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페미니즘
니나 파워 지음, 김성준 옮김, 미셸 퍼거슨 해설 / 에디투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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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불평등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는 없고, 불평등의 찬가, 현실 긍정의 찬가가 유행한다. 그것도 다름 아닌 불평등의 희생자들 사이에서. 불평등의 희생자들이 오히려 불평등을 옹호하고 평등의 외침을 비웃는 이 기이한 현상은 어떻게 된 일인가? 불평등의 희생자들이 왜 불평등에 동의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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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했다는 것이 임박한 파국에 맞서 승리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단지 무지 그리고/또는 무시로 인해 승리가 저지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이 말이 패배한 자의 자기 합리화나 자기 위안으로 들린다면, 그것은 스스로가 현실의 인질이 되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스스로 만든 현실의 인질이 된 불평등의 희생자들이 보이는 ‘스톡홀름 증후군’의 표현이라면 지나친 자학일까.”(안규남, 2013: 122-123)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여성’이 되고자 하는 갈망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바로 저기의 ‘무엇’의 선택지로 포함된 것들에 깔린 욕망은 누구에 의해 구성되었는가? 이제 객체화 혹은 대상화의 문제를 넘어서서 페미니즘이 새로운 미래로 가야 한다는 진단(Power, 2018: 66-67)은 어쩌면 이 사회에서 여성은 이미 ‘객체’ 혹은 ‘대상’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 이는 한편으로는 수전 J. 더글러스가 지적했던 ‘진화된 성차별’의 힘일지도 모른다.

진화된 성차별은 페미니즘을 통해 사회가 충분히 진보했고 평등이 이루어졌으니 대상화는 정당한 유머로 소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속에서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여성들이 ‘남성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한에서’ 섹시해야 진정한 힘을 얻을 수 있고, 여성들은 성적 매력으로 대결하게 된다. 따라서 진화된 성차별은 여성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보다 더 나아가지는 못하도록 막아서 페미니즘 정치를 무화시키려는 의도를 가진다. 이러한 ‘모든 걸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구조적 차별과 연대를 통한 해방의 전망을 개인화하고 또 다시 노력이라는 사적인 영역으로 몰아넣는다(Douglas, 2016: 21-23, 34). 이처럼 “국제주의적이고 정치적인 자질들을 모두 제거한 페미니즘은 딱 모조 다이아몬드가 박힌 스마트폰 커버만큼만 급진적이다(Power, 2018: 72).”

어쩌면 저 ‘진화된 성차별’은 페미니즘이 도둑맞은 결과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는 계속해서 페미니즘의 언어를 빼앗고 여성과 남성을 모두 ‘동등하게’ 시장으로 포섭하여 상품으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의 외모나 매너, 외양은 이제 더 이상 어딘가에 감춰져야 할 것이거나 가까운 이들에게만 적실성을 갖는 무언가가 아니라, 그 사람의 전부다(Power, 2018: 61).”

즉, 어떤 이의 신체언어는 곧 그 사람과 등치된다. 공적 공간에는 언제나 암묵적인 점유자와 그들에게 맞는 각본이 설정되어 있고, 거기에 맞지 않는 젠더화된 존재인 여성들은 항상 ‘현미경 같은 감시’ 하에서 ‘대표성에 대한 부담감’을 지고, 남성보다 훨씬 뛰어나야 동등한 위치에 갈 수 있다. 사람들이 여성 신체가 타당한 역량을 체현했다고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Puwar, 2017: 111-113, 180).

여기서 요구되는 신체언어는 부르디외의 용어를 빌리면 하비투스라 할 수 있다. 이는 가장 자연스럽고 사소한 일상적인 신체의 움직임에까지 파고들어 있기 때문에 의지나 자성적 통제의 범위 밖에 있다. 그래서 이 하비투스를 충실히 습득한 이들은 그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그리고 사회의 포섭/배제는 정확히 이 하비투스를 갖추었는지 아닌지를 통해 이루어진다. “체현된 주체가 활동하는 사회 게임을 지배하는 암묵적 규범성―신체가 중요한 장소이다―이 있다”는 말이다(Puwar, 2017: 193, 217-219).

니나 파워가 이 책의 가장 첫 장에서 지적하는, “현대 여성의 성취”가 “값비싼 핸드백을 들고 자위용 바이브레이터와 직업, 아파트, 그리고 남자를—아마도 이 순서를 그대로 따라서—갖는 것”과 같은 “‘음탕한’ 자기만족”으로 그려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어떤 새로운 문제의식이 필요한가? 이 문제에 대해 이 책은 어떤 이야기를 더 담고 있을까?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경우에 대한 더글러스의 경고로 『도둑맞은 페미니즘』의 1차 독후감을 맺는다.

“보라. 사회 질서는 유지되었고, 여성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으며, 남성들은 종전보다 더 많은 경제적ㆍ정치적 자유와 선택권과 힘을 갖게 되었다.”(Douglas, 2016: 526)

참고문헌
- 안규남, 「옮긴이의 말」, 지그문트 바우만,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안규남 옮김, 동녘, 2013
- 수전 J. 더글러스, 『배드 걸 굿 걸 - 성차별주의의 진화: 유능하면서도 아름다워야 한다는 주술』, 이은경 옮김, 글항아리, 2016
- 너멀 퓨워, 『공간침입자: 중심을 교란하는 낯선 신체들』, 김미덕 옮김, 현실문화,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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