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 오브 라이프 - 삶을 마감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찾아서
사사 료코 지음, 천감재 옮김 / 스튜디오오드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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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가 사랑 받는 이유는 (조)부모님과 제일 짧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어릴 때는 마냥 크고 만 싶었는데, 어느 순간 더 이상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된 것도 바로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때문이었다. 


먼저 멀리 떠나간 가족들을 만나러 납골당에 갈 때마다 곁에 자리한 사람들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곤 한다. 저 사람은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아이고 저 아이는 아직 어린데 너무 아깝다. 나와 동갑인 사람들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한 해, 한 해 지날 때마다 나이가 들어가는 나와 아직도 어린 친구들을 보면서 '여어, 올해도 나는 나이를 먹었구만' 하면서 마치 할머니가 되기라도 한 양 말도 걸어 본다. 


겨우 10초 차이로 큰 사고를 면한 적이 있다. 10초만 늦었으면 나는 평생 불구가 되어 병원 신세를 지거나 즉사했으리라. 그 즈음부터 질병, 그 중에서도 '암'으로 죽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있다. 물론 항암제와 진통제로 간신히 버텨야 하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들지는 세상 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복수가 차고 고통에 몸부림쳐도, 작별 인사 한 마디 못 하고 갑자기 떠나가는 것보다는 덜 고통스럽지 않을까.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어쩌면 가족들과 함께, 가족들의 곁에서, 마지막 순간을 눈에 담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행운아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이 책을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아마도 '집', 아니면 '인생', 그것도 아니면 '삶'?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왠지 죽음 보다는 우리의 인생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곧, '생애주기'라는 것이 마치 4계절과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새싹이 돋아다는 봄은 세상에 태어나 앉고, 서고, 걷고, 뛰는 것을 배우는 어린시절의 우리다. '커피 프린스'와 '스물 다섯 스물 하나'와 같은 여름 냄새 물씬 나는 청춘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가? 봄을 거쳐 어느정도 몸집이 커진 2-30대 청춘들은 여름을 지나며 그 잎을 푸르게, 더 푸르게한다. 그리고 찾아온 가을. 자식을 키우고, 내보내고, 곧 찾아올 차가운 겨울을 기다리는 계절. 그리고 마지막으로 겨울은 우리의 인생을 마무리 하고 우리가 온 곳으로 돌아가는 시기다. 그래서 이 책은,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을 지나 조금 이른 겨울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랑하는 가족과 따뜻한 집(home)을 두고 딱딱하고 불편한 병원 침대에서 춥게 마지막을 보낸 나의 가족들을 보면서, 과연 그것이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을까 항상 고민했다. '집에 가자, 집에 가자' 몇 밤만 자면 다시 집에 갈 수 있다고 거짓으로 약속하면서. 


'재택 의료'라는 개념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되었다. 함께 조개를 따러 가고 디즈니랜드에 가고 연주회를 열어주는 의료인의 도움을 받아 따뜻한 집에서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다니. 


나는 언제까지 벛꽃을 볼 수 있을까? 나는 언제까지 해수욕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제까지 단풍 사진을 찍고, 눈사람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Home은 개념으로서의 ‘우리 집‘, house는 그릇으로서의 ‘집이라고. at home이라든지 homeground라는 어휘에서 알 수 있듯이 home은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마지막으로 돌아가야 할 장소일 것이다. - P78

암에 걸림으로써 흘러가는 시간이나 풍경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져요. 멋진 일이나 행복한 일, 기쁜 일도 많은데 젊다는 이유로 어째서 비극인 것처럼 말을 하느냐, 내 인생에 대해서 뭘 알고 그러느냐 싶죠. - P113

의사였던 사람 집에 왕진을 가면 낡은 청진기가, 작가였던 사람 집에 왕진을 가면 산더미처럼 쌓인 문헌이 보인다. 그 물건들이 그 사람을 대신해 과거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집은, 환자의 가장 좋았던 나날을 알고 있다. - P181

"내년에 나, 벚꽃 볼 수 있겠죠?"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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