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어록청상 푸르메 어록
정민 지음 / 푸르메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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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인터넷으로 책을 사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전에는 정말 서점 가는 일이 좋았었는데 점점 게을러지는 것을 느낀다. 다산어록청상이란 제목의 이 책 또한 나의 그런 게으름의 잔재이다. 하지만 굳이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다산이란 이름 때문이다. 지금까지 읽어온 몇 안되는 책 중에서 가장 괜찮다고 느낀 책에는 늘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한 장 한 장 넘기기 아까웠던 전태일평전. 도데체 내가 이 책을 과연 다 읽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마저 들었던 체게바라평전도 다 읽고 나서, 정말 뿌듯하고 세상에 대한 시야가 넓어진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재밌게 읽었던 책의 이 두 주인공 모두 반정부적인 인물이었는데 아이러닉하게도 나는 공직 안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하지만 결국 ‘누군가의 삶’이란 것은 옳고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르다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다른 삶을 살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내 삶에 도움이 되어왔던 것 같다. 너무 다른 이야기로 흘러 가버렸다. 미천한 내 이야기는 이쯤에서 줄이고 다시 서운해하실지 모르는 다산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려본다. 다산은 학문의 모든 분야에서 천재였던 분이시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학교에 가면 크게 문과 이과로 이등분하는데, 다산은 그런 구분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모든 학문에 탁월한 분이셨다는 것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얼마나 위대했던지 내 경험 중 단적인 예를 들자면, 공무원 시험 공부하는데도 항상 다산과 관련된 문제는 그 넓고 넓은 범위에서도 거의 한 문제씩은 출제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국사를 좋아하는 편이라 재미있게 공부했던 과목이었지만, 나를 경악시켰던 기출문제가 있었다. 바로 다음과 같다.
다음 중 다산 정약용이 지은 책의 숫자는?
1. 200여권 2. 300여권 3. 400여권 4. 500여권

천재라고 불리던 분인데, 당연히 제일 많은 숫자의 4번이 답일 것이라는 나의 추측은 적중했다. 이렇게까지 다산을 시험문제에 올리려고 했던 출제자의 의도는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이 책은 그 500여권의 책 이외에도 가족과 지인들과의 나누었던 필담들 중 저자가 선정한 글들로 이루어져있고, 그 글들은 열 가지 주제 하에 구분되어있다. 경세,수신,처사,치학,독서,문예,학문,거가,치산,경제.이렇게 단어로 나열하면 이 책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서양 고전을 읽고 제목과 작가를 달달 외우는 것은 상식처럼 여기지만, 과연 우리나라의 옛글들은 얼마나 읽고 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우리나라의 고전을 읽어보는 재미도 쏠쏠할 뿐 만 아니라 몇 백 년 전이지만 공무원으로서 근무하신 선배님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왠지 시대가 바뀌어도 좋은 생각에는 변화가 없고 또한 우리를 유혹하게 하는 일이나 경계해야 할 일들도 그렇게 변하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천재라고 불리던 분인지라 나 같은 중생이 읽기에는 상당히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디행스럽게도 작가는 ‘다산이 율곡의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그 글 밑에 남겼듯’이 단순히 다산의 글을 한글로 옮겨 우리에게 단순히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글을 남김으로서 나의 이해를 도와주었다. 무엇보다 가장 이 책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 좀 쌩뚱 맞지만 - 보기 드문 책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정가 12800원. 내 상상이지만 왠지 작가가 독자를 위해 출판사와 담판을 벌여 깎을 만큼 깎아서 나온듯한 마지막 세 자리 800원이라는 이 가격. 나만의 착각이라 할지라도 난 솔직히 감동했다.(^^;)

200여 년 전에 파란만장한 공직생활을 했던 다산과의 대화는 시대를 넘어서, 지금의 나에게 커다란 가르침을 준다. 아마 이 책은 십년, 이십년이 지나서도 변함없이,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따끔하게 나를 이끌어 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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