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 - 상대의 말이 듣기 힘들 때 후회되는 말을 했을 때, 꼬인 관계를 풀어주는 연결의 대화 수업
박재연 지음 / 한빛라이프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

 

몇 년 전, 날이 더운 여름이었다. 책을 읽으려 나는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더위에 예민한 아빠는 에어컨을 틀었는데, 내가 방문을 닫고 에어컨 바람을 안 쐬는 게 이해가 안 가셨나 보다. 부엌에서 특유의 구시렁이 시작됐다.

날이 이렇게 더운데 방문은 꽉 닫고 틀어박혀서... 참나...”

가만히 듣고 있다가 화가 나서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는 제가 방문을 닫고 있는 게 마음에 안 드시는 거예요, 아니면 걱정되시는 거예요?”

걱정돼서 그런다, 걱정돼서! 날이 더운데 쪄죽을까봐!”

그럼 민주야, 네가 더운데 방문을 닫고 있으니까 건강이 상할까 걱정된다하면 되지, 왜 화를 내세요?”

 

딸을 걱정하는 마음을 비난하듯 구시렁대고 화내듯이 소리지르는 아빠를, 나는 싫어하면서도 이해한다.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표현을 제대로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걱정을 짜증이나 화로 표현하기도 했고, 서운하고 슬픈 마음을 상대를 비난함으로써 해소하기도 했다. 내 본심은 그게 아닌데, 솔직하게 표현하면 괜히 분위기 어색해질 것 같고(오글) 혹은 내가 지는 것 같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본심과 다른 부정적 표현은 결국 상대와 나를 멀어지게 했다. 떠나는 상대 앞에서도 나는 애써 쿨한 척하며 속으로만 감정을 삭였다.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는 그래서 읽게 된 책이었다. 이제는 좀 제대로 표현하고 싶어서. 솔직하게, 그러면서도 부드럽고 따뜻하게 내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서. 그리고 타인의 말을 제대로 듣고 싶어서. 내가 솔직한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상대 또한 그런 경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다르게 말했다면, 혹은 다르게 듣고 다르게 반응했다면…… 아프게 남은 관계들이 남긴 숙제를 이제는 풀고 싶었다.

 

저자는 심리상담가이자 대화훈련가이다. 저자의 이력에 걸맞게 책은 심리학적 내용과 대화 연습 워크북의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계를 고통스럽게 하는 자동적 생각, 인지오류, 핵심 신념을 다루고(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는데 부정적 내용일 경우 관계에 악영향을 미친다), 자동적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핵심욕구를 올바르게 표현하는 대화 연습을 한다. 뿐만 아니라 유난히 불편한 상대의 말에 대해, 그 말에 담긴 욕구는 무엇이며 나는 그것이 왜 불편한지 들여다보는 챕터도 있다. 마지막으로 화가 날 때, 부탁할 때, 미안할 때, 거절할 때, 갈등을 중재할 때, 감사할 때 등 각각의 상황에 적절한 말하기 표현법을 배운다.

 

책이 소개하는 다양한 사례들 또한 인상깊었다. 때로는 저자의 경험이, 때로는 대화훈련에 참여한 사람들의 경험이 공감을 사게도 마음을 아프게도 했다. 내가 듣고 싶던 말, 내가 하고 싶던 말이 각각의 사례에 녹아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두 사례가 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엄마가 치유캠프에서 딸에게 편지로 전한 미안하다는 말.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엄마가 되어 수없이 미안한 게 많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수없이 미안한 마음을 전했지만 처음 입 밖으로 꺼낸다는 말. 우리 엄마도 자존심이 강한 편이라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잘 못하시는데, 꼭 우리 엄마가 쓴 편지 같았다. 엄마도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내가 엄마를 조금 더 이해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는 강아지 산책에 대한 모자의 대화였다. 강아지 산책을 시켰을 때 아들의 엄마 귀찮지? 엄마는 귀찮으면 꼭 다른 사람 시키더라. 나도 귀찮아.”라는 말에, 평소(“, 이놈아. 그것도 못 하냐? 그럼 저 개 다른 집 갖다줘!”)와 달리 본인도 모르게 , 귀찮아? 너도 엄마랑 똑같은 마음인 것 같다. 지금 쉬고 싶어?”라고 말했고, 그에 아들이 빤히 쳐다보다가 엄마 왜 그래?”라고 했다는 사례. ㅋㅋㅋㅋㅋㅋ 부끄러웠지만 계속해서 욕구에 대한 대화를 이어나갔다는 어머니는 욕구를 이해받고 순순히 강아지 산책을 나간 아들에게, 이렇게 착한 아들에게 그동안 무슨 말들을 퍼부어댔는지를 반성하며 우셨다고 한다. 학원강사로 일할 때 아이들을 대하며 수없이 했던 생각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착한데, 조금만 따뜻하게 대해주면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아이들인데, 내가 너무 성적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에만 연연해 모질게 굴지 않았나... 반성을 한다고 행동이 고쳐지는 건 아니어서 원래 말 심하게 하시잖아라는 말로 학원생활을 마무리한 나에게 더 와닿은 에피소드였다.

 

이 책이 가장 좋았던 점은 “~라고 말하면 상대의 호감을 살 수 있습니다라는 식의 처세술이나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말을 하거나 들을 때 거기에 담긴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했으며, 거기에 더해 실제로 대화 훈련을 할 수 있게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혼자 책을 읽어나갔지만, 실제로 파트너와 함께 대화 훈련을 하기에 무척 유용하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 관계가 어려운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 참고하면 좋은 책일 것 같다. 또한 모임에서 활용하기에도 적합할 것이다. 앞부분의 심리상담적 설명이 내가 실제로 상담을 받으며 혹은 심리학 서적을 읽으며 접했던 내용들이어서, 책을 읽고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치유 효과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불편한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대화로 관계를 풀어나갈지 항상 옆에 두고 참고할 만한 책이다.

 

똑같은 말도 누군가는 웃으며 넘기고 누군가는 며칠, 길게는 몇 달 혹은 몇 년을 앓는다. 똑같은 행동도 누군가는 화를 내고 누군가는 축하한다. 본인의 말이나 행동에서 문제의식을 느낀 적이 있다면, 이제는 그 패턴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본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꼭 읽어보기를 권하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