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눈물 - 개정증보판 아시아 문학선 9
수아드 아마리 외 지음, 자카리아 모하메드.오수연 엮음, 오수연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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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이 책을 집어 들고 본문 아무데나 펼쳐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소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중동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배경으로 한 난민 소설이라고. 이 책을 읽어가면서 맞부딪혀야 하는 어려움이 바로 이 점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소설이 아니라 사실을 진술한 책이라는 사실 말이다.

 

사실을 말한다면 나는 크리스천이다. 비록 '선데이'라는 수식어가 앞에 붙기는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주일학교에서 이스라엘이 겪었던 고통의 역사를 들어왔다. 더불어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성경 말씀이 성취된 것이라는 설교도 들었다.(지금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그런 식의 설명을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에 호의적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잘못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당했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팔레스타인인들이었다. 책의 부록에서 홍미정 교수가 잘 정리하고 있지만, 팔레스타인에서는 불과 3개월 전에도 인종청소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가 금속관 두 개를 내 뒤에 선 남자에게 주었다. 남자가 마치 북을 두드리듯 내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내가 손으로 머리를 감싸려 하자 그는 손까지 후려쳤다."(120쪽) 이 문장의 화자는 놀랍게도 여자다. 이스라엘군의 잔인한 고문에는 남녀의 구별이 없다. 그렇지만 이것은 이 책이 고발하는 이스라엘의 추악한 행위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이스라엘군에게는 남녀만이 아니라 노소의 구별도 없다. 1988년 이스라엘 총리 라빈은 이스라엘군에게 그들을 향해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팔을 부러뜨리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 명령은 그대로 수행되었다.(166쪽) 그들에게 팔레스타인인은 개, 돼지보다 못하며 죽어도 무관한 대상일 따름이다. 언론인 오마르 그라옙은 절규한다. "언제쯤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람으로 여겨질까? 인간으로? 민간인으로?"(19쪽)

 

차별은 일상생활에서도 엄연하다. 이 땅에서는 신분증을 갖는 일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예컨대 이스라엘 남성과 팔레스타인 여성이 결혼해서 낳은 딸은 신분증을 얻지 못한다.(86쪽) 특히 <먼지>라는 글에서 쉬블리라는 팔레스타인 소설가의 이야기가 인상 깊다. 히브리어에 능통한 쉬블리는 예루살렘 우체국에서 같은 팔레스타인인들이 히브리어를 알아 듣지 못해 곤란을 겪는 것을 보고도 모른 척한다. 혹여나 자신이 아랍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져서 자신이 보내는 소포의 배송이 지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소포를 보내기 위해 내가 아랍인임을 감추고 있다. 그런데 내가 아프리카 사람이었다면, 나는 내 살갗을 어디에 감췄을까?"(99쪽) 아! 이런 상황을 뭐라고 해야 하나? 아랍인의 피부색이 이스라엘인과 같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 땅은 인간적 유대를 기대하기 어려운 곳이다. 아이샤 오디의 글에 따르면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데리야씬 주민들은 이웃한 유대인들과 커피를 마시고 기쁨과 슬픔도 나누던 사이었지만, 그 유대인들이 총을 들고와 살육을 저질렀다는 것이다.(142쪽) 도대체 이 땅에서 생활을 정상적으로 해나갈 수 있을까? 시인이자 소설가인 자카리아 무함마드는 25년간의 망명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오지만, “귀환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서글픔을 느낀다.   

 

아, 내가 이런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의 눈물이 내 눈물이 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마음 속에서 줄곧 떠나지 않았던 질문이 이것이다. 어차피 나는 "자기 억양 때문에 위험에 처하고, 제 억양을 숨기고 남의 억양을 흉내 내야 하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 것이 아닌 억양에 통달하는 능력을 길러야만 하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253쪽)일 뿐인데... 그래, 나는 죽어도 이들의 아픔에 온전히 다가설 수는 없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눈물과 내가 흘리는, 어쩌면 알량한 눈물이 같지는 않겠지만, 그나마 그들을 이해하려는 시도라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는 이 책이 더욱 고맙다. 좋은 책을 판단하는 내 기준은 간단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머뭇거리지 않고 권해줄 수 있는 책이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 책이 내게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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