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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사다리 - 불평등은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키스 페인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우리는 비교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타인과 함께 생활한다.
그래서 살다가 한 번쯤은 자의든 타의든 타인과 비교하는 상황과 마주한다.
이때 우리는 절대적인 수치가 아닌 상대적인 위치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평가한다.
어떤 사람(편의상 A라 지칭한다.)이 한 달에 100원을 번다고 가정하자.
평균 소득이 10원인 동네와 1000원인 동네 중 어느 동네에서 이 사람의 만족도가 높을까?
당연히 전자에서 만족도가 높을 것이다.
소득은 똑같지만 소득 분위에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A가 보유한 금액은 같지만 전자에서는 소득이 평균 이상이고 후자에서는 평균 이하다.
그러니 같은 돈일지라도 A의 만족도에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간단한 예시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상대적 수치는 절대적 수치만큼이나 인간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흥미로운 점은 실제 오늘날 상대적 위치가 삶의 전반적인 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소득 분위 간의 사고방식 차이는 상대적 지위로부터 비롯한다.
이로부터 시작하는 차이는 삶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치며 그 결과 사람들은 소득집단 별로 유사한 행동양식을 보인다.
『부러진 사다리』의 저자 키스 페인은 불평등에 대한 해석 도구로 ‘상대적 지위’를 사용함으로써 불평등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저자의 전략은 목차에서부터 나타난다.
각 장을 보면 저자가 현실을 입체적으로 보려고 했음이 드러난다.
그래서 저자는 무상급식, 상대적 비교, 인격, 정치 성향, 수명, 종교, 인종, 직장을 현실의 모형으로써 선택한다.
8개의 요소만 가지고 현실을 완전히 구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위 요소들이 일상에 끼치는 영향력과 책 분량의 한계를 고려할 때 현실 모형을 충분히 재현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는 저자가 수명이나 정치 성향, 직장 등 이전까지 주목받지 않던 요소들을 통해 불평등을 해석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데, 이는 사소한 일상을 소재 삼아 독자에게 친근감을 주기 위한 작가의 전략이다.
각 주제 속에 나타나는 ‘상대적 지위’의 영향력을 증명하기 위해 저자가 사용한 방법은 실험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저자가 심리학자이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음을 기억해야 한다.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낸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심리학자가 되어 사회 불평등과 관련된 연구를 주업으로 삼고 있으며 이 책 역시 그 산물 중 하나다.
그래서 저자는 각 장마다 불평등과 관련된 심리 실험들을 추가했다. 우리는 책 속에 나타난 수많은 실험들을 통해 저자의 전문성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의견에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같은 주제를 가진 유사한 실험들을 소개하고 이들이 모두 일관된 결과를 가리키고 있음을 보인다.
이 사실은 저가가 심리학자로서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그의 주장과 근거가 얼마나 합리적인지를 모두 증명한다.
저자의 견해는 마지막 장에 명백히 나타난다.
앞선 8장을 통해 저자는 상대적인 위치가 사람들의 사고를 어떻게 바꿔놓는지 설명한다.
우선 저자는 상대적 지위가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이후 상대적 빈곤이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서술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우리에게 상대적 박탈감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가난과 불평등에 대한 저자의 견해다.
저자는 상대적 박탈감을 주장하면서 한편으로 가난과 불평등이 다른 개념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는 각 장의 대전제가 되어 지속적으로 글을 이끌어간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저자가 바라는 세상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유토피아적 이상은 디스토피아적인 현실”이라 하며 막연한 이상향을 거부한다.
대신 저자가 강조하는 건 ‘기회와 보상 사이의 공정’이다.
사회주의의 실패에서 알 수 있듯이 불평등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저자는 대안으로 과정의 투명성을 선택했다.
그는 투명성을 보장함으로써 불평등으로부터 오는 상대적 박탈감을 최대한 완화시키려 했다.
따라서 저자가 추구하는 사다리는 가로로 눕혀진 사다리가 아닌 오르내림에 지장 없는 사다리다.
궁극적으로 저자는 기회와 보상에 있어 공정함이 보장된다면 상대적 박탈감이나 상대적 지위로부터 오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 거라 보았다.
불공정한 세상은 바꿀 수 없지만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키스 페인의 유토피아다.
『부러진 사다리』는 저자가 바라는 이상 세계를 견고하게 구현한다.
저자는 자기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전공과 실생활을 접목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가장 먼저 개개인의 생활을 깊숙이 파헤친다.
그래서 각 장은 무상급식, 상대적 비교, 인격, 정치 성향, 수명, 종교 등 실생활과 밀접한 내용들로 구성되었다.
그 결과 이 책을 읽으면 세상사에 관심 없는 사람이더라도 불공평이 삶 속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저자는 자신의 전공을 통해 이론적 기반을 다진다.
이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은 각 장을 장식한 수많은 실험들이다.
그는 한 주제에 대해서도 여러 유사 실험들을 비교함으로써 자기주장의 오류를 최소화한다.
그 결과 저자는 실현 가능성이 있는 이상 세계를 도출하는데 성공한다.
물론 저자의 주장이 정답은 아니다.
키스 페인의 이상향에도 분명 한계점이 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사회적 차원의 노력 역시 필수적이다.
하지만 비판적인 날을 세우기 전에 저자의 메시지를 들어보길 권한다.
불공평이 우리 삶을 뒤덮고 있는 오늘날, 실생활 분석을 통해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한 이 책을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삶 깊숙한 곳까지 자리 잡은 불공평을 파악하고, 이를 타파하기 원한다면 이 책을 적극 권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