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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2006. 6. 8) / [기술속사상] #8 다윈이 얼마나 흐뭇해할까

별도 자동차도 휴대폰도 심지어 머리 모양까지
기술 변화를 생물 진화론 개념으로 은유
돌연변이처럼 기술도 다양한 변수로 선택돼
자연·인공물 본질 달라도 작동원리 같지 않은가

» 화려하지만 버거워보이는 깃털을 가진 수컷 공작의 모습은 쓸데없는 화소 경쟁과 두께 경쟁에 집착하는 휴대폰 제조업체들의 모습과 유사하다. 수컷 공작과 휴대폰 업체는 각각 암컷의 선택과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그런 값비싼 신호들을 보내고 있다.

기술 속 사상 /⑧ 기술 진화론

휴대폰 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카메라 화소를 OO로 늘였다. OO 기능을 추가로 탑재했다. 두께를 몇 mm로 줄였다”라는 소식이 거의 한 달 단위로 들려온다. 바로 얼마 전에는 국내의 모 회사가 출시한 1천만 화소 휴대폰, 7mm 초박형 휴대폰이 세계 최초를 자랑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기사들의 제목은 약속이나 한 듯 거의 똑같다. “휴대폰 진화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사실, ‘진화’라는 단어가 생물학의 울타리를 넘은 지는 꽤 오래됐다. 우리는 ‘별의 진화, ‘자동차의 진화’, 심지어 ‘머리 모양의 진화’를 말하기도 한다. 이때 ‘진화’는 진화생물학자들이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좁은 의미의 용어가 아니다. 그저 어떤 대상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현상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그래서 알고 보면 휴대폰의 ‘진화’는 휴대폰의 ‘변화’와 다를 바 없는 싱거운 제목이다. 하지만 여기에 기자들이 굳이 ‘진화’라는 단어를 쓴 것은 휴대폰이 ‘진보’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아닐까? 그러면 진화는 진보인가?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통념일뿐

기술을 진화론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기술 진화론’)은 기술의 본성과 역사, 그리고 트렌드를 이해하기 위한 매우 의미있는 시도이다. 이때 ‘진화’란 생물학 영역에서 주로 사용되는 좁은 의미의 개념이다. 약 150년 전 다윈은 ‘종의 기원’(1859)에서 자연선택에 의해 생물이 진화한다는 이론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자연선택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변이들(다양성)이 존재해야하고, 그 변이들이 환경과의 적응 측면에서 정도차를 보여야 하며,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유전 메커니즘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자연선택의 원리가 생물계에서만 작동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기술 진화론’이라고 하면 대체로 진화생물학에 등장하는 주요 용어와 개념들을 은유적으로 사용하여 기술 영역에 적용하려는 시도를 지칭한다. 즉, 기술 변화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인 셈이다. 하지만 언뜻 보면 생물 진화론이 기술 현상에 곧바로 적용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가령, 생물 영역에서는 변이가 무작위적으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기술 영역에서는 의도적으로 설계되지 않는가? 또한 생물계에서는 자연선택이 일어지만 인공계에서는 인위선택이 일어나지 않는가? 또한 생명의 역사를 꼭 진보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반면, 기술은 점점 더 진보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기술 진화론에 시큰둥한 사람들은 기술의 출현과 생명의 변이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동 중에도 통화를 할 필요성이 생겨서 휴대폰이 의도적으로 발명되었다는 식이다. 하지만 라마르크 진화론이 아닌 다윈 진화론에 따르면, 짧은 목, 긴 목, 좀 더 긴 목은 환경에 더 잘 적응할 필요성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에 의해 생겨났고, 목이 긴 기린이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에 선택되었다. 그렇다면 “필요는 (생물) 변이의 어머니”는 아니지 않는가?

기술사학자인 바살라는 ‘기술의 진화’(1988)라는 책에서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가 통념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가령, 19세기 중엽에 영국의 한 도시에서는 500종의 망치가 있었고 미국에서는 굴뚝 불꽃 장치가 무려 1000종이나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발명에 집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까운 예들도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 휴대폰의 카메라를 천만 화소까지 늘려야 할 필요가 있는가? 용도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략 오륙백만 화소면 충분하다. 또한 두께가 7mm인 초박형 휴대폰이 과연 사용자에게 필요한가? 너무 얇으면 오히려 만족도가 떨어질 수 있다. 그런데도 휴대폰 회사들은 서로 군비경쟁을 한다. 바살라의 말대로 인간의 기술은 필요의 산물이 아니라 “잉여의 산물”이다. 따라서 통념과는 달리 변이가 발생하는 방식은 생물체나 기술이나 비슷하다.

