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역사 - 개정증보판
현응 지음 / 불광출판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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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응 스님의 저서 <깨달음과 역사>는 1990년 초판 발행 이후 한국 불교계에 거대한 학술적·실천적 파장을 일으킨 문제작이다. 이 책은 관념화된 불교를 역사와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내렸다는 찬사를 받는 동시에, 전통 교학과 수행론을 과도하게 해체했다는 비판도 함께 받는다. 


이 책에서 저자는 깨달음은 개인의 내면적 평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적 모순을 변혁하는 실천(역사)으로 완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대승불교의 핵심 이념인 '공(空)'과 '연기(緣起)'를 사회과학적 역사 발전과 연대론으로 재해석했다. 


저자는 전통적인 선불교의 권위를 비판하고, 현대 사회의 문제에 불교가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도발적이고 직설적인 문체를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전통적인 수행론이나 교학을 넘어, 현대인의 언어와 사유 체계 속에서 불교의 핵심 교리(무상, 무아, 연기 등)를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이 책에서 드러나는 비판점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전통 수행 체계 및 '알음알이'에 대한 경계 (전통 불교계의 비판)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를 비롯한 전통 수행계에서는 저자의 주장이 부처님과 조사들이 그토록 경계했던 단순한 '지식적 이해'나 '알음알이'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불교의 진정한 깨달음은 오랜 기간의 '계·정·혜(戒定慧) 삼학'과 선정(禪定) 수행이라는 체험적 과정을 통해 체득되는 것인데, 저자가 이를 간과하고 폄하했다는 지적이다. 


2. 대승불교와 초기불교 교리의 혼재 (학계의 비판)

학계 일각에서는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승불교와 초기불교의 교리를 자신의 목적에 맞게 자의적으로 취사선택하거나, 소수 학자의 의견을 과대대표하여 경전을 불완전하게 해석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3. '깨달음'과 '지혜'의 모호한 경계

이해와 증득의 괴리 문제인데,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반야)와 일반적인 이해(understanding)는 엄연히 다른 차원일 수 있음에도, 저자가 이를 동일시하여 깨달음의 성취 과정과 의미를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지적이다. 


4. 수행론의 변질과 세속화 위험
불교의 본질인 내면의 번뇌 탈피와 해탈(출세간)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폄하했다.
깨달음을 지나치게 '사회적 실천'과 동일시하여, 불교를 종교가 아닌 하나의 사회운동이나 이데올로기로 환원시켰다는 지적도 받는다. 

5. 교학적 오독 가능성
전통적인 선(禪)불교의 깨달음(돈오)을 '고립된 관념 유희'로 과격하게 규정한다.
이는 평생을 수행에 정진하는 수행자들의 영적 구도 행위를 과도하게 단순화하고 폄하했다는 반발을 샀다.

6. 시대적 한계 (마르크스주의적 역사관의 투영)
1980년대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민중가치와 변혁적 역사 발전 역학이 불교 교학에 무리하게 이식된 측면이 있다.
이로 인해 종교 고유의 초월성과 영원성보다는 당대 시대정신에 지나치게 종속된 텍스트라는 비판이 따른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철저한 고증 중심의 불교학 논문이라기보다는, 대중을 향한 '선언문(정치적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서술 형태를 띠고 있다. 

불교 고유의 영성과 수행 중심적 가치를 지나치게 도구화하고 세속화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서술과 논리는 한국 불교 교학계에서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바 있다. 

그런데, 저자인 현응 스님의 개인적 비리가 드러나 종단 차원의 징계를 받게 됨에 따라, 이 책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게 되었다. 

계율의 파계와 그러한 사실을 숨겨왔던 위선적 행태를 보이는 가운데서 저술된 이 책이 과연 불교적 진리를 담고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부처님 당시에도 계행이 올바르지 못한 비구로부터 수계를 받은 것이 유효한가 아닌가의 논쟁이 되었던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개인적 한 몸도 제대로 구제하지 못한 비구의 가르침이 여타 수행승과 신도들에게 과연 의미가 있을 것인가?  쉽지만은 않은 문제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도적이 내민 횃불을 의지할 것인가? 
글쎄, 그것이 제대로 된 횃불이라면 고민할 여지가 있겠지만, 엉터리 횃불이라면 일고의 가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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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해탈의 서
파드마삼바바 지음, 칼 구스타프 융 해설, 유기천 옮김 / 정신세계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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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칼 융의 서문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인지한 모든 것은 정신적 이미지이며, 세상은 우리가 세상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만큼만 존재한다. 우리는 스스로 갇히고자 하는 정신 속에 자신이 갇혀 제약 받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 정신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정신으로 서양 심리학에서 ‘무의식’이라 불린다. 


무언가를 인식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미 인식의 불완전성을 입증한다. 사람은 자신과 분리되어 있는 것만을 알 수 있다. ‘나는 자신을 안다’고 말할 때조차 ‘나’를 아는 극미한 에고가 ‘자신’으로부터 아직 분리된 상태에 있다. 그것은 극미한 에고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다원론적 우주와 그것의 정복되지 않은 실체가 숨어 있는 것이다. 


또한 에반스 웬츠의 개론 부분도 중요하다. 


한마음은 모든 것을 포함하지만 그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모든 존재를 이루지만 어떤 존재도 갖지 않는다. 

만일 한마음이 어떤 속성을 지닌다면 그것은 덧없이 사라져갈 것이다. 만일 그것이 사념의 속성을 지닌다면 그것은 정지해 있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것이 어떤 것이라면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그것이 존재의 속성을 지닌다면 탄생과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지성에 의해 알 수 없으며, 모든 것의 본질이며, 윤회화 함께하면서 그것이 환영이게 하는 그런 것이다.


전체가 모두 깨달음에 도달할 때까지는 어느 누구에게도 완전한 깨달음은 있을 수 없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서로 분리되지 않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또 당연한 것이다. 존재의 이런 법칙을 아는 수행자는 자기만의 충족과 자기만의 구원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커다란 깨달음을 통해 ‘대자비의 길’로 들어서면서 중생의 무지 극복을 돕고자 하는 단 하나의 서원을 세우는 것이다. 


이 책을 직접 읽어보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은 스스로 골라 소화해야 한다. 

"우보익생만허공 중생수기득이익(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 

부처님의 지혜와 법(보배 비)이 온 세상에 가득 차 있으나, 중생은 자신의 그릇(근기, 마음의 크기)만큼 그 혜택을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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