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폴 서루 지음, 이미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폴 서루의 [세상의 끝]은 여행자의 소설답게 세계 각 나라에서 펼쳐지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와 내적 갈등, 그리고 작품속 각 나라들의 도시와 풍경들이 어우러져 옴니버스식 단편 영화들을 만들어낸 듯한 느낌을 받는다.
15편의 단편들이 짧게 끊어지는듯 싶다가도 모두를 읽고나면 하나의 응축된 내용들로 담고있음을 느끼게 된다.
작품속 각 나라들의 시대배경이 1960년대에서 1970년대로 가는 조금은 혼란스럽고 발전을 시작하는 현대사회의 초기적 단계라 시대적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버린 인간 군상들의 한 면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시대적 배경이 지금과는 너무나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이 공감대를 가질수 밖에 없는건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누구나 한번쯤은 자유에 대한 갈망을, 평범한 일상속에서, 때로는 삶에 대한 욕구를 분출하기 위해 한번쯤 일탈을 꿈꿔보지 않은 자가 있을까? 반문해보고 싶다.
단편속 작품들에서 등장하는 주된 특징은 이민자와 이산자들의 삶속에서 내재된 심리적 갈등, 소외, 열망, 그리고 위선과 그에 따른 절망감까지 조금은 비관적 내용들이 주류를 이루어 읽는 이로 하여금 거부감을 들게도 하지만 작품속에 담겨있는 응축된 메세지들은 작가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세상의 끝은 절망이 아니라 절망속에서 희망을 찾을수 있도록 진정한 자아란 무엇인지, 행복을 추구하는 가치있는 삶은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그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1장. <세상의 끝>
이 작품이 가장 공감이 됐고 지금 시대에도 딱 들어맞는 내용들이라 아마도 첫 작품으로 올리지 않았나 싶다.
현실에서도 많이 일어나고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볼수있는 상황들로 전개돼 읽는 나로 하여금 긴장감을 갖게 한다.  
주인공 로바지의 직장 해외발령으로 런던의 "세상의 끝"(실제 지명이라 함)이라는 곳으로의 이주, 성공과 보다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해 이주했던 미국에서 영국 런던으로의 이민.
그러나 아내의 정부(情夫)로 의심되는 남자친구가 있다는 어린 아들의 발설로 인해 주인공은 삶의 희망을 잃게 된다. 작품속에서 아들 리처드의 마음까지 앗아간 장면에서는
희망을 바라보고 찾은 세상이 그 끝의 종착역으로 가는 느낌마저 들어 못내 씁쓸하고 아쉽기만 하다. 혼자 외로이 남은 주인공 로바지의 악몽같은 그 꿈이 가시지를 않는다.
출장중 아들에게 선물할 연을 사지만 안했어도 "박스 힐" 언덕을 가지 않았으리, 자꾸만 연상되게 한다.
작품은 사건은 주인공의 추측으로 시작해서 추측으로 끝나지만 암시하고 내재된 내용들은 읽는 나로 하여금 분노를 느끼게 만들기도 하고 아쉬운 한탄을 느끼게도 만들어 짧지만 강한 여운을 남긴 작품으로 느껴진다.
2016년에 헌법으로 간통죄가 폐지된 우리나라의 사회적 관심사와 맞물려 있는듯 해서 내심 공감도 되고 긴장의 끈을 놓지못한 작품이라 하겠다.
부부(夫婦)란 서로가 대화하고 인내하며 존중해야 함을 이 작품을 통해 다시한번 상기하게 된다.
대화가 단절된 부부는 끝내 파국으로 치닫는 것임을 나에게도 주지시켜주니 말이다.
행복은 물질이 아닌 관심과 작은 말 한마디로 시작되니 말이다.

 

 

2장. <좀비들>
한때 명성이 있었던 여류작가 "브리스토 양"은 82살의 노인(老人)이 되어 고립되어 살다가 옛 명성을 다시 찾는 작품을 만들어 내지만 흑인을 비하하는 내용들로 인해 하울릿이라는 출판사와의 갈등속에 인종 차별적인 내용을 빼야 할지 말라야 할지를 두고 "필리파"라는 출판사 여직원과의 갈등 묘사를 심리적으로 잘 만들어낸 작품으로 느껴진다.
나이와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나약해지고 자기 주관이 약해져 버린 심리적 갈등은 주인공의 눈에 해골로 보이는 좀비들로 표현되고 있다.

 

3장. <임페리얼 얼음 상점>
"핸드 씨"라는 백인 농장주와 흑인농부들의 갈등속에 흑인을 노예부리듯 하는 백인우월주의가 빚어낸 참극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한 여름에 얼음을 수레에 싣고 먼길을 나서 큰 이익을 챙기기 위한 백인 농장주의 흑인 학대는 인권주의와 섬을 장악한 영국의 식민지시대를 묘사한 내용으로 그려진듯 하다.
뙤약볕 한여름, 나무 수레로 얼음을 이동하면서 벌어지는 백인농장주와 흑인의 갈등은 인권을 무시한 백인 우월주의를 꼬집는 듯하다.
흑인들은 그 모욕과 학대에 끝내 백인 농장주를 살해하는 것으로 이 소설은 암시하고 있다.
강대국에 속국되어 소수민족의 이주민들이 겪는 아픔을 때론 적나라하게 때론 은유적으로 표현된 내용들이 맞물려 극의 흐름을 긴장시킨다.
내용을 읽으며 어느 정도 결말이 감지되는 소설이기도 하다.