폰카 경쟁은 수컷공작 꼬리 자랑

» 오징어 눈(왼쪽)은 시신경이 망막 뒤에, 인간의 눈은 시신경이 망막 위에 놓이도록 진화해 기능 차이가 난다.
오히려 진화론적 관점은 쓸데없어 보이는 이런 화소 경쟁과 두께 경쟁을 이해하는데 새로운 통찰을 준다. 화려한 색조의 깃털을 자랑하는 수컷 공작을 본 적이 있는가? 그 버겁고 거추장스럽기까지 한 깃털을 겨우 퍼덕이며 어딘가로 날아가는 수컷의 뒷모습은 정말로 측은하기까지 하다. 생존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필요치 않은, 아니 있으면 오히려 불리할 것 같은 이런 형질들이 왜 자연계에는 만연해 있을까? 마치 최근의 휴대폰 경쟁처럼 말이다.

이스라엘의 진화생물학자 자하비는 자연계에 만연해 있는 잉여의 산물들을 ‘핸디캡 이론’으로 설명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생산비용이 많이 드는 신호일수록 정직한 신호다. 왜냐하면 그것을 생산해낼 자원과 능력이 없는 사람은 결코 그 신호를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신자는 송신자의 신호가 얼마나 많은 비용을 들여 표현된 것인지를 가늠하여 그 신호의 진실성을 파악한다. 수컷 공작이 거추장스럽고 사치스럽게만 느껴지는 길고 아름다운 꼬리를 달고 다니는 이유는 암컷에게 ‘나는 이런 값비싼 깃털을 만들어낼 만큼 건강하고 능력있다’라는 사실을 광고하기 위한 것이다. 즉 핸디캡(거추장스러운 꼬리)을 극복하고 잘 생존할 만큼, 값비싼 신호를 만들어내도 까딱없을 만큼 대단한 존재라는 사실을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만 화소와 7mm 휴대폰은 공작의 버거운 꼬리와도 같다. 그 화소와 두께는 사용 면에서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수 있으나 선택을 하는 소비자에게 계속해서 ‘우리는 다른 경쟁 업체와는 달리 이 정도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라는 신호를 전달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경합하는 기술들이 실제로 어떻게 선택되거나 멸절했는지는 이런 기술력의 차이만으로는 모두 다 설명될 수 없다. 선택압이 하나가 아니라는 뜻이다.

바살라에 따르면 기술은 크게 경제?군사적 요인과 사회?문화적 요인에 의해 선택된다. 예컨대 수차와 증기기관, 자동수확기 등은 경제적 요인에 의해 선택된 경우이고, 트럭과 원자력 기술은 군사적 요인에 의해 선택받은 사례이다. 반면 1960년대의 초음속 여객기 개발 사업과 같은 사례는 정부와 대기업의 전폭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비판 여론으로 무산된 경우이다. 바살라는 일본역사에서 ‘검→총→검’으로 기술 선택이 옮겨갔던 현상을 기술 선택에 있어서 문화가치가 실용가치를 앞지른 사례로 들고 있다. 또한 목판 인쇄가 심미적 이유에서 서양보다는 동양에서 더 널리 전파되었다고 말한다. 기술 선택이 기술 내적인 요인과 외적인 요인들의 복합 작용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더 실용적인 기술을 택하라”등과 같은 전반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기술 선택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런 '트레이드 오프(trade off)'는 생물 진화에서도 보편 현상이다. 인간의 눈과 오징어의 눈을 비교해보자. 인간의 눈은 놀라운 적응이긴 하지만, 시신경이 망막의 앞쪽에 나오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신경 다발이 묶인 지점에 맹점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 다발이 흘러내렸을 때 실명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최적’이라 말할 수는 없다. 반면 시신경이 망막 뒤에 위치한 오징어의 눈은 이 점에서 훨씬 더 잘 설계된 경우이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은, 척추동물의 진화 과정에서 ‘어쩌다가’ 시신경이 망막 앞에 놓이게 되었고 그것이 모든 후세 척추동물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기 때문에 최적이 아닌 적절한 선에서 트레이드 오프가 일어난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술의 진보 문제에 진화론적 관점을 적용해보자. 화소수나 두께 경쟁에서 볼 수 있듯이 적어도 특정 목표에 한해서는 기술의 진보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전반적인 기준에 대해 진보를 말할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생물학자들도 국소적인 진보와 전반적인 진보를 나눠서 진화와 진보의 문제를 보고 있지만, 아직도 합의된 견해가 없다. 진보의 기준에서부터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의미에서 아인슈타인이 박테리아보다 더 진보한 존재라고 할 수 있는가? 똑같이, 어떤 기준에 의해 컴퓨터가 손도끼보다 더 진보한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 장대익/ 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 대우교수
컴퓨터가 손도끼보다 진보인가

언뜻 보면 인공물인 기술과 자연물인 생명은 본질적으로 달라 보인다. 하지만 그것들이 각각 어떻게 생겨나고 선택되며 전달되는지를 살펴보면 둘 간의 차이가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대상만 다를 뿐 작동 원리는 똑같은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기술 진화론은 바로 그 원리에 주목하여 기존의 기술학 분야에 새로운 통찰을 준다. 기술 영역으로까지 자신의 진화론이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다윈은 얼마나 흐뭇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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