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역사용어해설사전
이은식 지음 / 타오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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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수능 이후 한국사 공부를 따로 해본 기억이 없다. 아, 몇 년 전 한국사능력시험을 위해 잠깐 벼락치기를 하기는 했다. 그게 내 한국사 공부의 마지막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한국사를 싫어한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입소문이 좋은 사극들은 챙겨 보는 편이고, 역사소설도 좋아한다. 그렇지만 사극이나 역사소설을 많이 접한다고 해서 한국사 지식이 저절로 증가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내 자신이 그 증거다. 예컨대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이라 불리는 3사 가운데 하나가 사극이나 역사소설에 등장할 때, 내 머릿속은 3사의 각 기관이 어떤 기능을 수행했는지 가늠하느라 분주해진다. 이럴 때 바로 펼쳐 찾아볼 수 있는 도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까워하던 차에 [필수역사용어해설사전]을 만나 기쁜 마음으로 펼쳐 들었다.

 

사전이라는 제목이 달린 책답게 엄청나게 많은 역사 용어들이 17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실려 있다. 다른 사전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내가 궁금했던 항목들을 먼저 찾아본다. 몇 달 전 종영한 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성계를 부르는 말인 ‘만호’라는 말에 대한 설명도 나와 있다. “고려시대 순호만호부에 소속된 무관직”이라는 뜻이란다. 조선시대를 다룬 많은 사극들에서 왕과 가장 가까운 내시를 이르는 말로 종종 등장하는 ‘상선’이라는 관직은 무려 종2품이나 된다고 한다. 사극에서 상선 관직의 내시가 여러 대신들을 거침없게 대했던 장면들이 이해가 된다. 그동안 별 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대감’이란 말도 본뜻은 “조선시대 정2품 이상의 관계(官階)를 가진 현직과와 산직자(散職者)를 공경하여 부르던 칭호”라고 한다. 그러니까 양반이라고 해서 아무나 ‘대감’이라고 불렸던 건 아닌 셈이다.

 

 

내가 이 책을 가장 쓸모 있게 활용하는 경우는 아마도 역사소설을 읽을 때가 될 것 같다. 특히 요즘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를 다시 읽고 있는데, 이 소설에는 낯선 용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판본에는 용어풀이도 나와 있지 않다. 물론 [칼의 노래]는 서사와 문체의 힘만으로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긴 하지만, 용어의 뜻을 알고서 읽을 때 소설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것 같다. 이를 테면 ‘도원수 권율’이라고 할 때, ‘도원수’가 고려와 조선의 전시에 군대를 통솔하던 임시 무관직으로 대개 문관의 초고관이 임명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문관 출신인 권율이 도원수를 맡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의 부록은 무려 300페이지에 이르는데, 지명 변천 일람표, 성씨일람, 고려와 조선의 관직 및 품계 등 유용한 정보들이 잘 정리돼 있다. 그뿐 아니라 평소 그냥 넘기기 쉬운 시호 일람표나 왕릉약표 같은 것들도 들어있다. 부록을 넘기다가 관향 별 현 행정구역 및 성씨일람에서는 내 본관 진주를 찾아본다. 진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무려 열다섯 개나 된다. 지명 변천 일람표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지명들이 대부분 고려시대에 확정되었음을 알게 된다. 자(字) 일람표와 호(號) 일람표를 쭉 읽어나가면서 동일한 자와 호를 여러 인물이 공유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삼봉 정도전’이라고 부를 때 ‘삼봉’은 자일까, 호일까. 역시 이 책을 참고하면 알 수 있는데, “본이름이나 자(字) 외에 허물없이 부를 수 있도록 지은 이름”이라는 설명에 따른다면, ‘삼봉’은 호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퇴계 이황’의 그 ‘퇴계’는 호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재밌게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영영사전으로 영어 공부하는 식으로 읽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한 용어에 관한 설명에서 모르는 용어가 나오면 찾는 방식으로 읽어나가는 방법 말이다. 영영사전 공부법이 내 영어 실력 향상에 비약적으로 도움을 주었듯이 이 책 또한 내 역사 지식 습득에 크나큰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책 덕분에 사극을 볼 때마다 읽기 버거웠던 해설자막을 따라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다행이다. 나는 지금 사극 좋아하시는 아버지 곁에 앉아 사극 용어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드릴 날을 떠올려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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