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키르케, 신화를 비튼 새로운 신화

 

흔히 신화라 하면 영웅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신화는 즉, 영웅 서사시로 연결되는 공식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영웅들은 모두 남성이다. 작년 신화를 공부할 기회를 접하면서 지금까지 알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넘어서는 다른 신화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길가메시 서사시, 라마야나, 황금가지등 나름 굵직한 신화들을 읽으며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고, 그 앎으로 인해 놀라운 지점들도 있었지만 한 가지 참으로 불편한 지점은 신화 속 여성들의 역할이었다. 신화 속의 여성들은 한결같이 정절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존재, 혹은 아주 문란하거나 영웅을 꼬득이는 역할로 등장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런 불편함은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공유하게 되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이런 신화 속 여성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풀어 새로 쓰인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키르케는 기본적으로 이전에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 속 등장인물들과 사건들을 소스로 삼고 있지만 그것을 버무리는 과정에서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탄생시킨다. 작가는 우리가 많이들 알고 있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속 잠깐 등장하던 키르케라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지금까지 알던 신화의 주인공들을 모두 조연으로 몰아버린다. 그리고 키르케라는 주인공을 탄생시킨다. 그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는 이전에 알던 그 인물이 그 인물이 아니고, 이전에 알던 그 사건이 그 사건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 소설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모두가 알고 있던 신화를 비튼 새로운 신화의 탄생. 나는 책을 읽으며 작가의 스토리 구성과 상상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의 주체적인 삶을 찾아가는 여신의 성장, 그 새로운 이야기

 

사실 책을 읽으며 키르케의 각성은 언제쯤 올까 하고 기다릴 정도로 그녀의 삶은 끊임없이 덜컹거렸다. 태어날 때부터 하찮은 존재로 형제자매와도 어울리지 못한 외로운 존재. 긴긴 시간의 외로움 속에서 겨우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이 생겼지만 결국 가지지 못하고, 버려짐과 배신의 상처만 남은 채 유배당해 더 더 깊은 외로움 속으로 빠질 수밖에 없었던 존재.

 

하지만 키르케는 사실 이미 다른 신들이나 자신의 형제자매들과는 다른 존재였다. 그녀가 아직 아버지 헬리오스의 궁정에 있을 때 인간을 도운 탓으로 끝나지 않는 고문을 당하게 된 프로메테우스를 만나게 된다. 그를 향해 자행된 끔찍한 고문을 보면서도 신들은 금새 자신들의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만 키르케만은 그에게 넥타르를 가져다준다. 둘의 대화 중 이런 고문이 있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인간을 도운 프로메테우스를 이해할 수 없던 키르케에게 그가 이런 말을 한다.

 

모든 신이 똑같을 필요는 없어.”

 

오랜 시간 깨닫지 못했던 프로메테우스의 이 말이 결국 키르케의 키르케로서의 삶을 선택하게 한 건 아니었을까. 헬리오스의 네 자녀가 마법을 부릴 줄 아는 존재라는 걸 모두 알게 되고 내가 그 마법을 부린 것이라고 사실대로 말한 그녀만 왕궁에서 쫓겨나게 되었을 때 동생 아이에테스가 말한다.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거야, 키르케. 나는 아버지에게 마법을 우연히 발견했다고 얘기하고, 아버지는 내 말을 믿는 척하고, 제우스는 아버지의 말을 믿는 척하고, 그렇게 세상은 균형을 유지하지. 실토한 누나가 잘못했어. 왜 그랬는지 나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의 말을 통해 보자면 키르케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주 바보같은 존재로 보일 수밖에 없고 실제로 그녀 주변의 모든 이들이 그녀를 그렇게 대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후의 그녀의 삶을 통해 보자면 그녀는 모든 신이 사는 법과는 다른 자기만의 삶, 척하는 삶이 아닌 묵묵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냈다는 데서 결국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1세기의 신화는.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의 캐릭터 설정이 이 책의 중요한 포인트였다는 생각이 든다. 21세기는 영웅을 원하는가? 세상은 지금 영웅을 기다리고 있는가? 글쎄.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분절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는 각자가 각자의 존재 의미를 찾고,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찾아낸 의미를 인정해주는 시대이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숨겨져 있던 존재들을 끌어올려 드러나게 해주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일 것이다. 누군가는 여전히 영웅이 되고 싶어하겠지만 누군가는 그 자리를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다. 영웅의 삶은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텔레마코스라는 인물의 등장은 끈질기게 자신이 원하는 자신만의 삶을 찾기를 갈구했던 키르케의 인생과 맞아떨어진다. 이 소설은 그런 의미에서 21세기를 지나는 우리에게 새로운 모습의 신화를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우리 안의 특별한 신을 발견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단지 우리 안에 진짜 우리를 발견하고 싶을 뿐이다. 마지막 키르케는 선택한다.

 

내가 외우는 주문이 있다만, 그걸 외우면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른다. 심지어 효과가 없을지도 모른다. 크로노스의 힘이 그 땅 바깥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어서.”

 

이 말에 텔레마코스가 대답한다.

 

그럼 다시 가면 되죠. 당신이 이제 그만 됐다 싶을 때까지 다시 가면 되죠.”

 

키르케는 진짜 자기를 찾았다. 그 과정에 수없이 많은 남들에 의해 만들어진, 스스로가 만들어낸 키르케를 부수고, 또 부수면서 나아갔다. 이것은 키르케가 위대한 마녀가 되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다. 키르케가 오직 키르케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다.

 

나에게.

 

나는 오랜 시간 무기력했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내 인생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고, 세상이 나에게 등을 돌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느 누구를 믿어야 하며, 나는 무엇을 향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지난했던 키르케의 서사를 읽으며 축 늘어졌던 어깨가 조금씩 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면 된다. 모든 인간이 똑같을 필요는 없다. 세상은 원래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거라는 비아냥도 이제는 받아칠 수 있는 만큼의 힘이 생긴 느낌이다. 뭐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이제는 한 발짝씩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글이 주는 용기를 나는 이 책 키르케를 통해 경험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