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죽염먹는고흐 > 유시민 '나의 한국현대사' 부산강연 후기(14년8월27일)

 국제신문 문화센터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인을 받고 있었다. 내가 사인받을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책에 이름 대신 어떤 문구를 적어달라고 할지 한참이나 고민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유시민씨에게
 '만남과 성찰'을 써달라고 했다. 악수를 하는데 손이 따뜻하다.
 그는 독자 한명 한명에게 말을 걸었고 미소를 지었고 대화를 나누었다.


 강연이 이루어진 곳은 예식장으로도 쓰이는 공간이었다.
 난 강당의 뒷편에 앉아 있었는데 유시민씨를 보러 온 사람이 예상보다 많아서 
주최측이 신랑 신부가 지나다니는 통로에도 앉을 수 있게 해주었다. 나와 일행은
잽싸게 튀어나가 아주 가까이에서 유시민씨의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강연내용

 

 

 한 개인이 삶을 살아갈 때 자신에 대해 긍정적이고 밝은 감정을 가지는 편이 어두운 감정을
가지는 것보다 행복할 것이다. 우리는 국가라는 큰 공동체에 속해 있고 국가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는 개인의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친다. 국가에 대한 감정은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 한국인이 최고의 민족이라는 근거없는 자만심이나 한국인은 열등하다는 자학은
우리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난 이 책이 50대와 20대에게 많이 읽히길 바랬다. 50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이 합리화시켰던 과거를 현실적으로 인식하길 바랬고 20대는 50대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 돌아봄으로서 현재의 50대를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길 바랬다.
 하지만 어느 독자가 쓴 '이런 책은 읽어야할 사람들은 읽지 않고 안 읽어도 될 사람들
만 읽는다.'는 인터넷 서평처럼 이 책은 30~40대의 독자층에게 주로 읽히고 있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


 박정희를 이야기할 때 주로 경제성장과 독재가 이야기 된다. 옹호론자들은 경제성장을
위해 독재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반대론자들은 박정희의 독재를
비판하면서 경제성장에 대해서는 무시한다.


 만약에 알콜중독에 부인과 자식을 폭행하는 가장이 있는데 돈을 잘 번다고 해보자.
 폭력가장이기 때문에 돈을 잘번다는 사실이 없어질까? 또는
 돈을 잘 벌기 위해 아내와 자식을 때려야만 했다는 말이 성립될 수 있을까?


 박정희에 대해서는 인정할 부분은 인정해 주고 비판할 부분은 비판해야 한다.
 박정희가 집권한 뒤부터 일인당 국민소득이 증가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성장은 박정희 혼자서 이룩한 업적이 아니다. 저임금에 착취당하던
수많은 노동자의 피와 땀, 국민 개개인의 사정과 노력이 얽혀서 만들어낸 결과다.
 그가 쿠데타를 통해서 권력을 잡았고 독재를 했으며 편법을 써가면서 대통령직을 연임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가 나라의 발전을 위해 독재자가 되기를 자처했는지, 권력욕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는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당장 먹을 양식이 없었던 가난한 시절에는 독재와 강압적인 정치를 해도 사람들이
잘 따른다. 생활수준이 향상되면 사람들의 자유와 개성과 존엄성이 발현되기 시작한다.
 국민소득이 늘어나면서 교육받은 중산층이 많아졌지만 그는 여전히 과거의 강압적인 독재를
유지하려 했고 결국 그는 자기 성공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경제성장과 진보와 보수


 지니계수는 계층간 경제적 평등을 나타내는 지표인데 높을수록 평등도가 낮고 낮을수록
평등도가 높다. 예를 들어 어느 재벌이 나라의 모든 부를 혼자 소유한다면 지니계수는 1이고
모든 국민의 소득이 같다면 지니계수는 0이다. 0.3이하면 양호하며 0.4이하면 사회불안이
조성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데 최근 몇년동안 지니계수가 증가해왔다.
 보통 보수는 진보가 너무 분배만 해서 경제를 거덜낸다고 하지만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의 재임기간동안 GDP가 상승했다. 오히로 진보집권기간에 국민의 복지수준은 더 떨어
졌다. 거시경제를 보면 진보와 보수의 집권여부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

 
 시민단체가 집회를 하러 거리에 모이면 수백명의 전경병력이 투입되어 저지하지만 어버이연합이
프로판 가스통을 던질 때 그들을 제지하는 공권력은 없다.
 민주주의가 위기라는 말에 현 정권이 문제라는 주장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무능하다는 주장
이 있는데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형식보다 실제로 어떻게 운영해 나가느냐의
문제다. 현 정권은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독단적인 정책을 펼칠때가 많지만 형식적인 절차의
테두리 안에서 그들의 의도를 관철시키고 있다.


 안철수씨가 처음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그토록 높았던 그의 지지도는 지금 10% 정도에
머물고 있고 경제대통령이란 슬로건으로 타후보와 큰 격차로 당선되었던 이병박 전 대통령의
지지도는 현재 1% 정도이다. 현 정권은 우리가 뽑은 사람들이며 국민들의 수준을 대변한다.
 소신없이 뽑아 놓고 비난하기만 하는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이 왕인데 사람들은 자신이 왕이란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자신의 한표가 나라의 운명과 국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그렇게 암울한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40~50년대의 가난하고 힘든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이 로또의 꽝이었다면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로또 2등은
된다고 생각한다. 세계인구의 대부분이 우리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간다.

 우리나라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국민들이 역사를 배우고 자신의 권리에 관심을 가지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면서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면 더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어중간한 존재이며 내부에 보수,진보 양쪽을 다 지니고 있다. 87년 6월항쟁을 주도하며
넥타이 부대라고 불리던 사람들 중 다수가 지금은 투표용지에 무조건 1번을 찍고 있다.
 과거의 기억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진보는 내가 익숙하던 보수와 다른 것이고
낯선 것이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생각이 굳어진다.
 나이를 먹어서도 젊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독서를 통해 새로운
 생각을 배우고 만남을 통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만 한다.

 


 유시민씨는 때로는 농을 던지며, 때로는 진지하게 두시간동안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강연이 끝나자 사람들은 그에게 힘찬 박수를 보냈다.
시간이 없어 모든 사람에게 싸인을 해줄 수 없게 되자 책에 주소를 적어 출판사 직원들에게
맡기면 자신의 사무실에서 싸인을 한뒤에 택배로 보내준다고 했다. 어느 작가의 싸인회에서도
보지 못한 따뜻한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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