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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의 마지막 수업
모리 슈워츠 지음, 이건우 옮김, 배은미 그림 / 일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Morris Schwartz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이 글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나 자신과 내 병과의 거리를 어느 정도 떼어놓기 위해서였습니다.
투병과정에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 p 121.
[모리의 마지막 수업]은 죽어가던 모리가 우리에게 남긴 잠언집이다.
아니, 잠언집이란 거창한 말은 어딘지 좀 어색해 보인다.
어쩌면 모리 자신도 그런 말들은 원하지 않았으리라.
모리는 자신이 살아있는 모든 순간에 여전히 품위있고, 용기있으며 유머러스하길 원했다.
평정심을 잃지 않으며 상실에 대비하는 모습,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낼 뿐이다.
삶의 어느 순간, 어느 모퉁이 쯤에서 내 죽음이 기다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소중한 것들, 결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을 잃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리고 절대로 그 사실을 외면할 수도, 그 사실에서 도망갈 수도 없다면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말하며 무엇을 위해 행동할 수 있을까.
루게릭병으로 그의 근육들은 점점 쇠약해지고 굳어져 가고 있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가고,끝내는 숨쉬는 것과 음식물을 삼키는 것조차 어려워지는 동안
모리는 상실감과 두려움과 분노 대신,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선택했다.
천천히 자신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잃어가는지를 보았다.
모리는 말한다. 진실을 마주하고 현실적인 태도로 받아 들이지 못하면 평안을 얻을 수 없다고.
그가 가진 슬픔이 슬픔으로 끝나지 않고 점점 줄어들고 얕아질 때까지
오히려 그는 자신을 위해 울었고, 끌어 안았고, 위로 했고 사랑했다.
나는 늘, 지독하게 충분히 슬퍼하는 일이 두렵다.
어른이 되고 난 이후, 어른들의 세상에서 누군가 내게 분명하게 요구한 기억은 없지만,
충분한 슬픔이나 눈물은 하나의 금기처럼 여겨졌고, 나는 그것에 순응하며 살았다.
소리내어 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수치스러운 일처럼 여겨졌고,
참는것은 미덕이고, 숨어서 울줄 아는 것이 성숙한 행동이라 여겼다.
정말로 슬픔의 끝은 희망일까. 슬픔은 휴식일까.
나의 감정들이 나를 약하게 만들지 않을까.
나는 끝끝내 침몰해버리지 않을까.
슬픔의 끝은 희망입니다.
슬픔은 제자리를 찾게 합니다. 마치 원을 한 바퀴 돌아 원위치로 오듯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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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으로 경의를 표현하고 나면, 내가 잃은 것들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있습니다.
대신 내가 가진 것들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그들의 사랑이 고맙기 이를 데 없습니다.
p 78 ~ 80.
이미 충분히 슬퍼했고, 절망했으며 그럼에도 자신과 자신의 삶을 사랑했던 모리는 말한다.
슬픔은 고단한 자신의 삶에 경의를 표하는 또하나의 방법이라고.
사람들속으로 걸어 들어가 손을 내밀고, 그들의 마음을 얻기에 너무 늦은 때는 없다고.
자신을 용서하고, 과거와 화해하며, 자신이 미워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너그러워지라 충고한다.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어 했는지 생각해내고, 자신이 가진 재능을 떠올리며 자신을 변화시키는데
자신의 죽음을 선고받은 이후라 할지라도, 그 모든 것들을 이루기에 너무 늦은 때는 없다는 걸.
다만, 조금더 바쁘게 움직이고 조금더 열심히 해야 할 뿐이라고.
정말로 어떤 일을 하기에 너무 늦은 경우라면, 그것은 또다른 시작을 위한 기회라고.
세상의 모든 사람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그날이 언제든 꼭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며 말한다.
우리 자신이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바뀔 것은 없지만,
내가 그 확고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사는 동안, 나는 삶을 너무 허비하지 않았나.
죽음을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더 혹독하게 대했고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나를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 과거를 용서할 수 없었고
나를 외롭거나 힘들게 했던 많은 사람들을 비난하고 원망하기만 했던 것은 아닐까.
내 삶이 얼마나 남았고,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책감없이 내 삶을 허비했고, 아직은 덜 열심히 살아도 된다고 내버려 두었던 것은 것은 아닐까.
우리의 삶은 평범한 일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움직일 수 있는 힘은 그 평범함 속에 숨어있다.
때로는 사소하고 일상 속에 있고,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약하고 여린 자신의 내부에 있다.
결국 우리 자신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역사를 움직일 것 같은 대단한 진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있는 그래도 받아 들이고 삶을 사랑하고 안타까워하는 자신의 마음안에 있다.
그래서, 모리의 마지막 수업은 거창하지 않다. 평범한 그의 평범한 말들 뿐이다.
너무 쉬운 말들은 때로 너무 쉽게 읽혀갔고
너무 쉽게 행간을 뛰어넘고 쫒아가다가 문득, 나는 멈춰야 했다.
나는 무엇을 찾고 있었을까. 모리의 삶에서 어떤 비밀스러운 진리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일까.
무엇을 위해서 그토록 재빠르게 누군가의 삶을 탐독하려 했을까.
그에게는 지독하게 안타깝고 사랑스러웠고 그래서 쉽게 작별할 수 없었을 삶인데. 내 행동은 몰염치한 것이였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치열하고 용기있었으며 근엄했던 그의 삶 앞에 내 행동은 옳지 않았다.
나는 책을 덮어야 했다. 하루 이틀, 사흘... 내가 자신을 인정할 때까지 그대로 두어야 했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읽어야 했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쉼보다 더 많은 그의 생각과 더 긴 호흡을 알아채야 했다.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행간을 이루는 단어들이 아니였으니까.
그가 그런 말들로 표현한 것은, 그 말들이 나와 그를 잇는 소통의 한계였기 때문이였다.
내가 그의 긴 호흡과, 여백으로 남겨진 생각들을 읽어낼 수 있다면
나는 그가 내게 말하고 싶어했을 친절하고 절실한 더 많은 충고들을 읽을 수 있다.
삶은 여전히, 어제처럼 내 앞에 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일수도 있고, 모든 것이 변해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거대한 세상이 아니라, 작은 내가 가진 힘이며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받아 들이며, 무엇을 행동할지를 결정할 내 선택이다.
이제 내게 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 있지 않다.
그래서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반짝이며 아름다우며 안타까운지 어렴풋이 안다.
나 자신에게 얼마나 부드러워져야 하는지, 정중해야 하는지를 조금은 안다.
나는 이미 책을 세 번 덮었다. 그러나 모리는 아직도 내게 말을 건낸다.
책속에서가 아니라, 내가 숨쉬는 공기와 내가 느끼는 바람에도 그의 목소리가 있다.
적어도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모든 순간에, 그도 생생하게 말을 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