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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일간의 남미 일주
최민석 지음 / 해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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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구매하면서부터 웃어버리는 최민석 작가의 여행에세이.

이번에도 웬만한 예능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해프닝과 웃프닝이 와글와글하다.

에세이를 쓰기 위해 멕시코-콜롬비아-페루-칠레-아르헨티나-브라질을

후다닥 섭렵하는 그의 여정은, 브에노스 아이레스의 햇반 같은 느낌이다.

햇반 무시하지 마라. 해외에서 30일 간 느끼한 양식만 먹다 위장이 느글느글해

오바이트 할 것 같다가 마침내 발견한 한국식품점에서 구한 햇반을 전자렌지에

돌려 막 개봉한 한국 아재만이 이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최민석 작가의 문체를 따라했지만 역시 맛이 나지 않는다!

해외여행의 동반자 햇반 같은 이 이야기는 여행욕을 자극하고 해외를 그립게 만든다.

코로나로 갇혀버린 세상에서 그 먼 남미를 대신 여행해 주고, 곤란과 배탈, 호구질을

섭렵하며 마침내 글로까지 완성해 준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사실 농담과 개그가 난무하는 그의 글 속 문득문득 내비치는 진실과 진심을 놓칠 수

없다. 마치 수줍은 고백처럼 작가는 지나가는 말 하듯 삶의 정수를 내뱉는다.

가령 이런 것이다.

그들은 자기 생에 충실했다. 적어도 내가 공연을 본 삼십 분 동안만큼은, 한순간도 충일하지 않게 노래하고 춤추고 연주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직업 예술인이다. 그렇기에 창작은 물론, 창작에 관련된 모든 행위가, 이를테면 '삶을 위한 쟁기질'이 돼버렸다. 그렇기에 쟁기질이 즐겁기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지난 10년 동안 매일 똑같은 밭에 나가 온종일 밭을 갈았는데, 그것이 어찌 마냥 즐겁기만 하겠나. 하지만, 이들에게는 진정으로 즐거운 것이었다.

*

물론, 일상을 사랑한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크루아상과 커피로 아침을 때우고, 글을 쓰고, 매일 걷고 달리고, 아이를 돌보고 아내를 일터로 태워다 주고 데려오는 내 일상은 소중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왜 이런 일상을 선택했는지 이유를 잊어버린 채, 나는 스스로 만든 공장의 부품으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하더라도, 그 단순한 삶을 좀 더 충실히 살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 일상을 선택했다. 그런데 그 일상을 지키다 보니, 내가 왜 이런 일상을 구축했는지 잊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맹목적인 일상의 노예가 돼버린 것이다.

이제 알 것 같다. 돌아가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일로서의 예술을 수행하는 자신의 처지를 돌아볼 수 있는 여행이라면?

일상으로 돌아가 어찌 해야 할 지를 알게 되었다면, 충분히 값진 여행 아닌가?

그의 좌충우돌 여행은 이렇게 툭툭 진실의 조각들을 떨구며 행진한다. 그 조각들을


맛보고 곱씹고 다 소화하기도 전에 다시 최민석 스타일의 푸념과 허무개그에 젖곤

하지만, 충분히 훌륭한 밸런스다. 유머라는 범퍼를 곳곳에 장착한 그의 소프트웨어가

정말이지 부럽다.

아울러 콜롬비아가 콜롬부스에서 비롯된 이름이고, 볼리비아 역시 볼리바르라는

장군의 이름에서 따 왔다는 것,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좋은 공기 혹은 좋은 분위기라는

뜻이라는 것, 남미에서는 저가항공보다는 라탐항공을 이용하는 게 그나마 낫다는 것과

공유 숙소보다는 이비스가 무난하다는 것 등 깨알같은 지식들은 물론, 빠시엔시아!

에시페라. 아스타 루에고. 세까도! 등의 스페인어 기초 역시 배울 수 있다.

정말로 무이 비엔이다!

나 역시 늘 꿈꾸었던 남미 여행이었지만 두렵고 조심스러운 것이 많았고

무엇보다 주저하는 마음이 많았다. 이제는 여행도 익숙한 곳만 반복해 찾는 것이

아닌가? 그런 면에서 용감무쌍하게 지구 반대편에서 온몸으로 여행을 수행한 그의

이 기록이 값지다. 함께 여행하는 기분으로 읽은 책, 이것이 40일간의 남미 일주에

바치는 내 감상이고, 그 중에서 베스트 에피소드는 역시 24시간 동안 구매한 세 켤레의

신발이 아닐까? 세까도여서 세켤레인가? 아무튼 세까도는 건조고, 이 책으로 인해

절대 까먹지 않을 스페인어 단어가 되어버렸으며 거기에 기여한 작가의

나이키 러닝화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하는 바이다.

그의 다음 여정과 그 기록을 기다리며... 아스타 루에고!

