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수업 - 천재들의 빛나는 사유와 감각을 만나는 인문학자의 강의실
오종우 지음 / 어크로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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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무엇을 하는가?”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예술을 공부하는 사람이 종종 받게 되는 질문이다. 아니, “예술은 내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라고 해야 좀 더 정확할 듯하다.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할 때의 어조는 정중하거나 상냥하지 않다. 대개는 ‘따지듯이’ ‘도발하듯이’ ‘신경질적으로’ 질문한다. 마치 자신이 예술이란 것과 원수를 지고 있다는 듯이. 어쩌면 이것은 우리 삶에서 예술이 너무 멀리 있고, 선택받은 소수만이 온전히 즐길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예술 수업]의 저자 오종우 교수는 예술은 실용적이라고 말한다. 무슨 말인가. 예술을 무엇에 써먹을 수 있단 말인가. 저자는 우선 ‘실용’이란 말의 의미를 되짚어 준다. 실용은 실제로 쓸모가 있음을 의미하는데, 따라서 쓸모가 없어지면 소멸하기 마련이다. 예술이 인류 역사에서 한 번도 소멸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예술이 실용적임을 증명하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를 인용하며 “주어진 규율과 질서에 순응하며 사는 게 실용적인 태도”라는 생각을 교정해 준다.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매뉴얼과는 달리 갑작스럽게 변한다. 이처럼 갑작스럽게 변하는 현실을 창의적으로 해석해 대처하는 것이야말로 실질적인 삶의 태도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이런 창의적 해석을 하게끔 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너무도 적절해서 뼈아프게 느껴지는 지적이다. 흔히 실용적이라고 생각되는 학문들로만 훈련받은 사람들이 막상 대형사고가 터졌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것을 우리는 작년에도 끊임없이 목도했고, 지금도 보고 있지 않은가. 

 

예술이 우리 삶에서 필요하다는 건 이해가 된다. 그런데 너무 어렵게 느껴지는 예술작품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저자는 음악과 미술, 문학, 영화 등을 통해 직접 보여준다. 음악을 들으면서, 그림을 응시하면서, 소설을 읽으면서. 음악감상을 위한 QR코드도 있고, 생생한 도판도 있고, 단편소설도 수록돼 있으니 이보다 간편할 수는 없다. 아마도 살면서 수백 번은 들었을 에리크 사티의 <짐노페디>를 오종우 교수의 문장을 읽으며 다시 들으니 무척이나 새롭게 느껴진다. 이 곡에서 저음과 고음, 꿈과 현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칸딘스키의 그림과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2번 왈츠Ⅱ>를 함께 감상하면서는 대상을 계량화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현실을 왜곡한다는 것도 느낀다. 이처럼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예술을 어떻게 독학해야 할지를 배운다. 이를 테면 ‘드라마’의 성질은 위해서는 그 형용사 ‘드라마틱’에서 알 수 있다며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명사로 굳어진 용어나 개념의 본질을 알기 위한 출발점은 그 것이 아직 굳어지기 전의 상태, 즉 형용사의 형태로 나타내는 의미를 밝혀보는 일입니다.” 이런 말은 더 이상 어떤 교육기관에 적을 둘 일이 없을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정말 고마운 조언이다.

 

이 책에서 가장 반가웠던 대목은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에 관한 수업이었다. 이 소설은 내가 가장 여러 번 읽은 단편 소설이다. 뭐, 이 소설이 마냥 좋아서 되풀이해서 읽었던 건 아니다. 단지 체호프의 작품 중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기에 펼쳤던 소설에서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고, 무엇이 이 소설을 위대하게 만들었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오기가 발동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끝내 나는 이 소설에 깃든 비밀을 알아내지 못했다. 남녀의 불륜을 다룬 이 소설이 왜 뛰어난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에 [예술 수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저자의 설명을 듣고 보니 내가 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의 진가를 깨닫지 못했는지 알 것 같다. 나는 이야기의 큰 줄기에만 주목했을 뿐 체호프가 이야기 사이에 숨겨둔 아름다운 가지와 꽃들을 살펴보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령 사소해 보이는 주인공 구로프가 딸이 나누는 대화 에피소드를 놓쳤던 것이다. 체호프가 무심한 듯 던져놓은 이런 소소한 대목이 어떻게 사실(fact)와 진실(truth)의 관계를 보여주는지 저자는 내게 일러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한숨을 쉬었다. 이제껏 내 삶에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음악이나 미술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살아온 게 억울해서였다. 그렇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저자는 책을 닫으면서 예술작품을 통해 얻어진 지적 능력이 우리 삶에서 왜 필요한지, 그러니까 "예술이 스며드는 삶" 왜 있어야 하는지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그 속에서 노예인지도 모르고 노예처럼 사는 사람과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사람이 풍기는 향기는 다릅니다. 삶의 질도 다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회의 질도 달라질 것입니다.”

 

요 며칠 사이 정치권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면서 최소한의 상식마저도 무시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치욕으로 여겨졌는지 모른다. 이런 사회에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예술을 현실 속으로 자꾸만 스며들게 하려는 이들이 있기 때문일 테다. 이 책은 "예술이 스며드는 삶"을 살고 싶으나 방법을 몰라 서성거리는 이들을 위한 명쾌하고 친절한 안내서다. 이 명쾌하고 친절한 수업을 계속해서 경청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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