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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가지 행동 - 김형경 심리훈습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2월
평점 :
한 번도 정신과에 가 본 적은 없지만 인간심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은 몇 권 읽어보았다. 김형경씨의 책이 다른이들의 책과 차별화되는 이유는 그녀 자신이 컴컴하고 어두운 정서공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오랜 세월 노력해왔고개인적인 심리치료의 과정을 글로 객관화하여 보여줄 수 있을만큼 능력있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심리치료를 위해 쓰여진 책들 중 상당수가 읽는 이들의 마음에 가 닿지 못하는 이유는 글쓴이가 심리학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더라도 정작 자신의 마음은 그리 공들여 바라본 경험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서 정신과의사와 상담하는 듯하기도 했고 심리학과 교수와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가장 크게 들었던 느낌은 작가가 실제로 정신분석을 하고 자신의 삶에 그것을 체화하기 위해 참 많은 공을 쏟았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내가 혼자서 마음을 살펴보며 느꼈던 감정들을 그녀의 글이 자꾸만 건드렸다.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 반드시 정신과 의사를 찾아야만 하는건 아니다. 마음치유에 있어서 치료자의 역할을 부인하는 건 아니지만 마음은 지독하게 개인적인 영역이며 치료에 있어서 주체가 되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이다. 남이 나 대신 걸어줄 수 없는 것처럼 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치료해 낼 수 있는건 자기 자신 뿐이다.
혼자서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고자 할 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식에만 기대려는 것은 위험하다. 인간은 저마다 다르지만 똑같은 원료로 만들어져 있고 마음이 만들어지고 성장하는 원리는 비슷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의 이론을 배우고 타인의 치료경험을 살펴보는 건 유익한 작업이다.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문학작품과 영화들이 천착하는 주제중 하나는 진실을 회피하려는 인간의 본성이다. 진실과 대면하고자 하면 필연적으로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 인간은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속일 수 있는 동물이다. 결국 정신분석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개인이 어린시절부터 회피해왔던 자신의 고통을 직면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학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도 결국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진실과 직면하라'일 것이다.
정신치료는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이건 토익점수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정한 기간을 정하고 목표를 세우고 '몇 달동안 열심히 해서 내가 원하는 심리의 경지에 도달해야지'한다고 해서 도달할 수 있는게 아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본인의 내면 한쪽 귀퉁이에서 치료를 지독하게 거부하고 현재 상태에 머물려고 한다. 본인의 무의식이 치료를 거부한다는 점이 정신치료의 어려운 점이다.
심리학의 이론에 자신을 끼워맞춰 '나는 이런 일을 겪었기 때문에 이럴 것이다'라고 자신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인의 심리적 문제에는 각 개인마다 가지는 개별적인 상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 깊은 곳과 접촉하려는, 자신만의 진실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이 작업의 어려운 점은 뭔가를 가지려고 노력할 수록 그것을 갖기 어려워지는 인간심리의 역설이다. 자신이 바라는 정신적인 경지를 추구하면서도 그것에 초연해야 닿을 수 있는 종교의 깨달음, 수행과 비슷한 측면도 있다.
이 작업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쇠심줄같이 끈질긴 의지다. 수많은 혼돈의 나날의 보내더라도
내가 가고자 하는 그곳에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 같더라도 결코 포기해선 안된다.
정신의 성장은 돈으로 살 수도 없고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얻어지지도 않는다. 눈 앞의 벽이 높다고 넘으려 하지 않고 몸에 뿌리깊게 박힌 질병을 아플까봐 치료하지 않는다면 평생 아프게 될 것이다.
갑작스레 다가오는 불행과 마찬가지로 정서적 질병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지 주어진다. 마음이 아픈 사람은 미성숙하고 마음이 온전치 않은 부모에게 양육되었을 것이고 부모는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내게만 이런 일이?' 라는 질문에는 답이 없다. 다만 아픈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 불행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혼돈과 고통과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수없이 많은 날을 눈물로 지샌 후 어느 순간 자신이 외면해왔던 어떤 진실에 가 닿을지도 모른다. 의아할 것이다. 내 속에 이런 큰 아픔이 있었다는 것에 놀랄 것이고 그럼에도 그것을 모른채 수십년을 살아왔다는 것에
놀랄 것이다. 그리고 .... 당신이 보내온 고통의 시간이 , 방황했던 날들이, 흘렸던 눈물이 결코 의미없지 않았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