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라도 내려놓아라 - 몸과 마음이 분주한 현대인에게 전하는 일상의 소중함 Art of Lving_인생의 기술 5
뤄위밍 지음, 나진희 옮김, 김준연 감수 / 아날로그(글담)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잠시라도 내려놓아라]는 ‘선(禪)’과 한시를 함께 다루고 있는 책이다. ‘선’은 종교의 영역이고, ‘한시’는 문학의 영역인데, 종교와 문학이라... 함께 놓고 보니 그 어울림이 궁금해진다. 그런데 사실 내게 ‘선’이라는 개념은 아리송하다. 오래 전 윤리 시간에 배웠던 것 같긴 한데, 지금은 기억나는 게 없다. ‘선’에 관한 지식이 없다시피 한 나는 이 책을 쉽게 넘기지 못했다. 또 무언가를 읽었다는 느낌은 엄연한데, 그 느낌을 풀어 글을 써내려가는 일은 막연했다. 그 느낌을 붙잡으려고 이미 읽었던 페이지로 돌아가 다시 읽어야만 했다.


이 책에서 저자 뤄위밍은 ‘선’이라는 개념을 포근한 문체로 친절하게 풀어내준다. 한시에 대한 해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저자의 글을 읽고 있으면, 다정다감한 문학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든다. 중국 푸단대학 중문과의 저명한 교수이기도 한 저자의 관심은 중국의 시인들에만 머물지 않는다. 저자는 상건의 시 <파산사후선원>에 나타나는 사람과 자연의 융합을 랭보의 시 <새벽>에서도 찾는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의 ‘인간의 신성’에 대한 이론을 불교의 ‘불성’과 연관 지어 설명하기도 한다.


이 책에 따르면, ‘선’은 종교나 철학이라기보다는 생활의 방식이자 삶의 태도에 가깝다. 이 책에서 말하는 선종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대목으로 손색이 없을 일화가 있다. 어느 날 법회장에 바람이 불어 깃발이 흔들리자 두 스님이 논쟁을 벌였다. 한 명은 ‘바람이 움직인다’고 했고, 다른 한 명은 ‘깃발이 움직인다’고 했다. 선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일컬어지는 육조 혜능은 이렇게 말했다. “바람이 분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인 것도 아니다.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이 아리송한 말은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생각이 좁아지면 사물의 연관관계를 융통성 있게 살필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깨달음은 언젠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일까? 선종은 모든 것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지만, 그 깨달음이 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지난한 깨달음의 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있는 힘을 다해 ‘어리석음’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고집을 버려야 하며 물아일치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심지어는 암담한 상황에서 궁지에 몰려 몸부림칠 수도 있고, 죽다 살아날 수도 있다.” 죽다 살아날 수도 있다니! 어휴...! 여기서 속된 질문 하나를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굳이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선’을 이해하려고 애쓰며 깨달음을 얻을 필요가 있을까?


사실 이 책을 통해 ‘선’에 관해 이해하느냐 마느냐는 그리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선’이란 개념을 얼마만큼 이해했느냐를 따지는 것이 선종의 가르침에도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운거 효순 선사라는 분은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나는 선이 무언지 몰라 / 발 씻고 침상에 올라 잠을 자네. / 겨울 오이는 그저 곧을 뿐이고 / 표주박은 울퉁불퉁하네.” 결국 ‘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경지는 ‘선’이라는 생각과 의식 자체가 사라진 상태라는 말이다. 그리고 저자는 ‘선’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하는지 바로 한시를 가지고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내가 읽은 가장 아름다운 시 한 편을 적어본다.

 

봄 산에는 좋은 일도 많아
느끼고 즐김에 밤늦도록 돌아가길 잊었네.
손으로 물을 뜨니 달이 손에 있고
꽃과 같이 노니 꽃향기 옷에 가득하네.
흥에 겨워 먼 곳 가까운 곳 마구 다니다
떠나려니 향기로운 풀 아쉬워라.
남쪽으로 종소리 울려오는 곳 바라보니
누대가 짙은 푸른 산속에 희미하게 보이네.

 

우량사, <춘산야월(春山夜月)>

 

내 시선은 “손으로 물을 뜨니 달이 손에 있고”에서 멈춘다. 읽는 순간 시인이 느꼈을 감정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구절이다. 나는 이 구절을 몇 번이고 소리 내어 읽어본다. 이것이 ‘선’의 진경이라면, 나는 계속 여기에 머물고 싶어진다. 사람의 품속으로 자연이 들어오는 순간을 이처럼 아름답게 포착할 수 있다니... 나도 그런 눈을 갖고 싶다. 이런 내게 “대자연의 움직임과 긴밀히 통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그 절묘한 순간을 느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해준다. 저자가 한시를 통해 독자들을 ‘선’에 가까이 인도하려는 것은 ‘선’을 구하는 마음이 시인의 마음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니 아름답게 빛나는 달을 바라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올해가 가기 전에 달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곳에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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