 

 

5. <방정식>
허위로 물들어진 문단을 꼬집는 작품이라 하겠다.
이 작품에서도 하울릿이라는 출판사는 또 등장한다.
"마이클 인솔"이라는 평범한 상점 직원이 하울릿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를 통해 작가들의 파티에 참석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거짓된 행동과 작가로 남을 속이는 과정에서 문인으로 둔갑하는 웃지못할 해프닝들은 그 시대의 문인들과 문단을 신랄하게 꼬집는듯 하다.
종국에는 가짜 작가 "마이클 인솔"에게 강연 요청과 영국 왕립문학협회 회원으로 까지 추천되어 회원이 된다.
강연은 이런저런 핑계로 피해가고 왕궁까지 가게되는 상황들은 허술함과 허위들로 포장된 문단을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몇년전 문단에서 작가의 작품 표절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사회적 파장이 이슈가 된 것처럼 예나 지금이나 문단의 이슈는 끊이질 않나보다.
 
7장. <종전 후>
"델리아"라는 어린 소녀의 교환 방문을 통해 유학하게된 가정집에서의 언어폭력과 소외감은 이주민이 아닌 학업을 위한 이산도 얼마나 많은 갈등이 이루어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소외감을 떠나 어린 소녀가 혼자 남아 공포를 느낄때는 그 어떤 공포보다 무섭게 느껴진다.
 
9장. <하얀 거짓말>
"제리"라는 인물을 통해 타국에서의 거짓말이 이리 쉽게 통하는지 조금은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고 일탈을 밥먹듯이 하는 "제리"를 통해 끝내는 주인공의 희열을 본다.
거짓말의 댓가로 "제리"는 주인공이 한번도 보지못한 흰 벌레가 "제리"의 몸속에 기생하여 고통을 주니 말이다.
그 벌레를 주인공이 "제리"의 몸속에서 빼어내 그 유충들을 채집한 장면으로 작품은 끝나지만 작가는 작품속에서 미국인들의 사회적 신분을 꼬집는 내용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사회적 신분을 거짓말로 포장한 "제리"를 통해 "인간 파리"로 묘사하니 말이다.

 

 

14장. <가장 푸른 섬>
이 작품은 이 소설속에서 작가가 가장 많이 할애하고 가장 많이 인물묘사를 표현한 작품이다.
아직 어린 청춘들의 대학생인 주인공 "듀발"과 "폴라". 그 두 연인이 원치 않던 임신으로 푸에르토리코의 산후안으로 떠나면서 그곳 정착지에서의 내적갈등을 다룬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 [폴 서루]가 대학시절 파트너가 임신해 출산한 아이를 입양기관에 맡긴적이 있다고 기술한 내용이 역자의 말에 나와있다.
그래서 일까! 유독 <가장 푸른 섬>에 대한 작품속에서 갈등과 자유에 대한 열망이 유독 심하게 느껴진다.
주인공 "듀발"이 작가가 되고 싶어 임신한 여자친구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하는 것처럼.
주인공 "듀발"은 정신적 혼란속에 싸움닭을 구경한뒤 일터로 가는 도중 고민끝에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어"라고 혼자 생각한다.
곧 그것은 자유를 위한 열망, 누구로부터도 속박받지 않는 자유. 그것이 작가가 외치고 싶었던 여행자로서의 외침은 아닐까!.
또한 소설 작가로서의 열망을 주인공 "듀발"을 통해 외치고 있었던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소설속 시대가 아니더라도 시대가 흐른 지금 현재도 이민자나 이산자는 여전히 있다.
그들은 자의든 타의든 고국을 떠나 좀 더 나은 삶을 찾거나 아니면 자식들의 교육으로 해외 유학에 의한 이산 가족이 된다.
지금도 그들은 그곳 타국에서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거나 향수병에 걸려 심리적 갈등과 내적 갈등속에서 번민하며 살아갈지 모른다.
그런점에서 우리의 이웃인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의 안식을 찾을수 있도록 그들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국을 버리고 떠난것이 아닌 이상 그들은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테니까!.
외국에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그냥 빈말이 아닌가 싶다.
이 작품속 그들은 절망속에, 쓸쓸함과 외로움에 일탈을 일삼고 거짓된 행동을 했지만 우리는 지금 그보다는 나은 시절에 살지 않는가!
그러니 이 시간속 어딘가에서 살아갈 이민자들을 위해 행복하라고!, 희망을 가지라고!. 그곳은 세상의 끝이 아니라 희망의 시작점이라고!
나는 그들에게 들리게 끔 큰소리로 외쳐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