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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성대담] 피에르 부르디외/ 세계화 뒤켠엔 '세계지배'
때 : 2000년 1월26일
곳 : 파리 콜레주 드 프랑스
피에르 부르디외는 1930년생으로 프랑스의 명문 고등사범학교(대학)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현재 파리 사회과학대학원(EHESS)과 프랑스 최고 학술기관인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회학 교수이며, 유럽사회학연구소를 창설해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부르디외 사회학'의 명성은 “과학의 주방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학문의 비밀주의를 깨고 자신의 이론 수립 과정까지도 밝히는 특수한 방법론에서 비롯된 바 크다. 그는 또 10년 전 현실사회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던 기존의 태도를 공개반성한 이후 다양한 사회운동을 이끌거나 참여하고 있다.
정성배=현재 인류 앞에 제기되고 있는 기본문제는 세계화에 대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먼저 세계화의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부르디외=세계화라는 말 자체가 매우 모호하여 지성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위험한 말이다. 일종의 통일, 평화적 통합이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망각되고 있는 것은, 통합이란 흔히 지배조건이라는 사실이다. 유사한 예는 유럽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2세기의 프랑스나 영국 등 유럽대국의 탄생은 지배의 조건이 충족된 탓이다. 통일을 수행한 사람들이 국가를 창건하고 민족을 통합함으로써 권력을 부여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성직자·귀족 등이 이들 권력자였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통일이 반드시 조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옛날에 국가 차원에서 일어났던 일이 지금 세계 차원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즉 시장, 특히 금융·문화시장의 통일과 함께 관세장벽 등 모든 장벽의 해체가 진행중이다. 그리고 신통신기술에 의하여 가능하게 된 통신의 가속화 등이 중요한 현상으로 부각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가 통일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러한 세계통일은 몇몇 경제금융 강대국에 의한 세계지배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기독교의 교파통합인 것 같은 환상 때문에 세계화의 제국주의, 즉 현재 미국이 지배하고 있는 `소수금융가 인터내셔널'의 제국주의적 지배에 대한 강요가 가리워져 버린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점이 있는데 이것이 함께 파악되어야 한다. 첫째, 세계화 이데올로기는 지배욕이 그 통일 속에 은폐되어 있었으며 둘째, 지배는 역설적으로 통일의 조건이라는 것을 다들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주의 철학은 국경해소를 요구하고 국가의 약화, 관세장벽 인하, 자본의 자유유통 및 외국투자 장애물의 전면처리를 주장하고 있다. 세계화의 옹호자들에게는 국가가 방해물이다. 국가는 경제개혁과 국내시장의 발달을 도모하여 자립경제정책을 지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들은 모든 형태의 보호주의를 막으려 하나 단 지배자 미국의 보호주의는 예외다. 미국이 보호주의를 시행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또한 국제통화기금(IMF)의 이데올로기는 채무국들을 규탄하는데 미국이야말로 지구상 최대의 채무국이다. 그렇다면 피지배국을 위한 기준이 따로 있고 지배국을 위한 기준이 따로 있다는 의문이 생긴다. 자유주의철학의 모순은 그것이 한편으로는 일방통행 격이라는 것(피지배국은 자유주의국가로, 지배국은 보호주의국가로)과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가져온 가시적 결과가 엄청난 경제력 집중이라는 점이다. 자유주의 경제체제란 신고전파이론이 말하는 평등한 경제인간의 순수하고 완전한 경쟁이 아니라 극소수 기업간의 경쟁인 것이다.
정=세계화의 전망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일종의 유일사상이 되어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는가?
부르디외=신자유주의 옹호자들은 그들만이 진리의 독점적 보유자인 것처럼 자처한다.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 이후 그들의 독점적인 인상은 극도에 달했다. 마치 대안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예언자적·종말론적 큰 모델들 때문에 너무나 많은 고통을 받았으므로 그런 것과 조금이라도 흡사한 것을 제안할 의향은 없다. 그러나 현재 국제적 집단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 연구는 아직 암중모색이고, 모순이 많고 어려움도 많다. 연구비 부족도 문제다. 공동연구를 위해서는 국제학술회의도 필요하다. 주지하다시피 자유주의 모델이 유일사상처럼 보이는 이유는 1930년대부터 두뇌집단(싱크탱크), 연구그룹들이 구성되어 부단하고 체계적인 노력을 해온 덕분이다. 미 중앙정보국(CIA)이나 사설기금의 지원이 흔히 있었다. 역사가 케이스 디슨은 데처와 블레어의 신자유주의 사상에 관하여 책을 썼는데 여기에서도 신자유주의 사상을 형성하기 위해서 그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이에 대항하는 쪽은 이들에 비해 물질적 수단이 약하다.
