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단
제바스티안 피체크.미하엘 초코스 지음, 한효정 옮김 / 단숨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주인공이 자신의 딸이 납치된 사실을 알게 된다. 납치범은 자신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주인공은 납치범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여기까지는 사실 새로울 것 없는 설정이다. 아마 스릴러물에서 수만 번은 족히 쓰였음직한 설정. 하지만 만일 남자의 직업이 법의학자라면 이야기는 조금 새로워진다. 그리고 납치범이 제공하는 단서가 시체를 매개로 한 것이라면 이야기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진진해진다.

 

헤르츠펠트. 바로 그 불행한 사내의 이름이다. 유능한 법의학자이며 정의감도 웬만큼 갖춘 시민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부검 도중 전화번호와 딸 한나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발견한다. 헤르츠펠트는 납치범이 제공하는 단서에 의지해 딸을 찾아낼 수밖에 없다. 그 단서란 태풍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헬고란트 섬에 있는 시체를 부검해야 얻을 수 있다. 그 시체를 발견한 만화가 린다에게 헤르츠펠트는 부검을 부탁한다.

 

잊고 있던 4년 전의 사건이 헤르츠펠트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4년 전 동료 법의학자 마르티넥의 딸 릴리가 납치돼 변태성욕자에게 끔찍한 성적 학대를 당하고 사슬에 목매어 죽은 채 발견된다. 그러니까 릴리는 고통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마르티넥은 헤르츠펠트에게 릴리가 자살한 사실을 숨겨달라고 부탁했지만, 규정을 어길 수 없던 헤르츠펠트는 그렇게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마르티넥의 딸을 학대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남자는 겨우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헤르츠펠트는 마르티넥이 이 사건에 관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딸을 납치하다니! 너무 지나친 것 아닐까? 헤르츠펠트도, 그리고 이 소설을 읽는 나도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질문을 품고 이 소설은 달려간다.

 

평소 공포영화를 즐기지 못하는 이들도 무섭다, 무섭다, 눈을 가리면서 기어코 보게 되는 영화가 있다. [차단]은 말하자면 그런 식으로 즐기게 되는 소설이다. 린다가 해부실에 들오려 하는 침입자로부터 피해 냉장고로 들어가는 장면은 놀랍다. 침입자는 해부실에 들어와 냉장고 바로 앞에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고, 린다는 그 숨소리를 들으며 뻣뻣하게 누워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침입자에게서 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침입자가 갔다고 판단한 린다는 냉장고에서 나가려 한다. 그리고 이 소설의 서술자는 이런 문장을 툭 던진다. “그녀로부터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 한 남자가 암흑 속 해부실의 두 해부대를 사이에 두고 웅크리고 앉아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면서도 페이지를 넘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작가는 공포를 어떻게 활용해야 독자가 숨죽이며 읽게 되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추리 소설은 아이디어는 좋은데, 대사나 문장이 뻑뻑해 한 번 읽고 나선 다시 찾게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이 소설을 시간이 지난 뒤에도 다시 찾아 읽을 것이다. 이를 테면 이런 대목 때문이다. 딸의 행방을 찾기 위해 제발 도와달라며 부검을 부탁하는 헤르츠펠트에게 하는 린다의 대사. “전 수년 전부터 채식주의자였어요. 마지막으로 언제 스테이크 고기를 썰어봤는지 이젠 기억조차 할 수 없어요.” 이런 대사 덕분에 이 소설은 언제 다시 읽어도 읽는 재미를 준다.

 

[차단]은 스릴러로서 제공하는 쾌감도 상당하지만,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 또한 의미심장하다. 불완전한 사회 시스템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범죄자를 사회에 복귀시키는 것은 정당한가. 사람들은 자신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시스템을 의심하려 하지 않는다. 이 소설의 주인공 헤르츠펠트가 그랬듯 나 역시 내가 이런 사건의 당사자가 되리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의 법은 여전히 가해자에게 너무 관대하지는 않은가. 이 것이야 말로 독일에서 건너온 일급 스릴러 [차단]이 한국에 던지는 질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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