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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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 (야시가와 사토시)

 

얼마 전부터 일본영화가 훌륭하게 느껴졌다. 한국과 미국영화의 대부분이 조잡하게 빠른 편집과 끊임없이 폭파하고 불을 싸지르며 인간을 죽이고 피를 흘린다. 볼거리와 화려한 쇼로 진행되고 와 현재는 없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영화 속에서 현실의 모습을 찾으려하니 진짜 현실에서는 오히려 현실답지가 않다. 볼거리를 위해 만든 영화에서 볼거리가 없어졌다.

나는 최근에 일본의 영화들에서 그 대안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소위 슬로우 무비라고 불리우는 영화들에서 나는 인간적이고 따뜻하며 미국영화보다 현실적인 영화를 보게 되었다. 슬로우 무비에는 자연스럽게 현재의 모습을 담담하게 표현하는 영화가 많다. 내가 생각하는 슬로우 무비의 특징은 넓은 배경을 담은 샷이 많고 편집의 속도가 느리다는 점을 꼽고 싶다. 간혹 영화를 보면 편집의 속도에 휘둘리는 경우가 있다. 그건 영화를 사람의 뇌에 주입해 생각을 지우게 만드는 것이다. 마치 청룡열차를 타는 것 마냥 입을 헤 벌린 채 영화가 휘두르는 방망이에 놀아난다. 편집의 속도가 느리면 우리는 비로소 영화의 공간을 느끼고 사람의 눈을 바라보고 느낄 수 있다. 곧 생각, 사유하며 영화를 볼 수 있다.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도 동명영화를 먼저 접하고 책으로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은 책과 사람과 삶과 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본의 진보초라는, 일본의 헌책방으로 유명한 거리의 한 서점이 소설의 배경이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난다. 책의 세상으로 들어가 이 세상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된다.

헌책방은 이 세상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곳이다. 하지만 헌책방은 몇몇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곳이다. 주인공 또한 주목받지 못하는 시점에 서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고 직장을 그만 두고 자신을 아껴주지 않고 버려진 헌 책이 되어 버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긁히고 찢기고 누군가에게 잊힌 삶은 과연 그것으로 끝나는 걸까? 무수한 헌 책이 쌓여 있는 공간에는 헌 책을 읽기 위해 오고가는 삶들도 존재한다. 이 세상은 우리가 눈으로 보여지는 외관의 세계의 범위는 얼마나 작고 초라한지 보여준다.

 

나도 헌 책방을 때때로 드나드는 게 헌 책의 묘미 중 하나는 내가 미리 선택하지 않은 책들을 살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물건을 구매할 때에 누군가 좋다는 것을 듣거나 광고를 보고 그 물건()에 접근하게 되는데 헌 책 같은 경우에는 그 이전의 단계는 거치지 않고 곧바로 책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 점이 내가 헌 책방에 가는 이유이다. 이 책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마음에 들어 읽게 되는 책이 되는 것이다. 거기서부터는 나는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2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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