나는 직장인보다 바쁘게 살아야, 겨우 직장인처럼 살 수 있는 '세뇨르 노벨리스타 민숙 초이'이니까 말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어차피 일상을 떠나서 새로운 경험을 하겠다고 왔으니 주저하지 않는 게 낫다. 그 경험이 자신에게 안전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데도, 시도하지 않는다면, 미지의 영역에 있는 그 경험은 결국 미련의 영역으로 갈 것이다.

가려 하면, "에스페라(기다리시오)!"라며 영수증을 주는데, 내 온갖 정보가 빽빽이 적혀 있고, 그 과정이 워낙 길어 '환전 대학교' 졸업장이라도 받은 것 같다.

이래서 예술가는 살아생전에 성공해야 한다. 고흐처럼 사후에 유명해지고 인정받아봐야, 생전에 스스로 귀를 자를 만큼 참혹하게 살 뿐인 것이다. 모차르트의 생가에 방문했을 때도 느꼈다. 그렇기에 내가 살아생전에 문학적 성공을 거두는 방법은 한 가지다.

성공할 때까지 죽지 않는 것이다.

'아들아, 미안하다. 아비는 벽에 *칠하더라도, 쉽게 못 간다.'

눈이라도 조금 붙이려 했지만, 알고 보니 이 기차의 좌석은 8할 이상이 4인석이었고, 그 덕에 난 지금 한 3인 가족(어머니, 두 아들)과 함께 마치 급히 '재결성된 가족'처럼 앉아 있다.

'아저씨가 우리 새아빠예요?'

이제 알 것 같다. 돌아가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 결심은 부끄러워 쓰지 않겠다. 그리고 역시 안다. 결심을 공표하면, 결심을 바꿀 자유를 잃어버린다는 것을, 그 공표한 결심이 나의 굴레가 되어, 결심한 의미가 퇴색돼버린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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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시민 -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김서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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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스레인지 앞에서 천천히 죽을 저었다...


이 대목에서 '죽을 저었다'가 '죽을 거였다'로 읽혔다. 당황했다. 

인간이 생각하는 흐름이 이렇게 단순한가? 아니면 이렇게 몰리는가? 

둘 다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것이 인간이고, 이 책이 그런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데에 공감했다. 

한 치 앞도 못 보는 한 줌 마음 속 태풍을 안고 사는 멸치들, 같은 인간들 말이다. 


똑똑한 소재를 똑똑하게 풀어냈다. 작가는 한 치도 아쉬움을 남기지 않고 독자들을 챙긴다. 

아마 자신이 이 분야의 마니아이기 때문에 예우를 지켜주는 듯싶을 정도로. 

그럼에도 이야기 자체의 순조로운 진행과 마지막의 폭발을 방해하진 않는다. 

추리가 풀리는 지점에서는 짧은 탄성이 나온다. 

반전도, 성과도 아닌, 이 이야기에 적확한 마음의 범인. 그것에 놀란다. 왜?

이야기에서 놀라고 내 마음의 어둠에 놀라고.

작가가 건드리고자 한 것도 그것이고, 그걸 이렇게 세련되게 풀어낸 작가의 똑똑함에 경의를 표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히가시노니 미야베니 까불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 장황한 일본 사회의 어두운 텍스트를 읽느니,

이제 선량한 시민들의 비밀들을 읽는 데 독서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

우리 이웃의 척박하고 비밀스런 실정, 말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무지x2) 기대될 따름.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기존의 소설은 대부분 엉터리라는 대담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어쩌면 그렇게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설명되고, 정치한 인과관계에 의해 사건이 일어나고 마무리되는지 창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 인생에는 복선도 플롯도 없다. 성격은 충동에 의해 무너지고, 기억은 소망에 의해 왜곡된다. 인생은 무질서한데 왜 소설 속 이야기는 그토록 질서 정연해야만 하는가, 



"하나님께서 네가 하는 짓을 다 보고 계신다!"

"좆 까는 소리 하고 있네! 나는 내일 아침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것도 안 믿는 사람이야!"

그 순간에 창수는 웃음이 푹 튀어나왔다. . 아무리 봐도 초등학생 지능을 넘지 못할 것 같은 두 남자가 한쪽은 절대적 믿음을 대표하고, 다른 한쪽은 절대적 회의를 대표하여 치고받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카프카를 좋아하시나 봐요?"

"네, 좋아하죠." 

"왜요?"

"이해할 수 없으니까?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고, 너무너무 알고 싶지만, 속속들이 알고 싶지만 절대로 그럴 수가 없어요. 답답하죠."

"답답함이 좋아요?"

"나를 애태우게 하니까."

"그럼 나는 우리 시아버지를 좋아하는 거네."



"그럴 수도 있죠. 우연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연으로 보이는 것이라 해도 그 안에는 필연적이고 논리적인 설명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걸 찾아내는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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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지식인의 길, 육두피아 - 한국의 인텔리겐치아, 육두품에게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정영훈 지음 / 팬덤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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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지식인을 육두품이라고 하자.

그들이 이뤄야 할 가치의 세상을 육두피아라고 부르자.

유토피아의 묘한 음차다. 책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캘리그라피가

대나무처럼 단단해보인다.

