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6
위수정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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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의 마지막 공연이 끝난 후 뒤풀이가 열린다. 연극의 두 주인공 기옥과 태인도 참석하게 되고, 평소 술버릇이 좋지 않은 태인이 기옥에게 시비를 걸어 소란이 벌어진다. 연출가의 분위기 전환으로 상황은 마무리되지만, 취기를 이기지 못한 태인은 귀가한다. 그리고 다음 날 기옥은 태인의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는 내용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가 코네티컷 별장에서 아침부터 자정까지 한 가족의 불안과 갈등을 그린 작품이듯, 기옥과 태인, 그리고 그들의 매니저 윤주와 상호 네 사람의 이야기가 단막극처럼 펼쳐진다. 극 중 연극과 현실이 겹쳐지며, 네 인물 또한 각자의 어둡고 긴 밤을 통과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가려진 배우의 공허와 성공을 향한 매니저의 뒤틀린 욕망이 섬세하게 포착된다.

사랑과 우정, 책임과 욕망, 친밀감과 거리감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미묘한 감정은 담담한 문장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네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여 풀어내는 문장들은 사건의 크기보다 마음의 결을 따라가며, 무대 위 연기처럼 보이지 않던 진심들이 서서히 드러난다.

소설을 읽으며 ‘일상’이라는 커다란 무대에서 각자의 역할을 연기하듯 고통을 숨기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문장은 절제되어 있지만, 그 안의 감정은 날카롭게 파고든다. 결국 이 작품은 우리가 외면해온 내밀한 마음을 조용히 비춰보게 만드는, 긴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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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와 융, 영혼의 편지 -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두 거장의 마지막 가르침
미구엘 세라노 지음, 박광자.이미선 옮김 / 생각지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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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와 융, 영혼의 편지』는 문학의 거장 헤르만 헤세, 분석심리학의 거인 칼 구스타프 융, 그리고 이 두 거장과 깊이 교감하며 그들의 관계를 연결해 준 미구엘 세라노가 쓴 기록이다. 세라노는 두 사람과의 만남과 교환했던 편지, 그리고 그들의 생의 마감까지 지켜보며 인간 존재의 근원과 삶의 의미를 탐색한다.

문학과 심리학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 있었지만, 두 거장의 시선은 언제나 인간의 내면을 향하며 삶의 본질을 찾으려 했다. 헤세의 문학을 사랑했고 정신적 위기 때 융에게 치유를 받았던 세라노는 헤세와 융 사이를 오가며 안부를 전하고, 서로의 사상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전달하는 ‘비밀 클럽’의 매개체 역할을 했다.

헤세와 융은 세라노를 처음 만났을 때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 같다"라는 같은 반응을 보이며, "꼭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되어있다"고 말했다. 이는 그들의 만남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하며, 두 거장이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헤세와 융이 자신들의 이론과 작품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는 대목이다. 직접 만나 그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던 세라노가 부러울 따름이다. 헤세는 스스로 본인이야말로 골드문트, 나르치스, 그리고 싯다르타라고 말했다.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알을 깨고 나와 신 아브락사스의 품으로 날아가는 새처럼 말이다. 세라노가 헤세의 마지막 모습을 평화롭고 고요하게 느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융은 "자아"와 "무의식"에 대한 통찰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본성에 따라 살고, 인식을 얻기 위해 노력하며, 이미 얻은 지식으로 진리를 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월이 흘러 삶의 모순과 고통을 모두 겪어낸 후, 이들이 편지 속에서 담담하게 풀어내는 통찰은 마치 오랜 스승이 들려주는 삶의 깊은 지혜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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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 - 더 이상 불안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키렌 슈나크 지음, 김진주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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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불안장애를 겪는 사람들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 지침서이다. 불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궁극적으로는 불안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질 수 있도록 돕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대상에 대해 불안을 느낀다. 책은 이러한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불안의 종류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각 챕터마다 과제 형식의 질문을 제시해 독자가 자신의 불안이 무엇인지 파악하도록 돕는다. 독자는 나열된 자신의 불안 요소들을 바라보며 그 실체를 인식하고, 한 발 물러서서 불안을 마주할 수 있다. 일단 불안의 실체를 파악하면, 두려움은 점점 약화된다.

자신의 불안을 이해했다면, 다음 단계로 ‘불안에 감사하고 이야기에 이름 붙이기’를 통해 불안이라는 내적 경험에서 자신을 분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불안한 생각이 떠오를 때 ‘마음이 전하는 이야기’라 이름 붙이고 자연스럽게 지나가도록 수용한다. 예를 들어 “또 아플 예정 이야기네”라고 인정한 뒤 자신이 원하는 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 특히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점은 개인적인 경험에 대한 통찰이었다. 가끔 기차나 버스를 탈 때 타인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호흡을 의식하며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숨 쉬는 것이 힘들어지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 또한 불안으로 인한 반응이라는 사실이 새로웠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방법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주위의 파란색을 찾아보거나 빨간 차가 몇 대 지나가는지 세어보는 식이다. 이전에는 그런 순간이 두려웠지만, 이제는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안정되었다.

