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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 자본주의에 숨겨진 위험한 역사, 자본세 600년
라즈 파텔 외 지음, 백우진 외 옮김 / 북돋움 / 2020년 5월
평점 :
“저렴하다”는 것의 의미는 ‘모든 것을 가능한 한 적은 보상을 주고 동원하는 폭력’이다.
자본주의는 세계를 싸구려로 만듦으로써 작동해왔다.
기후 위기, 극단적 불평등, 금융 불안 같은 현재의 위기는 자본주의가 감춰온 비용이 비로소 우리에게 댓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져렴하다고 생각되는 많은 것들은 자본주의가 성장의 희생물로 삼아 억누르고 착취한 모든 것들이다.
노동, 여성, 자연, 식량, 에너지, 생명등 많은 것들이 자본주의 아래에서 싸구려 취급 받으며 이익 창출의 도구가 되어왔다.
우리의 저렴한 것들은 마술처럼 스스로 창조된 것이 아니다.
현대 세계의 아이디어와 정복, 통상이 폭력적으로 뒤섞인 연금술을 통해서 등장했다.
그 심장부에는 서로 얽혀있는 일련의 이분법이 자리하고 있다.
사회와 자연, 식민지 개척의 주체와 객체, 남성과 여성, 서구와 나머지, 자본가와 노동자 같은 구분들이 그것이다.
자본가들은 이 이분법적 세계를 유지하고 그 경계를 허물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끊임없이 새로운 '저렴한 것'들을 확보할 수 있고 인간과 자연의 저렴한 노동을 강제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다닌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는 현세를 ’자본세(Capitalocene)라고 규정한다. 1400년대 이후의 역사를 자본세로 불러 자본주의를 경제 시스템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인간과 지구 생명망의 관계를 엮는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자본세 600년의 역사가 어떻게 구축되었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파고든다.
자본주의의 시작을 18세기 영국 산업혁명이 아니라 14세기 유럽에서 시작해 지배 계급이 이윤의 원천을 찾아 대서양의 섬들을 찾아 나서는 과정 속에서 추적한다.
14세기 말엽에 소빙기라는 전지구적 기상 재앙이 갑자기 찾아왔고 농업 생산량은 급감한다. 더구나 흑사병이 유럽 인구 절반의 목숨을 앗아가자 유럽인들은 배를 타고 먼 바다까지 나가기 시작했다.
바다로 나간 유럽인들은 15세기에 아메리카와 카리브해의 섬들을 발견한다.
유럽과 중동에서 비싸게 거래되는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밀림을 사탕수수밭으로 일구기 위해 불을 질러 밀어버렸다.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을 끌고 와 아메리카에 대량으로 퍼뜨렸다. 소위 노예 품종 개량에도 나서 온순한 아메리카 원주민 노예와 체력 좋은 백인 노예, 더위에 강하고 지구력 좋은 흑인 노예들의 교배로 오늘날 중남미 대부분을 차지한 혼혈 인종이 탄생한다.
유럽의 자본과 아메리카의 토양, 아프리카의 노동력이 결합된 삼각무역은 이렇게 태어났다.
대항해 시대의 초기 식민지 체제는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체제로 유럽에 재수입된다.
자본주의는 봉건제를 깨뜨리기 시작했고 동시에 자연을 파괴하며 원자재를 생산하고 영주의 장원에 매인 노동력을 끄집어내 저임금 노동자로 만들었다.
노동력의 바탕인 가정도 자본의 논리에 따라 재편되기 시작했다.
도시화와 핵가족화라는 물결 속에서 농경사회에 근간한 유럽 전통의 대가족 체계가 무너지고 무한한 권한을 지닌 가부장이 이때 출현한다.
중세까지 남성과 동일하게 모든 노동에 동원된 여성의 노동력이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갇힌다. 여성의 삶은 우수한 인적 노동자원을 생산ㆍ관리해 자본주의 체제에 바치는 일로 목적이 변질된다.
저자는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 등 7가지 저렴한 것들의 역사를 다루며 이들을 값싸게 유지하면서 지속적인 거래를 가능하게 했던 오랜 자본주의 전략을 역사 속에서 그리고 현재에서 보여준다.
치킨산업의 경우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유전자를 조합해 닭의 가슴 근육을 부풀리고 육계 농장과 사료용 토지에는 저렴하게 쓸 수 있는 공공자금이 투입된다.
에너지도 (세금으로) 싸게 공급되고 계육공장을 굴러가게 하는 이들은 시급 25센트의 저임금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86%가 각종 질병을 앓고 있지만 치료보다는 가족의 돌봄에 의존한다. 이렇게 가공된 닭은 다시 저렴한 식재료로 공급돼 노동자의 입으로 들어간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자연과 사회를 분리해서 사고하며 사회는 자연을 지배하고 자본으로 바꿀 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토지 등 자연 하나하나에 값을 매겨 ‘개발’이라는 단어 아래 착취하였고 그 결과 이제는 기후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극단적인 기상이변도 나타난다.
그간 저렴하게 유지됐던 세계는 이제 지속가능하지 않다.
흑인, 식민지인, 여성, 노동자, 환경운동가들은 각각의 자리에서 자본주의가 저렴한것들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모든 이분법에 저항한다.
새로운 세계와 답은 이분법의 틀을 깨고 나서야 보게 될 것이다.
생명과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인정하고 탈성장 사회로 가야만이 비로서 탈출구를 열수있다.
유일한 잘못이 지금 태어난 것인 사람들, 여성, 원주민, 기후변화와 공해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있음을 안다면, 그리고 이 문장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 모두의 행위가 모여 그들의 삶을 더 악화시킨다면, 우리는 어떻게 다르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