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철학자들의 일련의 논의는 그리스도교 담론이 단순히 종교적 담론으로서의 가치를 넘어서 저항담론으로서도 유의미함을 보여준다.
해방적 가치의 원천으로 역사적 예수를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바울은 종종 예수의 혁명적 신앙을 변질시킨 주범으로 몰리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동성애' '권력' '국가' '성'의 문제에 있어서 바울은 여전히 보수적인 담론의 도구로 사용되는 실정이다.
다행히도 근래 바울에 관한 인문학적 논의를 바탕으로 신학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바울 해석이 진행되고 있다.
바디우의 책 사도바울은 바울연구에 신학적 지평의 확장과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물론 이 책의 목적은 바울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아니라 이 책의 부제처럼 ''제국'에 맞서는 보편주의 윤리를 찾아서' 바울에게로 향한것이다. .
"나에게 바울은 사건의 사상가(=시인인 동시에 투사의 모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한결같은 특징들을 실천하고 진술하는 사람이다.
그는 단절과 전복에 대한 일반적 관념과 그러한 단절의 주체적 물질성인 사유=실천의 관념이 어떻게 온전히 인간적으로 결합되는가(나를 매혹시키는 건 바로 그러한 인간적 결합의 운명이다.) 를 제시한다.(13쪽)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유대인이었지만 다마스쿠스에서 부활한 예수와 만나는‘사건’이후, 자신의 모든 생애를 걸고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파한 ‘주체’이다.
바울이 활동하던 당시 지배를 위한 담론은 지혜를 중심으로 하는 총체성의 담론인 그리스담론과 자연적 총체성을 넘어선 초월성을 가리키는 예외의 담론으로서 유대 담론 두가지 였다.
바울이 다마스쿠스에서 체험한‘진리-사건’은 기존의 담론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바울은 이를 알리기 위해 새로운 담론인 '그리스도담론'을 창출하고 담론의 주체로서' 사도'가 된다.
진리-사건 즉 바울에게 있어서 다마스쿠스 사건은 기존 담론의 연속성이나 전통의 축적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진리사건은 순수한 주어짐이며 그러기에 현재 상황을 규정하고 조절하는 법과 질서로부터 단절시키고, 그것들을 중단시킨다.
그러나 진리사건은 법과 질서의 상태로 고착되지 않고. 이내 사라져 버린다.
단지 진리사건은 그것을 체험한 자를 주체로 소환하여 그 사건의 의미가 지속되게 하고 진리사건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자는 진리사건의 ‘주체’가 된다.
바울은 다마스쿠스에서 불현듯 도래한 사건을 경험하였고, 그러한 사건의 부름에 신실하게 응답함으로써 그리스 담론, 혹은 유대 담론을 모두 지양하는 새로운
담론의 주체, 곧 그리스도담론의 주체인‘사도’가 되었다.
그리고 이 진리사건을 선언하는 충실성의 과정, 그 자체가 바로 구원이다.
구원의 행위 즉 진리의 투사로서의 충실성은 즉‘믿음’,‘ 사랑’,‘ 희망’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믿음은 진리 사건이 자신을 주체로 세웠다는 것에 대한 전적인‘확신’ 을 의미하고 이러한‘확신’을 다른이들에게 전투적으로 건낼때‘, 사랑’이 발생한다.
또한 진리과정이 완성을 향해 나아갈 때 주체는 전위의 힘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 여기서‘희망’이 발생한다.
다시 말하면 구원의 과정 곧 진리과정이란 기존의 담론과 질서를 모두 거부하는 사건을 통해 주체를 세우고, 그 주체가 사건으로부터 비롯한 확신을 가지고 다른 이들에게 투쟁적으로 말을 건네며, 그 확신의 완성된 성격을 가정하고 전위를 투사처럼 행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서 3:28)
바울의 그리스도담론에는 기존의 지배담론에 저항하는 '평등'의 보편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바디우(바울)가 주장하는 보편주의는 총체성의 위계적 헤게모니(그리스담론)를 해체하며,어떠한 특수한 정체성에 의거한 특권적 예외(유대담론)도 폐기하는‘평등’의 이념을 핵심으로 한다.
바디우의 평등은 차이와 다름을 무시한 획일적 평등이 아니라 그것들을 횡단하고 초월하는 즉 차이들의 위계를 점하지 않고 차이들 사이를 논쟁하지 않으며, 그저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것이다.
진리사건은‘아버지’의 위계적 담론이 해체하고,‘ 아들들’의 평등함이 담보되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하신 예수와의 만남이라는 ‘진리사건’이 바울에게 의미하는 바 역시도,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인류가 평등한 한 형제라는 사실에 있다.
바디우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그 어떤 종류의 특수성이나 정체성을 넘어서서“아들들의 평등을 정초”하기 위하여 사도 바울을 우리의 동시대인으로 불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