저자는 말한다. “긴장된 상황에서 불안은 정상이며, 과도한 불안은 단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을 반복적으로 실천하며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간다면, 언젠가 불안을 수용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불안이 사라졌다고 해도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기에, 저자는 지속적인 관리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지금 너무 불안하다면,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불안을 다스릴 방법이 있다”는 사실이 불안을 조금 덜 흔들리게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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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의 시대 - 인류 문명을 바꿀 양자컴퓨터의 미래와 현재
이순칠 지음 / 해나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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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컴퓨터 과학의 국내 최고 권위자 이순칠 교수가 알려주는 양자컴퓨터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19세기 말, 인류는 거시 세계를 다루며 자연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1900년 이후 미시세계를 다루는 현대물리학이 탄생하면서 물리학의 신세계가 열렸다. 저자는 양자 얽힘을 이용한 양자기술이 앞으로 세상을 크게 변화시킬 것이라 말한다.

양자기술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수히 많다. 양자중력센서, 양자통신, 양자컴퓨터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이 책은 양자컴퓨터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암호 해독, 분자 시뮬레이션을 통한 신약 개발, 탄소중립 실현 등 여러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핵융합에 관한 내용이었다. 현재의 핵발전소는 핵분열 방식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폐기물과 방사능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핵융합은 방사능이 발생하지 않고, 핵폐기물과 같은 오염 요소도 없으며, 사고가 나더라도 폭발 위험이 없다. 다만, 핵융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1억 도의 온도 유지와 플라스마 거동 예측이라는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어 아직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양자컴퓨터의 플랫폼은 초전도, 이온 덫, 중성원자, 광자, 양자점, 점결합, 위상 등으로 나뉜다. 이 중 어느 시스템이 최종 승자가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며, 현재도 활발히 개발 중이다. 저자는 실용적인 양자컴퓨터가 되기 위해 필요한 핵심 요소로 결맞음 시간과 연결성을 꼽는다.

앞으로는 양자컴퓨터를 보유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혹은 기업 간의 격차가 더욱 커질 것이다. 저자 역시 “강대국과 약소국을 가르는 기준이 경제력과 군사력이라면, 양자기술은 그 차이를 더 벌린다.”(242쪽)라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다소 뒤처져 있지만, 해외와의 공조를 통해 양자기술의 기반을 다져야 할 시점이다.

양자기술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루는 기술이라 멀게만 느껴졌지만, 저자는 어려운 이론 설명 대신 실제 활용 사례를 통해 쉽게 풀어낸다. 덕분에 양자기술이 한층 가까워지고, 그 발전으로 열릴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어릴 적에는 상상도 못했던 개인 전화기, 전 세계 실시간 소통, 무인자동차 시대가 이미 현실이 된 것처럼, 앞으로도 상상조차 못한 혁신적인 변화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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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죽었다
박원재 지음 / 샘터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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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죽었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사실 예술의 부활을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는 목표 지향주의와 엘리트주의가 얽힌 현대 예술의 현실을 비판한다. 예술은 이제 경쟁과 성취의 도구로 전락해 상품화되었으며, 아카데미의 틀에 종속되거나 NFT로 거래되면서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반 고흐의 <신발>에서 느껴지는 농부의 삶, 고대 그리스 신전에서 드러나던 공동체의 숨결 같은 ‘삶의 예술’은 사라진 셈이다.

저자는 ‘진정한 예술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예술이란 삶과 맞닿아 있고, 그 속에서 타자와 연결되며 새롭게 의미화되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술을 통해 다름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공동체의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예술은 관객이 느끼고 공명할 수 있는 살아 있는 감각이어야 한다.

그중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의 <예술가가 여기 있다(The Artist Is Present)>가 특히 인상 깊었다. 작가는 테이블에 앉아 관객과 한 명씩 마주 보며 침묵 속에서 눈을 맞춘다. 오직 시선만이 오가는 이 행위에서 관객들은 저마다 다른 감정을 느낀다. 누군가는 그리움을, 또 다른 누군가는 상실감이나 따뜻함을 느낀다. 그 경험을 통해 예술이란 타인이 정해주는 것이 아닌,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리는 감각임을 깨닫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와 관객은 진정으로 연결되고 공명한다.

저자는 ‘무엇을 이루었는가’라는 질문 대신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고, 삶과 예술의 흐름을 다시 잇는 것. 일상의 감각을 재료 삼아 살아 있는 울림을 전달할 수 있다면, 예술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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