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화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어요?"
"네."
"음……… 제가 말을 잘하는 게 아닐까요??"
뭐야, 고개를 들었다. 창밖의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만 수화기에 남아 울렸다.
"저 지금 택시 탔어요."
그녀가 다정하게 말했다.
"지훈씨. 지훈씨는 능력 있고 인기도 많잖아. 내가 다 알아요. 일잘하지, 직장 번듯해, 응? 또 잘생겼고, 또 몸짱이시고."
이 말을 하면서 지유씨는 살짝 콧소리를 내며 웃었다. 비웃는 건가. 기분이 확 잡켰다.
"얼마든지 또 좋은 여자 만날 수 있잖아요."
마치 어린애 대하듯 구슬리는 말투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상하게, 나는 마치 아이가 되어버린 것처럼 제발 한번만, 한번만, 하면서 매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날 어르고 달래서 재우려 했다.
"내일 아침 일찍 비행기 타야 하잖아요. 이제 얼른 씻고 자야죠.
그런 기이한 작별인사가 끊어질 듯 이어졌고, 그렇게 끊으려는 자와 끊지 못하는 자의 실랑이가 한참을 더 이어진 끝에 통화가 끝났다. 세상 질척거리는 통화였다. 심지어 나는 울고 있었다. 최악이었다. 휴대폰을 침대 위에 던져버리고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러자 뚜껑을 닫지 않은 채로 올려놨던 작은 생수병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고 바닥에 두었던 백팩 위로 물이 쏟아졌다. 나는 황급히 백팩을 집어 들었다. 백팩의 앞주머니 지퍼가 활짝 열려 있었다. 이 씨발년이. 열었으면 닫아놔야 할 거 아냐. 소중한 황금연휴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나는 내가 지유씨 앞에서울었다는 사실이 억울해서 또 눈물이 났고 그렇게 눈물의 악순환 속에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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