 

묘한 제목에 이어 저자의 득특한 이력이 눈에 들어왔다.

저자 정영훈은  남해안에서 '천골'로 태어나 '서울 육두품'의 꿈을 안고 상경,

서울대 법대생이 되었고, 이후 서울대 법대 학생회장을 거쳐 전대협에서 활동하였고,

다시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법률사무소를 운영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뜸 중국으로 건너가 핸드폰 사업에 도전하였고

다시 현대 아산에 입사에 대북경협 일에 매진하고 있다고 한다.

실로 다양한 이력과 파란만장한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진골과 천골 사이, 그 간극을 부지런히 '바늘의 걸음'으로 꿰메어 온 것이리라.

 

책 제목과 저자의 이력만 독특한 줄 알았더니, 책 구성도 튀기는 마찬가지다.

저자는 동서양 시대장소를 막론하고 '21세기 육두품의 길'에 대해 논할 토론자를 알차게 소환한다.

진중권, 전원책, 유시민, 전여옥이 모이는 대박 100분 토론처럼 흥미로운 논단이 펼쳐진다.

사회자로 등장한 저자가 간간이 유머를 섞어가며 정리를 하고,

논객들은 시공을 초월해 소통하고 표방한다.

모두 저자의 관점에서 인물들의 태도를 재해석해 표현하는데, 쉽고도 묵직하다.

 

이제 성인이 되는 스무살 청년들이 21세기 지식인으로서의 태도를 배우기에 적당한 책.

아울러 생활에 치인 삼사십대도 이 시대 정의와 진보의 가치를 차근차근 복습해나가기에 좋다.

 

마지막 장 육도사와의 대담은 저자와의 인터뷰라고 봐도 좋다.

'실패한 20세기 육두품'이라는 말에 발끈하는 저자의 21세기는, 육두피아에 한층 가까워질 수 있기를!

개인적으로는 민주적 공동체로의 통일국가 실현이 육두피아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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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콘서트
데이비드 나이븐 지음, 임성묵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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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하루 한개, 보약이다.

검은 콩이 탈모에 좋다더라.

녹차잎을 씹어먹어라. 중국 장수촌 사람들이 그런다더라.

아침에 맨손체조 오분이면 하루가 가뿐하다.

체질에 맞는 음식을 먹어라.

궁합이 맞는 재료끼리 요리해라.

고기보다는 생선,  탄산음료보다는 과일음료.

등등, 건강에 관한 지식은 신문, 티비, 주변의 이야기 등에서 누누히 들어왔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은 그런 것들을 효과적으로 집대성한 느낌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토마토 같은 이야기도 있고,

'적절한 조심과 맹목적인 두려움을 조심하라' 같은 심리적인 정신건강에 대한 언급도 있다.

뭐랄까, 기와 체의 조합. 작가의 생각에 100프로 동화될 순 없지만 상당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들은 쉽게 실천할 수 있을 것 같다.

 

계속 꿰지 않은 구슬로, 건강상식을 썩힐 것인지,

이 책에서 집대성해준 대로 실천할 것인지...

 

여러가지로 참 건강하지 못하게 살아온 일년의 끝,

내년에는 내 몸에게 반성하는 의미로 이 책을 실용서로 잘 활용할 계획이다.

총 백가지 실천강령이 건강콘서트를 이루는데,

하루에 하나씩 해치우고, 책페이지를 넘길까 한다.

백일이면 한권 다 읽고 그땐 좀 웰빙해지지 않을까!

이렇게 읽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다. 그렇게 하고 싶다.

 

근데 백일 후에는?  역순으로 다시 백일?

그건 그때 생각하자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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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라지고 있습니다
마쓰오 유미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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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좋아하던 만화가 아이완씨의 표지가 확 눈을 끌었다.

푸른 숲의 끝을 바라보는 붉은 차이나드레스의 여인...

처음 책을 들었을때는 쉽게 읽히는 만큼 '만만한' 문장력에 작품의 깊이를 가늠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재의 독특함, 유령과의 동거, 뻔한 것 같지만 결코 다른 진행이 눈의 띄었다.

'귀신이 산다'와는 비교가 안된다. 유령의 죽음의 한을 풀어주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주인공의 안스러운 고민과 노력이 애틋하다.

유령애인의 삶을 반추하는 것도 즐겁다.

자살을 하게 된 사연이나, 어린 나이지만 그 곡절어린 삶의 형태.

유령에게 빠지는 주인공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읽으며 내둥, 숨을 고르며 차분해짐을 느꼈다.

마치 주변에 유령이라도 있는 듯,  다른 짓을 하면 유령이 달아날까봐...

맙소사 사랑스러운 유령이라니,

 

단숨에 읽고 난 마무리는,  감동이다. 감동.

날것의 감동을 유령에게 느끼다니!

솔로부대의 수장으로 연말을 사수하고 있는 나로서도,

정말 유령같이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잠깐,

들게만든 괴물같은 책이다.

 

유령애인.

과연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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