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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러나 별로 반갑지 않은 위안들.
애도는, 우울은, 병과는 다른 것이다.
그들은 나를 무엇으로부터 낫게 하려는 걸까?
어떤 상태로, 어떤 삶으로 나를 다시 데려가려는 걸까?
애도가 하나의 작업이라면, 애도 작업을 하는 사람은 더 이상 속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도덕적 존재, 아주 귀중해진 주체다.
시스템에 통합된 그런 존재가 더는 아니다. (1977년 10월 27일, <애도 일기>, 18쪽)
롤랑 바르트에 의하면 '애도'는 우리를 시스템의 부속품에서 벗어나 도덕적 주체로 서게하는 힘이다.
'애도' 는 개인적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어떤 죽음과 희생은 공동체의 애도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애도는 '위험한 기억'으로 급진적 저항을 생산한다.
(ex 제주 4.3항쟁, 4.19, 부마항쟁 5.18,세월호 그리고 전태일과 수많은 열사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러한 '위험한 기억'에 근거한 고백이다.
정치신학자 메츠의 말처럼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로마의 억압적 체제에 대해 예언자적으로 항거하는 정치적 죽음이었고 불의한 구조에 도전하는 ‘위험한 기억’이다.
교회야말로 이 ‘위험한 기억’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기억의 공동체이고
이러한 공동체는 ‘위험한 기억’의 이야기에 담긴 억울한 죽음의 희생자들과의 연대 속에서 잘못된 국가와 불의한 정치 구조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정치적 삶을 지향한다.
오늘날의 사회는 '위험한 기억'과 '애도'를 ‘치유(healing)’라는 명목으로 빨리 치워버려야 하는 방애물로 취급한다. .
자기만의 고유한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는 없다.
이 슬픔은 절대적 내면성이 완결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현명한 사회들은 슬픔이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서 코드화했다.
우리의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65쪽
'위험한 기억'을 잊지 않고 재현하고 기념할때 비로서 '애도'는 짧은 슬픔의 감정으로 사라지지 않게된다.
이제 '애도'의 행위는 집단의 기억을 다시 재구성하여 도덕적 무감각과 굳어버린 양심을 녹여 공동체에게 회심의 과정을 걷게한다.
계속되는 '애도'는 단순히 기억하도록 부추기는 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이 공동체의 이상을 만들어 가도록 만든다.
'위험한 기억'들이 살아있는 기억으로 날마다 예배되고 선포되고 또 교육될때 비로서 우리에게 희망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