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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없는 성적표
류태호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18년 6월
평점 :
모두들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말한다. 지금의 교육으로는 대비가 되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창의성과 사고력을 키우는 교육으로 변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면 당장 입시를 없애야 하나? 그럴 순 없다. 그러면 어떻게? 모두들 입을 다문다. 그리고 잠시 후, 아무튼 그래도 교육을 바꿔야 한다고 다시 떠들 뿐이다.
이 책은 출세와 입시, 교육이 맞물려 있어 쉽게 손대기 힘든 우리나라 교육에 시사점을 던져 준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성적 없는 성적표'를 통해서 말이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성적 없는 성적표'에 대해 이야기하면 '성적 없이 성적표가 어떻게 존재해?' '대학은 어떻게 가?' 등등의 논란이 일 것이다. 저자는 성적 없는 성적표란 무엇인지, 성적 없는 성적표를 통해 입시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성적 없는 성적표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한다. 지금의 객관식 시험이 얼마나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그렇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이 대두되는 오늘날에 부합하지 않는 시스템인지를 교육의 역사를 짚어보며 설명해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거에 그런 교육이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지금 역량 중심(강화?)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지 또한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3차 산업혁명시기에는 '숙련된 노동자'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숙련된 노동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암기력과 문해력, 계산 능력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강조된 것이 3R(reading, writing, arithmetic)이다. 또한 학생수가 많아 효율적인 성적(혹은 노동 능력) 매기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효율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있는 객관식 시험을 도입해, 1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운 후 1등부터 채용해갔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문해, 암기, (단순)계산은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계가 할 수 있다. 사람은 보다 고차원적이고 추상적인 사고를 통해 일해야 한다. 학생 수 또한 점차 줄고 고령화가 일어나고 있다. 더 이상 3R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또한 객관식 시험의 문제점 또한 발견되었다. 객관식 시험이 진정한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가? 찍어서 맞히는 것도 진정한 실력인가? 그래서 도입된 것이 정성적 평가를 하는 입학사정관제였고, 각종 논란이 있지만... 성적 없는 성적표, 역량 중심 성적표는 (일단 지금 보기에) 이를 보완한다. 스마트 시대에 걸맞게, 평가에 대한 근거 자료를 스마트한 방식으로 제공해준다. 학생이 썼던 에세이들, 참여한 토론 동영상, 교사의 구술 평가 등등... 입학사정관이 학생에 대해 관심이 있고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학생의 실제 교육내용을 참고해 평가할 수 있다. 생기부에 기록이 되느냐 마느냐로 입학결과가 갈리고, 객관적이고 공정하지 못하다고 욕을 많이 먹고 있는 우리나라의 입학사정관제에도 통찰을 줄 듯하다.
그리고 역량 중심 성적표는 입시보다 더 중요한, 학생의 능력 강화에 목적이 있다. 학생이 시험을 보고 70점을 받았다면 70점 받음 끝. 이 아니다. 100점 만점에서 70점을 받았는데 30점은 왜 깎였는지, 해당 교과에서 무엇이 부족했는지(역량 중심에서는 어떤 역량이 부족한지, 즉 계발해야 하는지)에 주목한다. 그럼으로써 성적표는 공부의 끝이 아닌 시작이다. 단순히 학교를 다니고 수업을 들어 졸업하는 것이 아니라 역량을 계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므로 해당 역량이 계발되지 않았다면 졸업할 수 없다. 다시 수준에 맞는 교육으로 역량을 계발하는 과정을 거친다. 기존 수업에서 20점을 받고 앞으로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계속 20점을, 혹은 그 이하의 점수를(운이 좋으면 가끔 찍어 더 맞겠지만) 받았을 학생이, 이제는 20점을 받았다면 점차 50점, 80점, 결국은 100점까지 향해 가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학생 중심 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역량 중심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교육의 목적, 학생을 위한 교육이라는 거창한 말을 붙이지 않아도 그렇다. 더 이상 암기식/주입식 교육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사실 이전부터 말이 많았지만). 그건 인공지능이 다 알아서 할 거고, 학생들은 수많은 정보 내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고 그 정보를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정보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고, 필요하다면 꾸준히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힐 수 있어야 한다. 바야흐로 평생학습시대, 그리고 학습에 있어 점수가 아닌 '역량'에 주목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수업을 들었고 시험도 잘 봤지만 정작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를 몇 번이고 맞닥뜨렸던 나는(대표적으로 영어 회화... 100점이지만 외국인과 의사소통할 수 없다...) 아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역량중심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 물론 성적 없는 성적표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고 각종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교육의 근본적인 방향이 하루라도 빨리, 노동자 양산에서 고차원적 사고능력 배양+협업능력 강화로 가야 한다는 점에는 모두들 이견이 없을 것이다. 왜 미국에서 성적없는 성적표를 도입했는가? 우리나라 교육에 많은 참고점이 될 책이다.
- 별점을 뺀 이유는, 논문 읽는 느낌이 들었고(동어반복이 많음), 미국식 성적표가 그대로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식이라면 어땠을지가 나왔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