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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즘의 틈새에서 (반양장) - 위안부 문제를 보는 또 하나의 시각
아마시타 영애 지음, 박은미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2년 3월
평점 :
일본군성노예 / 한국군성노예 / 미군성노예 / 성매매 / 원정결혼...
여성을 매춘부와 정숙한 여성으로 이분화하는 민족논리 위에 구축된 인식은 남성중심주의에 기초한 남성(가부장적)논리이며 여성을 포함한 열린 민족주의가 아니다. (136쪽)
일본군성노예 피해자를 민족의 피해자로 받아들이는 인식에는 그들이 '일본군'에 의해 '속아서' 혹은 '강제적'으로 끌려갔다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가 담겨 있었다.
'자발적' 이거나 '알고' 간 이들은 '피해자' 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가부장적 사고는 '모든 성노예'를 만들어내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 이면에는 '성매매'에 대한 가부장적 이해와 편견이 깔려 있었고
'강제성'의 의미를 축소화 시키면서 구조적, 계급적 강제를 만들어낸 '민족내' '자신들'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재일조선인으로 태어나 여성학을 공부하고 한국으로 건너와 위안부 문제의 공론화와 '정대협'의 설립과 함께했던 삶의 경험을 서술하며 '경계인'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규정한다.
일본식으로 읽은 성姓과 한국식으로 읽은 명名이 섞인 '야마시타 영애山下英愛'라는 이름에서 이미 마지널리티(marginality)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내가 일부러 아버지 쪽 조선 성을 붙이지 않고 어머니 쪽 일본 성을 고집한 것도 단순히 호적상의 이름이어만이 아니라 이런 남성우선적인 '민족'의 사고방식에 대한 저항이 있었기 때문이다.(29쪽)
이 책의 부제 그대로 '위안부 문제를 보는 또 하나의 시각'은 경계인이기에 볼 수 있었던 저자의 시각이다.
한국인이 정신대 문제를 피지배민족으로서의 관점에서 대처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성의 유린이라는 측면에서도 다뤄지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이 경우의 민족은 종래의 성차별적 남성중심적 혈통주의를 기저에 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시점에서 접근하여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45쪽)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한국 사회 내에서는 민족문제로 강조되어
오면서 여성 문제로서의 측면은 그늘에 가려져 왔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운동의 성격상 민족 문제로 다루며 여론에 호소하는 편이 국내의 지원을 얻기 쉽다는 전략상의 의도도 있었지만,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일본군성노예문제를 여성 문제로 확장시키는 일이 그만큼 어려웠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실제로 한국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위한 단체는 1992년 한국을 방문한 UN 관계자들에게 수절의 상징인 은장도를 선물하기도 했고 1993년에 발표된 고노 담화에 대한 성명에서, 매춘부 출신의 일본인 위안부와 강제적으로 연행된 조선인 위안부를 동렬에 두는 것은 이 문제의 본질을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위안부 문제는 한국 여성들에게 억압민족에 의한 여성차별이나 민족차별과의 투쟁뿐 아니라 그동안 민족의 이름으로 은폐되고 때로는 정당화되어왔던 자국 내의 가부장적인 체제와도 투쟁할 것을 요구한다.
위안부 문제를 민족 문제로서, 즉 일본에 대한 투쟁으로서만 인식하는 한 이 문제에 대한 페미니스트적 인식과 실천은 소홀히 될 수밖에 없다. (162쪽)
일본군 성노예의 ‘범죄성’은 위안부의 동원 방식이나 대우 여하가 아니라 일본군이 전쟁을 수행하면서 군인의 성욕 처리 등을 위해 정책적으로 위안소를 설치하고 일본인, 조선인, 중국인을 비롯한 여성들을 위안부로 삼아 성적으로 유린했다는 것 자체에 있다.
위안부 문제는 외국인 여성에 대한 성적폭력행위와 전시의 잔학성에 대한 문제일 뿐 아니라 국가에 의한 여성의 인권침해로 연결되는 (남녀의) 성지배와 통제라는 의미에서 일본인 위안부를 피해자로부터 제외해서는 안 되는 문제이다. 바꾸어 말하면 일본인 위안부를 피해자로 보지 않는 한 이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260쪽)
페미니즘 시점에 기초한 위안부 문제로의 접근은 민족논리에서 소외되어 온 피해자(여성)를 포괄하고, 더 나아가 식민지나 전쟁이라는 경험을 공유해온 남녀노소를 감싸 안음으로써 역사에 보다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교훈을 새길 수 있을 것이다. (1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