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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만큼 자라는 아이들
박혜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6년 11월
평점 :
절판
우선은 아이를 셋이나 낳고 전업 주부로 지내다가 40의 나이에 여성학과의 문을 두드려 여지껏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저자의 이력 자체가 살아있는 여성학 교과서이다. 게다가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청소는 포기하고 지저분하게 살기로 했다는 이야기나. 수험생인 자식을 두고 중국에 갖다올 정도로 아이들에 대한 방임적 태도는 요즘의 과잉 교육 열기 속에 정말 용감한 사람이구나 하는 감탄이 들었다.
심하게 말하자면 아이들을 부모의 욕망덩어리로 만들어버리는 상황들을 종종 목격하는 요즘 아이들을 있는 그 자체로서 인정해 준다는 믿음이 얼마나 값진 것인다.
하루중에 절반 이상의 시간을 자식이 부모를 떠나 있지만 24시간 모두를 품안에 데리고 있으려 하고 그래서 마찰이 생기는 상황은 우리 집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기에 읽어가는 내내 어머나, 어머나 하는 감탄을 연발했다. (물론 우리 부모님은 다른 생각이시겠지만)
물론 서울대 출신인 부모의 자식들은 당연히 부모 닮아서 머리가 좋을 것이고, 또 돈으로는 부유층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부모들의 학력과 직업, 그로인해 교류하는 사람들만으로도 대단한 문화자본을 가진 계층이기에 감히 책 제목을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이라고 지어서 다른 부모들이 자식을 믿지 못 하는 것으로 취급해 버리는 건 너무 거만한 태도가 아닌가 싶다는 아니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간 저자의 활동 자체가 자신이 처한 물적 기반을 무시한채 잘난척 한 것이 아니었기에, 또 이 글을 읽는 나 또한 문화자본의 수혜를 당당히 거부하고 있지 못 하기에 그의 삶속에 녹아있는 여성주의를 충분히 인정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