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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1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 식상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질문: ‘나는 누구인가?’
오랜만에 들어가는 홈페이지에 아이디 혹은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는다. 이것저것 시험해보았지만 그 어느 것도 들어맞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아이디/비밀번호 찾기를 누른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분명히 나인데 나를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다. 방법은 다양하다. 이메일로 찾기, 지정해놓은 질문으로 찾기, 혹은 자신의 명의로 등록되어 있는 핸드폰으로 인증하기. 방식과 절차에 따라 불필요하게 보이는 시간이 소모된다. 분명 나인데 왜 내가 나를 증명해야 하는가? 툴툴대며 다시는 까먹지 않겠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다시 같은 전철을 밟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자. 휴대폰에 도착한 인증번호를 입력하였다면 정말 나인가? 분명 명의는 내 것이지만 휴대폰을 도난당했다면? 혹은 나 대신 다른 사람이 입력해주었다면? 그렇다면 이는 나를 확인한 것이 아니라 나의 휴대폰을 확인한 것이다. 절친한 친구가 내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나아가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얼굴도 비슷하고 나이도 같다. 그렇다고 해서 역시 둘이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나’에서 시작하여 ‘나’로 끝나는 이야기다. 그리고 화자 에밀 싱클레어의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텍스트는 어린 싱클레어가 자라면서 전쟁에 나가기까지 한 사람의 인생을 세밀히 보여준다. 싱클레어의 두려움, 방황, 그리고 깨달음. 독자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정반대의 두 세계 사이의 존재에 혼란을 겪는 어린 싱클레어의 모습은 우리들 어린 시절의 모습과 어찌나 닮아있는지. 어느새 독자는 주인공의 삶에 몰입하여 같이 가슴 아파하고 고민하며 환희와 같은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 기묘한 친구 ‘데미안’이 있다.
데미안은 미스터리 한 인물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종잡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가끔 그가 보이는 모습은 기묘하기까지 하다.
“당시 이미 의식 저 멀리서부터 아주 독특한 무언가를 느꼈다. 나는 데미안의 얼굴을 보았다. 그가 소년의 얼굴이 아니라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음을 보았다. 아니, 그 이상을 보았는데, 어른의 얼굴도 아닌 전혀 다른 무엇을 보았다고, 아니면 알아챘다고 믿었다. 여자 얼굴의 어떤 요소가 들어 있는 듯했는데, 한순간 이 얼굴에는 남자나 어린이도 아니고, 늙거나 젊지도 않고, 천 살쯤 된, 어딘지 시간을 뛰어넘은, 우리가 사는 시간 단위와 다른 단위가 찍힌 듯 보였다.”
이런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파격적인 생각들을 심어준다. ‘카인의 표’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아프락사스’라는 신 이야기. 어린 시절 우리 곁에 데미안이 있었다면 부모님이 나서서 이상한 아이랑 놀지 말라고 했을 것 같은 그런 존재다. 그런데 분명히 이상한 데미안이라는 존재로 인해 싱클레어는 성장한다. 이전에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아파하고 힘들어할 때 방황의 길에서 싱클레어를 인도한다. 그리고 매 순간 싱클레어에게 ‘나(자아)’를 찾고 따라가기를 은연중에 종용한다.
다시 한 번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묻는다. 나는 지금 나(자아)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확신에 차 대답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특별하고 유일하다고 듣고 산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진짜 그럴까?’라는 회의감이 드는 순간들이 있다.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을 가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어느새 나이를 먹어 취업을 걱정하는 그런 삶의 흐름. 바쁘게 살다가 고개를 들어보면 그렇게도 다르게 보였던 삶들이 다 비슷하게만 보인다. 똑같이 꽉 찬 지하철에 끼어 출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하여 집에 도착한다. 잠시 쉬고 나면 누워야 할 시간이다. 간혹 있는 친구들과의 술자리 혹은 짧은 여행 등. 그렇게 삶은 반복하며 나아간다.
SNS와 TV에는 화려한 인생들이 넘치는 것만 같은데 왜 나의 삶은 그렇지 않은가? 독특하고 개성 넘치던 나는 어디로 가고 비슷한 우리만이 남았는가? 이런 상황에서 정말 고유한 나(자아)는 존재하는 것일까?
분명 크게 보면 삶은 모두 비슷하다. 그래서 고유한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특별해야만 혹은 남들과 달라야만 ‘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 다른 삶을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꽉 찬 지하철에서 어떤 노래를 듣는가, 무엇을 생각하는가, 지금 무엇을 좋아하고, 앞으로 무엇을 바라는가. 이런 작은 차이가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걷다 보면 어느새 진정 ‘나(자아)’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지점에 이르게 하는 것이지 않을까.
‘나는 누구인가?’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정답 없이 던져진 질문이다. 삶과의 작별을 고하게 될 때 대답할 수 있을까? 역시 확실치 않다. 정작 중요한 것은 답을 찾아 끝없이 고민하는 것이다. 계속 질문하고 생각하여 ‘나(자아)’에 가까워지는 것. 이것이 불확실한 정답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나에게로 계속 나아가자. 잠시 흔들릴지언정 포기하지는 말자. 나는 정답을 찾고 있다. 그리고 그 정답을 찾기 위한 삶의 여정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데미안이 내게 속삭이고 있으므로.
“우리 각자가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는 일, 자신 안에서 작동하는 자연의 소질에 완전히 어울리게 되어 자연의 의지에 맞게 사는 일, 불확실한 미래가 가져오는 것이 무엇이든 그에 대한 각오를 다지는 일만이 우리의 의무이며 운명이라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