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독스 1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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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독스13>은 하나의 주제를 깊이있게 다루는 소설은 아니다.

한 편의 재난 영화에 가까운 내용인데, 단지 그 재난이 SF적이라

는데 차이가 있을 뿐이다. 비슷한 소설을 꼽으라면, 원인을 알 수

없는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인해 기존의 세상의 틀이 완전히 무너지고

사람들이 그 안에서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지를 생생히 보여주는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가 떠오르는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많이 닮았다.

..하지만 <눈먼 자들의 도시>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좀 더 인간의 본성을

날카롭고 어둡게 파고들어갔다면, 패러독스는 다양한 갈등 상황들을

이것 저것 나열하면서 이런 상황이라면 이런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재난 교과서 총론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그 안의 갈등들이

가볍게 묘사되거나 뻔한 그림을 보여주며 해결되지는 않는다.. 히가시노는

패러독스 세상의 살아남은(?) 자들의 리더인 -본인은 끝끝내 리더가 아니라하는-

세이야를 통해서 굉장히 냉정하면서도 논리적인 인간관을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다.

야쿠자였던 가와세를 받아들이는 태도라든지, 안락사를 선택하게 되는 과정이라든지,

아기 분유를 훔쳐먹은 다이치에 대한 처벌이라든지 하는 부분을 보면,

인간의 선택이란게 단순히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틀로만 가두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것도 많고, 상당히 주관적이며 답을 낸다는 것도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이 소설은 장르 소설로서 이런게 주는 아니라고 본다.

 

패러독스의 비밀이 밝혀지기 까지 재난을 헤쳐나가는 모습은 약간 지루한 전개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이상 어떻게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꽤나 현실적으로 재난에

처한 인간들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으며,  특히나 어쩔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무력함과 절망감, 그로 인한 저마다의 결단과 선택등은 충분히 공감력있게

전달된 거 같다. 물론 막판에 야쿠자인 가와세가 과학에 갑자기 관심을 보인 부분은

말이 안되는 건 아니지만, 굳이 왜 가와세인지 -세이야와 대립을 위해서 그런걸지도-

좀 어색했고,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세이야가 '이브 번식'론을 펼치며 새 인류

새 지구를 만들겠다고 단언하는 부분에서는 뭐랄까, 정말 이 놈은 공룡 시대 부터

살아온 바퀴벌레와도 같은 놈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되게 이런 비정상적으로

뛰어난 인물들은 항상 보면 마무리가 비슷하다.

 

마지막에는 나름 깊이 빠져서 나도 모르게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까. 세이야와 같인 갈 것인가, 아님 가와세 처럼 기회에 올인

할 것인가. 그냥 보통의 상황이었다면, 주저없이 세이야 쪽을 따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저 지경에까지 이른다면 어떤 선택이든 쉽지가 않다.

착한 (돈많은) 여자, 예쁜 여자 또는 아이유와 수지..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것만 같다.

무엇이 옳다, 아니라고 할 수가 없다. 결국 자신이 지금까지 가지고 살아온

가치관을 믿을 수 밖에.

 

그래도 소설에서는 불확실한 기회보다는 끝까지 살아나가는 쪽에 답을 둔 거 같다.

그런 상황에서 조차도, 포기하지 않는 쪽이 옳을 수 있다고.

그러나 나는 가와세의 막판에 한 대사가 한켠으로 맘에 걸린다.

 

"나는 말이지, 그저 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 좋아하지 않아...(중략)

 이 기회를 놓치면 죽을 때까지 후회할걸. 그때 왜 승부를 걸지 못했나

 두고두고 후회할 거야. 나는 그게 죽는 거보다 싫다고."

 가와세의 반론에 세이야는 할 말을 잃었다.

 

나도 여기에는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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