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 잊힌 것과 잊히지 않는 것

  지난날의 일기장을 다시 들추어보거나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추억을 되새기다 보면 잊히지 않는 기억들과 까마득히 잊힌 기억들을 마주하게 된다전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그 장면 하나하나가 선연히 떠오르는 반면후자는 마치 거짓말처럼 기억의 끄나풀조차 잡히지 않기도 한다내가 그런 행동을 했었나그때는 내가 그랬었지현재라는 벤치에 앉아 과거라는 길을 되새기며 삶의 여정을 다시 떠올린다당장에 봤던 책의 내용도 떠올리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도대체 우리는 왜 어떤 것은 기억하고 어떤 것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원제: 'The Sense of an Ending')는 이러한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 기억은 얼마나 정확한가?

  한 번 떠올려본다내 기억은 얼마나 정확한가어린 시절 부모님께 혼이 나고 속상한 마음에 나는 부모님 가게를 나와 언덕길을 올랐다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교회가 나왔다교회 입구에 앉아 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울었을까내 딴에는 부모님이 걱정하실 만큼의 이른바 가출이었다그러나 저녁 날이 쌀쌀하여 결국 옷소매로 눈물자욱을 훔치며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간혹 부모님과 대화를 하다 이 이야기를 하면 부모님은 박장대소를 하면서도 내 어린 시절의 슬픈 그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신다정말 그랬냐며 물으시고 무엇 때문에 그리 울었는지 물어보신다처음엔 나 역시 놀랐다당연히 그날은 내게는 너무도 선명한 기억이라 부모님도 으레 기억하고 계실 줄 알았다.

 

  작게 보면 우리는 모두 자신의 기억을 다루는 역사가이다그런데 책에서 에이드리언이 말하는 것처럼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으로 동일한 역사(기억)에 대해 역사가(개인) 간의 오차가 발생한다분명히 같은 기억임에도 우리는 조금씩 다르게 기억한다그렇게 서로의 기억을 비교 대조하여 따져보면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은 얼마나 부정확한가주인공 토니처럼 우리는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고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아예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기도 한다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뭔가 일어났다는 것뿐이다그리고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역사가(개인)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게 과거를 기억하고 재단한다마찬가지로 나 역시 내가 기억하는 것 중에 무엇을 선택하고 바꾸었을까내가 기억하기로 마음먹고 기억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은 무엇일까?

 

  • 책임의 사슬 어디에 나는 매여 있는가?

  토니는 자신이 했던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그나마 기억하는 것들도 자기보호본능의 일종으로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한우리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힌 사건들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연관되어 있는 사건들내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그렇지 않다끝에 토니가 깨닫듯 우리는 모두 책임의 사슬 그 어딘가에 발이 묶여 있다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한들제아무리 책임의 사슬이 길다고 하여도 우리는 결코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항상 재고해야 한다.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과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무엇인지그리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 혼란과 책임의 문제에 대해.


 

거기엔 축적이 있다책임이 있다그리고 이 모든 것 너머에혼란이 있다거대한 혼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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