그러나 간단히 말해서 우리 쪽에도 많은 것이 있다. `시민지원을 위한 금융거래 과세실현행동'(아탁·ATTAC), 시애틀 현상…, 그리고 현재 하나의 국제정치의식이 형성중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령 프랑스의 사회운동가들은 한국의 상황에 크게 주목하고 있다. 또 현재 우리 주변에는 노조협회 등으로 구성된 유럽차원의 그룹이 있으며 차차 일종의 인터내셔널이 되고 있다. 오는 9월에는 브뤼셀에서 국제사회운동 총회를 열어 행동원칙과 전략을 채택할 예정이다. 프랑스는 서방선진7개국(G7) 속에 들어가 있는 나라이지만 현재 세계화에 대한 저항이 대단히 강하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영국의 블레어 수상도 집권 이후 신뢰도가 12% 떨어졌다. 남미에서도 대중이 크게 동원되고 있다. 우리는 아시아의 사회운동 단체와도 연락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잠재적 세력을 국제비판운동 세력으로 본격적으로 조직해야 한다(신자유주의의 힘의 하나는 이를 바로 `사회주의자'들이 적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의 보충적 힘이 되며 저항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데 공헌한다).
정=미디어와 문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현재 위협받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부르디외=위험은 포장이 점점 내용물을 지배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책, 영화, 기타 여러 가지 문화산물의 전달을 지배하는 거대기업들이 생산을 지배하는 것이다. 모든 지식인, 연구가, 예술가들의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그들의 작품이 밖으로 전달되지 않을 때 과연 얼마 동안이나 견디어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현대 한국 영화가 국제적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파리에 외국영화 수용시설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사적인 이유 때문이다. 파리는 문화적 국제주의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 국제주의 기능은 점점 위협을 받고 있다. 파리는 끝났다, 파리는 죽었다 하는 소리가 무성하다. 만약 파리가 정말로 죽는다면 한국, 터키, 인도영화의 수용시설도 없어져 버린다. 또 국제작가로서 보편성 있는 작품을 쓰는 사람은 그들의 작품을 낼 출판사를 찾을 수 없게될 위험이 있다. 다시 말하면, 아방가르드 문화의 기초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정=국가의 미래는 무엇이며, 세계화에 저항함에 있어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부르디외=오늘날 스무살이 된 사람이 국제주의자가 아니라면 장차 비싼 값을 치를 것이다. 국제주의자가 되고 모든 비판적 사회운동과 연대한다는 것은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서, 또 나아가 아주 중요한 것들―문화, 문학, 과학 등―을 생존시키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세이다. 인류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왜냐하면 국제세력으로써만 통제 가능한 눈먼 국제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가끔 나에게 어째서 몇 년 전부터 그렇게까지 깊이 사회운동에 참여하는가 라고 사람들이 묻는다. 나는 사실은 항상 참여해왔다. 그러나 내가 학자의 전통적인 역할에서 빠져나와 정치 현장에서 나의 입장을 밝히는 이유는, 상황이 중대하고 우리들 연구가들이 일반 사람들보다 많은 것을 이해하고 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주식시장의 위기는 예견하지 못해도 세상의 큰 경향은 잘 알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일종의 육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침묵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경제제일주의라는 이름으로 현재 세계에서 시행되고 있는 정책의 결과를 언젠가는 발견할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사람들에게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장차 비싼 값을 치를 것이라고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령 국가의 파괴문제를 보자. 나는 국가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국가란 극히 중요한 여러 가지 기능과 과정을 통제할 수 있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희귀한 무기 중의 하나다. 특히 일반이익과 공공서비스 분야에 관해 그러하다. 나는 초국가 또는 세계국가 창립을 전적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유토피아다. 그렇지만 토빈세의 실행은 세계국가로 일보전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케인즈는 세계은행 창설을 주창했는데 이것도 세계국가를 향해 가는 길이다. 그러나 이것도 아직 유토피아다. 그렇다면 이 세계국가가 탄생할 때까지는 부자의 수입을 빈자를 위해 합리적으로 재분배하는 유일한 수단은 국가이다. 그때까지는 국민의 경제와 문화에의 접근 기회를 평등화할 수 있는 수단은 국가밖에 없다. 그러므로 국가가 필요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하튼 한가지 확실한 것은 국가 파괴의 결과는 20년 뒤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가령 20년 뒤에는 도시의 오염 때문에 암환자의 수가 늘어났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나는 의사들이 왜 지금 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최근 들어 오염 탓에 어린이 천식환자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기 시작한다). 또 난폭한 경제발전의 사회적 결과문제도 있다. 빈곤과 범죄의 연관성은 밝혀져 있다. 통계학적으로 볼 때에 범죄,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등은 빈곤과 연관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유일한 대책은 형무소이다. 이것은 미국식 해결방법이라 할 수 있는데 사실 미국은 형무소 분야에 있어서도 리더격이다. 전체 인구 중 감옥에 간 사람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러나 형무소는 폭력을 낳는다. 내가 `폭력보존법칙'이라 부르는 것의 적용케이스다. 즉 유년기에 폭력을 당한 사람이나, 직장 등에서 폭력을 당한 사람은 그 폭력을 다른 이에게 `갚는다'. 불행히도 폭력은 상실되지 않는 것이다. <끝>
출처 : http://www.hani.co.kr/section-007000000/2000/0070000002000020317220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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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을 검색해보니 부르디외가 직접 저술했거나 책 제목에 그의 이름이 들어간 책이 모두 31권이나 된다.
"구별짓기(상하권)", "상징폭력과 문화재생산", "부르디외사회학입문", "텔레비젼에 대하여", "재생산" 만 가지고 있는데, 그나마도 아직 읽지 못하고 있다.
좋은 독서방법이 따로 있을리는 없겠지만 무엇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지... 아시는 분은 충고 좀 해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