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행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태동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연인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아니다. 미호는 연인으로는 아마도 가즈나리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게 아닐까? 탐정이 그 점을 지적하고나서 그 후 따로 그 내용을 반박할 만한, 예를 들면- 아니다 사실은 료지만을 사랑했던 것이다 - 같은 암시를 주는 내용이 전혀 없는 것으로 봐서는  미호는 료지에게 어떤 이성으로서의 연애감정을 가지지는 않았던 거 같다. 미호가 후반에 내뱉는 대사에서도 그를 연인으로 표현하기보다는 단지 자신이 잃어버린 인생의 태양같은 역할을 대신 해주는 존재로서 일종의 고마움 비슷한 감정을 토로할 따름이다. 뒤돌려서 생각해보면 이런 것일 수도 있다. 미호는 료지를 이성으로 사랑하진 않지만 분명 둘 사이에는 어찌보면 단순유치한 연인관계라는 차원과는 비교 할 수 없는 더 깊고 끈적한 유대관계, 끈, 동료, 빛과 어둠, 존재 양식....죄악으로부터 태어난 남매 비슷한 관계가 존재했다. 그래서 미호는 남자와의 진짜 사랑이란 것을 크게 신경쓰지 않은 채로 살아갈 수 있었다.(아님 살아가야만 했다.) 가즈나리를 맘에 뒀지만, 그것이 어떤 절절한 감정으로 까지 번지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는 그 보다도 더 깊은 자신의 삶 자체를 만들어주며 기꺼이 희생하고 있는 존재가 바로 곁에 있어서이다. 그렇다면 자신 또한 그 희생에 보답해서 앞으로 더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고 같은 그런 1차원적인 감정은 그녀의 상처, 더불어 결국 료지의 상처가 되기도 한 그 끔찍한 상처가 일깨워준 현실의 지독함과 잔인함에 비하면 참으로 가볍고도 우스운 것이다. 료지는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계획하고 행동한다.. 마지막에는 미호를 상처입은 바로 그 행위로 미호를 보호해줄 정도다. 료지도 미호도 철저히 타인이 받게 될 상처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아프니 남들도 아플꺼야 그러니깐 안돼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상처입힌 거친 현실을 정답으로 받아들이고, 바로 그대로 그 현실대로 살아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그런 현실에서, 더 이상 타인에게 상처받는 피해자의 입장이 되기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위해 가해자의 입장에 서자, 왜냐면 그렇지 않으면 결국 또 피해자가 될 뿐이니깐. 철저히 은밀하게 이런 불완전하고 거칠며 약점투성이인 현실을 이용하여, 완벽히 안전한 위치에서 태양아래를 걸을 수 있을 때까지......그래서 과연 미호는 태양 아래에 서게 된 것일까? 최후까지 고개도 돌리지 않은 그 무서울정도로 냉정한 미호라면 들키지 않고 계속 서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만약에 어딘가 약해진 틈새를 다시 누군가 열어제치고 감쳐둔 그녀의 어둠을 밝혀낸다면.. 미호라면 망설임없이, 일말의 미련도 없이 자살할 것 같다.. 더 이상 태양을 대신해줄 사람은 없으니깐. 그리고 분명 그렇게 살아오면서 안 고통스러웠을리 없다. 소설을 다 읽고나서 소설내내 계속해서 두 사람의 비명소리가 배경음처럼 깔려있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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