰어든 '미나'는 이제 혼령들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혼과 육체 모두를 지닌 인간으로 지내며 용왕의 신부가 되어 용왕의 저주를 끊어내 세상과 가족을 지키고야 말겠다는 목표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30일이 지나면 혼이 빠져나가게 되므로 '미나'는 30일이라는 시간제한 속에서 용왕의 신부가 되어야 하는데, 폭풍을 뚫고 용왕의 대전에 도착한 그날 '신(shin)'에 의해서 용왕과 이어진 운명의 붉은 끈이 끊어지고 혼이 잡히게 된다. 게다가 용왕의 신부를 해치려는 모종의 음모마저 드러나게 되는데. 우리의 '미나'는 잡힌 혼을 되찾고 용왕의 신부가 될 수 있을까?

이야기 속에는 학, 호랑이, 연꽃, 탈, 이무기 등 한국적 신화들이 곳곳에서 다양하게 등장한다. 이야기가 주로 '미나'를 중점으로 이어지다 보니 다른 혼령들의 세상 속 가문들에 대해 자세히 다뤄지지는 못했지만, 만약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보다 넓게 이야기의 배경이 서술됐다면 더욱 매력적인 한국 신화들과 마주칠 수 있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남기'와 '기린'의 과거사도 궁금하고, 바닷속이지만 숨을 쉴 수 있고 공기 중에 새처럼 물고기들이 날아다니는 신비한 풍경을 영상으로 보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드라마화가 된다면 분명 '신(shin)' 역을 맡은 배우는 인기가 한층 급상승하지 않을까.

읽는 내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생각날 만큼 비슷한 서사가 느껴졌다. 용기와 의지로 모든 역경을 이겨낸 '센'과 '미나'. 그리고 소녀를 도와주는 이름을 잃은 신 '하쿠'와 용왕과 신들을 지키는 연꽃 가문의 군주인 '신(shin)'. 아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좋아한 사람들이라면 이 책도 분명 좋아하게 될 것이다. 또한 처음에는 미움과 오해로 만나게 된 두 주인공이 나중에 서로에 대한 마음을 자각하게 되는 반전 로맨스를 좋아하는 분들도 분명 이 책을 흥미롭다 여길 것이다. 그리고 용기와 의지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해 나가는 주인공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의 운명을 만드는 사람이다.

- 바다에 빠진 소녀, 16p

오늘이 지나면 내일을 만나 또다시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독자들에게, '미나'의 말은 무엇보다도 힘찬 용기를 선사해 준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내 스스로의 운명을 자아낼 것이다.


#이봄서평단 #바다에빠진소녀 #바빠소


"운명을 쫓지 마, 미나. 운명이 널 쫓게 해야지."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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