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홍의 황금시대 - 긴 사랑의 여정을 떠나다
추이칭 지음, 정영선 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샤오홍의 황금시대]는 짧은 생애를 살다 간 작가 샤오홍의 이야기다.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천재 여류소설가라고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샤오홍이 누군지 알지 못했다. 궁하디궁한 삶을 살다가 비참하게 짧은 생애를 마감한 예술가들은 많지 않은가. 요조숙녀가 되기를 거부한 여성들 이야기라면 넘치도록 들었다. 괴물 같은 가부장적 관습에 저항한 여성들 이야기도 익숙하다. 샤오홍의 이야기가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과 어떻게 다르기에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책장을 넘겼더랬다. 앞질러 말하자면, 샤오홍의 이야기는 결코 밋밋하지 않다. 삶 그 자체가 문학이 되어버린 이야기라고만 일단 말해두자. 

 

“긴 사랑의 여정을 떠나다”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샤오홍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랑이었다. 샤오홍의 삶을 그렇게 이끈 것은 어린 시절 사랑의 결핍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샤오홍은 할아버지 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살가운 사랑을 받지 못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계모는 사랑에 인색한 사람이었다. 유년에 사랑을 받지 못한 기억이 샤오홍에게는 깊게 배인 상처로 남는다. 첫 아기를 낳자마자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 나서 보인 샤오홍의 불안한 내면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당시 샤오홍은 매우 냉정했다. 울부짖지도 않았고 애통해하지도 않았다. 퇴원할 때에도 몸을 추스르더니 묵묵히 샤오쥔을 따라갔다. 그리고 아이의 행방도 묻지 않았다. 마치 큰 병을 치료하러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는 사람처럼.” 샤오홍은 아마 자신의 아이도 자기처럼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며 살아갈까봐 두려웠을 것이다.

 

그런 샤오홍에게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불가피하다. “그녀가 철이 들고 나서 누구라도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애정을 내비치면 그녀는 상대방에게 열 배의 사랑으로 보답하려는 맹목적인 사랑을 보여주었다.” 샤오홍은 곁에 있는 이가 자신을 버리고 떠날까봐 두려워하며 살았던 것이다. 샤오홍은 여러 남자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대부분 파탄을 맞는다. 샤오홍이 처음으로 사랑했던 루쩐순, 출산 직전의 샤오홍을 여관에서 구해주었으며 샤오홍을 문학의 길로 이끈 샤오쥔, 샤오쥔의 마음이 떠났을 때 공허한 마음을 채워준 두안무, 샤오홍이 세상을 떠나는 길에 함께 있어준 뤄빈지, 샤오홍이 정신적으로 크게 의지했던 루쉰.(임신한 샤오홍을 버리고 떠난 왕언지아는 빼고 싶다.) 10년 남짓한 세월 동안 사랑한 남자가 이 정도라면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랑의 농도는 세월에 비례하는 게 아니다. 그 남자들을 샤오홍은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사랑했다. “나는 사랑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매번 누군가를 사랑하면 최선을 다해서 모든 걸 다 쏟아 붓지. 마치 이 생애의 모든 힘을 다할 셈으로 말이지.”라고 샤오홍 스스로 고백했듯이.

 

‘아, 내가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홍콩의 한 호텔에 피난하며 가만히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연민하는 샤오홍의 탄식이다. 젊고, 아름답고, 무엇보다 불세출의 재능을 지녔던 샤오홍. 누가 이 재능 많은 여성을 이 지경까지 내몰았나, 하는 신음이 절로 배어나오는 대목이다. 샤오홍은 돌팔이 의사를 만나 인후관 절제수술까지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다. 어이없고도 안타까운 죽음이다. 샤오홍이 겪은 모진 풍상과 고통은 비단 샤오홍만의 것이 아니다. 샤오홍의 뼈아픈 좌절은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중국인들과 한국인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샤오홍은 그 시대 사람들이 지켜주지 못했던 연인, 누이, 딸 들을 대변하는 이름이다. 그 이름을 오래도록 기억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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