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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유방사 - 어떻게 가슴은 여성의 ‘얼굴’이 되었는가?
다케다 마사야 엮음, 김경원 옮김, 이라영 해제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평점 :
60년대에 미국에서 ‘브래지어 태우기’가 여성들에게 하나의 운동이었듯이 유방을 둘러싼 역사만 살펴보아도 사회에서 여성의 몸이 놓인 위치를 알 수 있다.
여성의 유방은 어머니로서의 가슴과 유혹하는 가슴으로 나뉘어 있지만 양쪽 모두 남성의 시각으로 대상화된 여성의 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책은 서양과 동양의 신화와 예술에서 표현하는 가슴을 문화적 맥락 속에서 탐구한다.
젖 먹이는 성스러운 가슴에서부터 성적으로 유혹하는 가슴, 남성의 가슴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 가슴은 무엇을 뜻하는지를 적고 있다.
가슴에 대한 시선의 주체를 남성이나 아이가 아니라 여성의 입장에서 자신의 몸을 이야기하고 여성의 가슴이 성적대상화되는 과정을 문화사속에서 찾는다.
일본의 상품·매스컴이 바스트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여성의 신체, 그것도 성적 신체가 상품화되는 과정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상업주의에 편승하거나 편승당하는 측면이 한 가지 흐름이다.
한편 여성들은 바스트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자기 의지로 바스트와 여성성, 신체를 주체적으로 관리하는 동시에 자신의 바스트에 자긍심과 자신감을 갖기에 이르렀다.
전후 바스트관의 변천은 여성이 자신의 신체에 주체성을 획득해 나가는 흐름과 일치한다.
바스트는 여성 신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22쪽)
흥미로운 글은 경극을 주제로 한 '여장 배우가 벗을 때: 전족, 나긋한 허리, 환상의 유방' 이다.
경극에는 크게 나누어 ‘남자 역할生’, ‘여자 역할旦’, ‘평범하지 않은 남자 역할淨’, ‘도깨비 역할丑’ 등 네 가지 역할이 있다.
그러나 20세기 초까지 많은 사람이 모이는 극장에서는 일반적으로 모든 역할을 남성만이 연기했다.
그러므로 경극의 ‘단’ 연기는 ‘남단男旦’의 연기로만 이뤄졌고, 남성이 여성 신체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기교를 고안해야 했다.
반금련 경극중 여장남자배우는 맨가슴을 드러내며 연기를 한다.
관객들은 마치 여성의 유방을 보는것처럼 반응한다.
극중 유혹하는 가슴은 실재로서 존재하는게 아니라 관객들 머리속에서 상상으로 존재하며 그 역활을 다 한다.
그렇다면 여성의 가슴은 정말 본래적으로 성적인가?
책은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문화사속에서 그러려내는 수없이 많은 가슴의 상징 속에서 성적인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욕망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남성과 가부장제 ,자본주의의 편협한 시각이 만들어낸 또다른 환상일 뿐이다.
여성의 가슴은 다양한 형식으로 공격받는다.
위안부 소녀상의 가슴을 성추행한 사건도 있었다.
여성 조각상조차 가슴을 위협받는다.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여성들이 겪은 폭력은 남성에 대한 그것과는 달랐다.
대검으로 가슴을 난자한 폭력에 대한 증언과 증거자료가 있다.
전쟁에서 여성의 신체를 훼손하는 방식과 같다.
순교한 여성 성인의 그림에서 유방을 도려낸 장면을 볼 수 있듯이 여성의 가슴은 학살의 역사에서 더욱 집중적으로 공격받았다.
가슴을 향한 폭력도 기록되어야 한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영혜는 ‘믿는 건 내 가슴뿐’이라며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다.
인간의 손과 발, 세치 혀 등은 모두 타인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가 되지만 오직 가슴만은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며.
그렇다.
인간의 몸 중에서 타인을 공격하지 않는 건 정말 가슴이다.
상처를 받을지언정 누구를 해치지 않는다.
그 가슴이 가장 편한 상태로 내버려 두자.(이라영 해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