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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네 ㅣ 보림 창작 그림책
이미나 지음 / 보림 / 2019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일곱살, 남동생이 다섯살이었던 듯하다.
남동생이 잠을 자다 이불에 실례를 했고,
엄마는 남동생에게 앞집 이모에게 가서 소금을 얻어오라 하셨다.
내가 왜 따라 나섰는지는 모르겠다.
엄마가 따라 가라고 하셨는지,
아니면 동생이 동행을 부탁하였는지,
아니면 내가 누나로서 내동생의 부끄러움을 함께 나누겠다는 책임감에 따라나섰는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나와 내동생은 스텐 그릇을 들고 골목길을 사이에 둔 앞집 이모에게 소금을 얻으러 갔다.
아니 그런데!!!!!!!
소금만을 받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모께서 밥주걱인지 뭔지 모를 주걱으로 내 동생의 엉덩이인지 볼때기인지를 때렸고 내 동생을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분노했다! 이모에게 화를 내고, 내 동생 손을 잡아채고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이모가 동생을 때렸다고 일러바쳤다.
난 시간이 지나서 알았다. 엄마도 다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른들은 우리들의 그런 모습에 미소를 지었으리라.
그 때는 억울했고 분했지만 동생이나 나나 지금은 웃으면서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보면 나름의 추억으로 자리잡은 듯 하다.
나 어릴적 살았던 동네는 그랬다.
앞집에도 이모, 뒷집에도 이모, 옆집에도 이모.
엄마 또래의 여성들은 '이모'라는 호칭으로 통일되었고
여름에는 김장 담그는 아주 커다란 빨간통에 물을 받아 동네 아이들과 물장난을 쳤고
동네 언니 오빠들을 쫓아 다니며 풀이며 꽃을 꺾고,
개구리 잡고 올챙이 구경하고 그랬다.
나 어릴적 그곳은,
이모들이 있었고, 동네 언니 오빠들이 있었고, 동네 친구들이 있었고,
골목길이 있었다.
내가 나의 또래들과 함께 어울렸다면
우리 엄마는 아이가 이불에 실례를 한 것을 이웃집과 공유하며
그 버릇을 고치기 위한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고 나누었을테다.
그리고 한집에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며 자질구레한 '부업'을 함께 하였고
또 단체로 쪼르르 누워 얼굴팩을 하였다.
여름에는 골목길 평상에 모여 앉아 수박을 함께 나눠먹고,
겨울에는 따뜻한 아랫방에 모여 앉아 고구마를 함께 먹었던.
지금 생각해보면 '시골'에서나 있음직한 모습이 아닐까 싶은 풍경이
대도시에 살았던 나의 '어릴 적 그곳'의 모습이다.
초등 고학년 때 뿔뿔이 흩어져 '아파트'라는 새로운 둥지에 들어간 후
내가 부를 수 있는 '이모'들의 수는 현격하게 줄어들었고
아동납치사건이 크게 몇 건 있은 후로는 동네 아이들과 우리끼리 어디를 간다는 것은 금지였다.
'한 동네, 한 마을, 이웃 사촌' 이라는 것이 단어뿐만아니라
그 실체가 정말로 존재 했던,
정다웠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책을 보았다.
나의 동네 / 이미나 지음 / 보림
'우체부'가 계단을 자전거를 들고 오르고 있는 표지이다.
오토바이가 아닌 자전거, 옆으로 맨 우편물이 담아 있을 빨간 가방을 보니
아날로그적 감성이 느껴진다.
푸르름이 가득한 색감과 소매를 걷어붙인 우체부의 모습에 여름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작가 이미나
1991년 태어났습니다.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했습니다. 익숙한 장소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때, 새롭게 보이는 풍경과 기분을 좋아합니다. 시골에 사는 부모님을 뵙거나 학교에 가기 위해 사계절 내내 버스를 타다 보면 어느 길목에나 길고 짧은 터널들이 있었습니다. 차들이 무심히 지나가 버리는 터널에도 다시 찾아와 머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어 이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어느 여름날, 훅 불어오는 바람에서
어릴 적 살던 동네의 냄새가 났습니다.
우리 동네, 단짝 친구, 여름날들.......
나는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우체부가 편지를 전해 줄 거예요.
작가가 느꼈을 냄새는 어떤 냄새였을까?
아마도 싱그러운 풀냄새가 아니었을까?
여름을 알리는 냄새에 여름이었던 어릴 적 동네의 모습이 떠오른게 아닐까?
작가는 '냄새'에 '어릴 적 동네'를 떠올렸고 그 때 함께 했던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 편지는 그 때의 모습을 한 '우체부'께서 기억 속 그 때의 동네로 배달을 간다.
우체부는 작가가 쓴 편지를 배달하기 위해
골목길을 누비고
계단이 나오면 자전거를 들고 오른다.
너희 집으로 가는 골목길은 온통 푸른빛이고,
골목을 나서면 집 앞 나무가 바람에 천천히 흔들리고....
어린 무화과나무였어.
무화과가 잘 매달려 있는지 매일 세어 봤는데,
개마들이 열매마다 구멍을 내는 바람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생각이 나.
나무가 잘 크려면 매일 물을 주고
말을 걸어 줘야 한다고 네가 그랬는데,
이제 나무도 너도 키가 다 컸겠지?
그 때 아이들이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상상을 하니,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작가는 친구에게 편지가 도달하지 못할 것을 예상하기도 한다.
그때의 친구가 쪼르르 나와 반겨줄 것 같지만,
누군가 새로 이사를 왔을 수도 있고,
친구가 멀리 여행을 떠났을 수도 있을거라고...
만약 이 편지가 잘 전해져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우리를 졸졸 쫓아다니던
해피에게 인사하고
골목길 화분에 몰래 심은
분홍색 씨앗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텐데.
과연 작가의 바람대로 편지는 전해졌을까?
추억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커다란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외로운 삶에서 조금은 따스한 기운을 주지 않을까.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귀찮아하지 않고
내 손을 잡고
들판이며 뒷산이며 놀이터며
데리고 다녔던 언니오빠들.
소꿉놀이 함께 하며
놀았던 나의 친구들과 동생들.
잘 지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지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