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02 - 멋진 신세계, 2021.1.2.3
문지혁 외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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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Epiic)

 

    

 

 

 다산북스의 신개념 문학잡지 에픽(Epiic)은 장르문학과 같은 문학계 내 구분을 모두 뛰어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계간지이다. 에픽(Epiic)이라는 이름은 본래 서사시, 서사문학을 뜻하는 영단어 ‘EPIC’에 알파벳 I를 하나 더한 것이다. 이는 한 개인 혹은 한 세계가 다른 개인, 다른 세계를 만났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이야기를 상징한다고 한다. ‘에픽의 창간 간담회에서 초대 편집위원을 맡은 임현 작가는 소설이 중심인 기존 한국 문학잡지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다 포괄적인 서사의 개념으로 논픽션과 픽션에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에픽의 창간호는 작년 10이것은 소설이 아니다라는 제호로 발간되었고, 내가 받아본 #02 두 번째 호의 제호는 멋진 신세계이다.

 

멋진 신세계

 이번호의 제호 멋진 신세계‘. 차경희 편집위원의 글을 읽으며 멋진 신세계가 가진 의미를 따라가본다.

 

우리가 맞이한 뉴노멀(신세계)‘은 전혀 멋지다고 할 수 없지만, 전염병의 공포에 맞서면서도 일상을 가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때때로 경탄한 해였습니다.“

 

역설의 디스토피아 / 차경희 편집위원

 

 ’멋진 신세계라는 이름이 주는 역설의 디스토피아. 우리는 점점 멋지게 보이는 찬란한 기술의 신세계를 만들어 가지만 정작 그 속에 살아가는 대부분 이들의 삶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이 괴리 속 디스토피아는 과연 우리 미래의 종착지가 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디스토피아를 뒤집는 인간들의 노력은 또한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에픽(Epiic) 속 이야기들

 

 논픽션 파트인 part1에서는 문지혁 작가가 렉또베르쏘란 예술제본공방의 조효은 대표를 만나 책의 물성, 존재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책의 디스토피아를 묻는 말에 조효은 대표는 인류의 디스토피아는 있을 수 있겠지만, 책은 반드시 살아남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책의 산업적 측면에서는 여러 입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결국 사람은 책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꼭 읽지 않더라도 소유가 가능하다는 책의 물성 또한 이런 입장을 뒷받침할 수 있겠다. 또한 수천권이 넘는 책을 소유했던 문지혁 작가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자기가 쓴 책을 드렸을 때 아버지가 보인 반응을 통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아버지는 그 책을 읽지 않았지만 읽은 거나 마찬가지다 라고 말한다. 책이 가진 물성.

 

눈이 아니라 손이다. 페이지마다 빼곡이 적혀 있는 글자가 아니라, 앞장에서 뒷장으로 넘어갈 때 우리가 필연적으로 한순간 경험하는 어둠과 공백과 멈춤만이 진짜 책이다.

 

앞장과 뒷장의 우주 사이 / 문지혁

 

이러한 책의 물성에 대한 생각은 픽션 파트인 prat3의 첫 작품 김솔 작가의 말하지 않는 책의 내용과도 이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책이란 물질의 속성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은 결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책에게 말을 걸 때만 비로소 책은 대답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책이 대답을 하는 것은 아니고 위대한 책들만 질문에 반응을 하는데, 그 방법은 찰나의 영감과 영원한 침묵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문자에 담기지 않고 여백에 담기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는 책 / 김솔

 

. 이런 식의 연결 너무 좋다. 논픽션과 픽션의 작가들이 서로의 글을 미리 읽어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편집자의 센스가 돋보이는 구성이다. 그러고보니 그렇다. 작년쯤 책이 너무 많아 집이 포화상태가 되어 안되겠단 생각에 전자책을 구입했다. 나름 가독성도 좋았고, 휴대성도 편리했기에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니 역시 책이 주는 촉감과 책을 넘길 때 살짝 불어오는 공기의 흔들림, 묵직함이 그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각의 책이 가진 색깔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 책은 역시 사라지지 않겠구나.

 

part1의 다른 이야기들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구술생애사 작가인 최현숙 선생님이 오랜 만남을 하며 기록한 여성 노숙인과의 이야기. 한 사람을 진심으로 만나기 위한 한 사람의 노력과 그 한 사람과 진심으로 맞닿는다는 것에 대해 깊숙이 생각하게 한다.

 

그녀에게 충분히 닿으려면 내 길을 벗어나야 한다. 우선 내 언어를 넘어서야 하고, 계급에 대한 관점과 페미니즘도 흐트러뜨리며, 양심이나 상식뿐 아니라 질병과 장애에 관한 의학의 규정과 구분도 의심하면서 법과 사회질서가 누구를 위한 질서이자 보안인지를 뚫어지게 보려보아야 한다.여성다움이 학습된 것이라면 어떤 피해자성 또한 학습된 것이라는 의심을 가져야 한다.

두 사람의 내력 만나기 / 최현숙

 

글을 읽으며 글 속 그녀를 통해 나또한 내가 가지고 있던 굳어진 무언가가 깨지는 듯했다. 맞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다른 세계를 만나는 일이다.

 

정명섭 작가의 나는 왜 밀덕이 되었나?‘란 글 또한 그렇다. 개인적으로 오랜 시간 평화 운동을 하는데 시간을 쏟아온 입장에서 왜 필이면? 수많은 덕후 중에 밀덕인가?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글을 통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모두 다 이해되는 건 아니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공감받는 작가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응급실의 노동자들이란 글도 여러 다른 세계를 만나게 해준다. 응급실이라는 일터 안에서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노동자들. 의사와 간호사만이 중요한 것 같지만 각각의 위치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담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없다면 응급실은 절대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쉽게 잊혀지거나, 가볍게 다루어지는 그들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음에 그들과 마주치게 된다면 조금은 더 다른 만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Part2에는 픽션과 논픽션이 만난 1+1 리뷰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요즘들어 많이 느끼지만 서평 또한 이제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은 듯하다. 이들의 리뷰들을 읽으며 어떤 서평을 써야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마지막 Part3에는 위에서 잠시 언급한 김솔 작가의 말하지 않는 책을 포함해 처음에는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던 김홍 작가의 이인제의 나라, 스릴러처럼 꽤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갔던 송시우 작가의 프롬 제네바, 개인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읽는 내내 좀 답답했던 이주란 작가의 이 세상 사람, 가장 지금의 디스토피아적 세상의 단면을 잘 잡아냈다고 느껴진 황정은 작가의 기담(奇談)까지 총 5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서사 중심의 문학 잡지 

 마지막까지 종이의 감촉을 느끼며 에픽을 덮었다. 꽤 여운이 남는다. ’모든 텍스트는 문학이다라는 말이 눈에 들어온다. 세상의 모든 개념들이 재정립되고, 재탄생되는 가운데 문학이라는 개념 또한 새롭게 재정립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에픽은 꽤 재미있는 시도인 것 같고, 독자들에게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떠나 표지에서 보이는 신선함과 내지에서도 공들인 디자인들, 종이가 주는 느낌까지 소장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는 문예잡지라고 할 수 있겠다. 벌써 다음호가 기대된다.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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