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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개 1~3 세트 - 전3권
강형규 지음 / 네오북스 / 2014년 10월
평점 :

20년간 책으로 세상을 배워온 남자. 세상의 어떤 어둠보다도 더 어두운 방 안에서 살아온 남자. 무적자(無敵者)가 아닌 무적자(無籍者). 그 남자의 이름은 쓸개다. 아기는 엄마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살덩이니, 신체 기관이나 신체 부위로 이름을 지어야 건강하고, 효도한다는 미신을 따라 지은 이름. 그런데 하필이면 있으나 마나 한 장기, 쓸개.

쓸개는 양아버지가 운영하던 쓰러져가는 식당 방구석에서 20년간 살아왔다. 자신을 낳은 엄마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다. 조선족이었다는 엄마 김혜정은 쓸개가 아기였을 때, 쓸개의 안전을 위해 어딘가로 사라진 후 소식이 없다. 양아버지가 죽고, 쓸개는 식당 밖 세상으로 나와 이복동생 희재와 엄마의 과거 행적을 추적한다. 금괴 하나를 엄마가 쓰던 가방에 넣어 등에 매고 서울로 올라온 쓸개와 희재. 그 둘 앞에 아빠라고 주장하는 길학수라는 인간이 나타난다. 그리고 두터운 먼지에 쌓여 숨겨져 있던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금괴에 얽힌 사연은 이렇다. 쓸개의 생부 길학수는 한때 건실했던 청년이었다. 그렇지만 중국 연길로 어떤 물건을 옮기러 떠났던 길학수는 그 물건이 금괴라는 것을 알고, 아니 그 금괴를 ‘보고’는 눈이 뒤집힌다. 그리고 악마가 돼 버린다. 그 금괴를 손에 넣기 위해 장애물이 되는 모든 것을 없애버리려 한다. 길학수의 아이를 낳은 김혜정은 길학수의 손에서 금괴를 낚아채 가지고 한국으로 도망쳐온다. 엄마의 행적을 따라서, 그리고 금괴의 행적을 따라서 중국 연길에 온 쓸개는 이러한 사연을 알게 되고 생부 길학수와 맞서게 된다.
금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 그렇듯 이 만화도 금을 향해 질주하려는 인간 군상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 만화에서 가장 놀라운 대목은 금을 향한 길학수의 멈출 수 없는 탐욕이 묘사되는 부분이다. 길학수는 금이 있는 곳을 알려주겠다는 쓸개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그리고 함정이 있으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수십 년 전, “오늘도 그거 찾으러 가니…? 오늘은… 에미와 함께 있으면 안 되니…?”라는 자신의 양어머니가 병석에서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르기까지 한다.

그러나 길학수는 금을 포기할 수 없다. 금이 그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이다. 그의 눈엔 금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비늘은 금을 보고 나서야 벗겨질 수 있다. 그래서 “금이 지금… 거기 있습니다. … 사실입니다.”라는 쓸개의 말에 결국 길학수는 어쩔 수 없이 굴복한다. 금을 버리는 것만이 지옥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이 만화에서는 오직 쓸깨만이 알고 있다. 그래서 쓸개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날 낳고, 엄마를 떠나게 했고, 여린 마오수 씨를 쓸쓸하게 했고, 아주머니를 꼬이게 했고, 희재를 울렸구나. 이 금이… 시작이었구나.” 그래서 쓸개는 금을 포기했고, 최후 승리자가 되었다.

강형규 작가 만화는 [쓸개]가 처음이었는데, 무척이나 만족스럽다. 윤태호 작가의 [이끼]를 읽고 인간의 지독한 탐욕의 실체를 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쓸개]를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이 그와 비슷했다. 만화를 두고 소설에 견줘 인간의 내면을 심도 있게 묘사하기가 어렵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런 만화야 말로 그런 선입견을 부숴주는 것 같다. 강형규 작가가 연재하고 있는 [왈퐈]도 꼭 책으로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