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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녀의 머리 없는 시체
시라이시 가오루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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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대체 세상 누가 편의점 직원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겠는가. 그러나 직원 입장에서는 그렇지도 않은지 그녀는 내 이름부터 회사, 게다가 당연하게도 좋아하는 도시락과 빵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 최근에는 각종 공과금 입금도 편의점에서 할 수 있으니 얼굴이나 이름이 인상에 쉽게 남을 가능성이 높다. 과연 관심이 없는 듯 보이는 상황이라도 관심를 받고 있다. 도시란 절대 고독하지 않다.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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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본인은 세계적으로 드물게도 범죄자를 동정하는 경향이 강한 민족이다. 아무리 흉악범이라 해도 그 사람에게 일단 감정을 이입한다.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선한 마음을 기대하는 것은 이 좁아터진 나라에서 타인을 신뢰하지 않고서는 살아가기 어려웠던 상호의존성의 흔적이기도 하다. (...)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지금은 오전 회의 중이다. 집중해라, 가오루.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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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은 그다지 의식하지 못하지만, 도쿄는 세계 3대 시장 중 하나다. 뉴욕 런던 그리고 도쿄에 설치된 주식 시장은 그대로 미국, 유럽, 아시아 경제의 생명선이다. (....) 그렇다면 왜 오테마치 본사로 형하고 있냐고?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간사이 농기구 업체 사장단을 배웅했으니 보고를 하러 돌아가는 중이다. 게다가 오후부터는 일상 업무도 있다. 그래서다. 뭐지? 대체 나를 뭐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여기까지 읽고도 나를 모르겠나?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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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 너무 웃기다. 평범한 회사원이면서 동시에 어쩌자고 시부야 하치코(강아지) 동상 앞에 ‘그녀’의 머리를 잘라놓는 사건을 벌이고 시작한다. 세상은 발칵 뒤집히고, 주인공인 가오루는 대체 뭘 목표로 하는 것인지 의도를 짐작하지 못하겠는 독자들에게, 가오루는 아주 성실하고도 기지를 발휘하는 회사생활을 묵묵히 해간다. (미생 못지 않게 회사원의 고충이 리얼하다.) 대정전이 일어난 도쿄에서도 보고 및 오후 업무를 위해 꾸역꾸역 복귀하는 장면도 그렇다.
이 소설은 '시라이시 가오루'라는 평범하지만 그 머릿속만은 범상치 않은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한 번뿐인 인생에 뭐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이 생은 다 해도 좋다는. 일본스러운 괴짜 캐릭터가 짠하기도 하고 뭐 이런 놈이 싶기도 하고.
시체가 등장하지만 잔인하지 않은, 무엇보다 볼드 표시를 한 본문의 이 유머 코드가 맞으신다면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