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바보들에게 - 우리시대의 성자 김수환 추기경, 우리 영혼에 깊은 울림을 주는 잠언들 ㅣ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 1
알퐁소(장혜민) 옮김, 김수환 글 / 산호와진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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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랑은 무력합니다.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거절할 수 없을만큼 무력합니다.
어떠한 고통도 죽음까지도 받아들입니다.
이처럼 가장 무력하면서도 가장 강인한 것이기에,
사랑은 온 세상을 분쟁과 갈등과 파멸로부터 구할 수 있는 구원의 첩경입니다. 

겸손은 결코 외적으로 자기를 낮추고
남 앞에 공손된 자세를 취하거나 자기를 무조건 비하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자기를 비우고 낮추는 것입니다.
             - 산호와진주 <바보가 바보들에게>의 본문(p 67~68) 중에서.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참사랑은 무력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무력함이 세상을 구원하는 힘이라고도 하셨습니다. 무력한 것이 강인한 것이라는 표현은,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는 말이 품은 뜻과 같으리라 짐작합니다. 참되게 사랑하는 일과 참되게 겸손하는 일에는 목적과 의도가 없어야 하며, 남을 의식하는 마음도 없어야 합니다. 그 무엇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기심과 교만함과 욕심들을 자신의 마음 안에서 비우는 일 입니다. 내가 얻고 싶은 것과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에서 자유로워지고, 나를 내세우고 내가 인정받길 원하는 모든 욕망에서 멀어지는 일입니다. 비워지고 비워진 그 자리에 자신으로 향하던 모든 마음과 걱정과 배려가 다른 누군가를 위한 진심어린 마음과  걱정과 배려로 채워지는 일, 목적과 욕심없이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고 때로는 그들만큼 혹은 그들보다 더 자신을 낮추고 아파하고 기뻐할 수 있을 때, 그 열린 마음을 사랑과 겸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이웃과 절대로 등지지 말라.'는 말씀을 들려 주십니다. 자신을 비추는 거울을 외면한다면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그릇된 환상이나 합리화들로 자신의 말과 행동을  감추려하지 말고, 세상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찾고 고민하라는 뜻이겠지요. 이웃이 나를 마주할 때, 외면하거나 미소를 보내지 않으면 목욕하고 바르게 앉아 자신을 곰곰히 되돌아 봐야 한다는 말씀이 문득, 저를 두렵게 합니다. 적당한 말로 나 자신을 속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의 눈빛과 태도에서 느껴지는 나의 또다른 모습을 속일 수는 없는 까닭입니다. 

    옹기 김수환 추기경 님의 소박한 글에는 현란한 미사어구도 어려운 말들도 없습니다. 가득히 채워진 느낌보다 비워져 있는 느낌입니다. 나즉하고 다정하며 모난 구석 하나없는 말씀마다, 소박하고 따뜻한 음성이 느껴져 옵니다. 그 비워지고 비워진 여백마다 제 몫들이 남겨져 제게 말을 건냅니다. 더 많이 느끼고 생각하고 깨닫고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조금씩 내 머리와 마음이 움직이고 내 삶이 변화하길 바라는 바램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추기경님의 말씀처럼 저도 여러 가지를 담을 수 있는 그런 그릇으로 남을 수 있을런지요. 세상에는 오물조차 기꺼이 품어 안을 수 있는 옹기같은 사람이 필요하다시던 그 말씀에 가슴 한 켠이 더 쓸쓸하게 아파옵니다. 살아 계실 때 더 가까이에서 더 오래 뵙지 못한 후회가 남아 가슴이 아파옵니다. 

    사랑은 무력하다는 말씀, 겸손도 사랑이어야 한다는 말씀. 제게는 커다란 깨달음이였습니다. 그 무력하다는 힘은 세상의 난무한 권력과는 다른 따뜻한 힘이였습니다. 때로는 가슴이 뭉클하고 가슴이 벅찰만큼 감사하지만, 때로는 가슴 한쪽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아픔과 미안함도 함께 가지는 사람을 움직이고, 마음을 움직이는 따뜻한 힘이였습니다. 세상을 움직이고 바꾸는 것은 바로 그런 힘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권력이나 군림하는 명예에서 비롯되는 변화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에서 벗어나, 가장 아래로 내려와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고 같은 마음과 같은 아픔이 되려고 할 때 비로소 세상은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움직이고 바뀐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만큼 아름다운 일이며 필요한 일이고, 세상은 또 그렇게 변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장마에도 끝이 있듯이 고생길에도 끝이 있단다.'고 하시며 조용히 웃으셨다지요. 이 힘든 세상의 차디찬 바람 속에서 사람들은 장마 끝을 기다리듯, 절망과 아픔의 끝도 기다릴 겁니다. 서민들의 고단한 어깨와 다리에서, 외롭고 힘겨운 눈빛 속에서 그 차디찬 바람들이 하루빨리 끝나면 좋겠습니다. 언젠가는 제 부족한 사람됨도 진심어린 사랑으로 사람들의 눈과 손을 마주하고, 머리보다 가슴이 더 뜨겁게 움직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면서, 추기경께서 방문을 나설 때마다 보실 수 있도록 걸려 있었다던 시를 여기 남겨 봅니다.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삶을 파괴합니다.
쓰디쓴 말 한마디가 증오의 씨를 뿌리고
무례한 말 한마디가 사랑의 불을 끕니다.
은혜스러운 말 한마디가 길을 평탄케 하고
즐거운 말 한마디가 하루를 빛나게 합니다.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긴장을 풀어주고
사랑의 말 한마디가 축복을 줍니다.
         - 산호와진주 <바보가 바보들에게>의 본문(p 57)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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