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Ritournelle > 개념어 사전: 개념 확실히 잡아줄께

잠깐독서

<개념어 사전>(들녘 펴냄)이 나왔다. 개념이란 ‘구체적인 사회적 사실에서 귀납하여 일반화한 추상적 지식’. 철학, 역사, 과학적 사실이나 현상을 설명하거나 이해하는 데 유효하고 이론을 전개하는 도구가 된다. 지은이는 인문학 분야 책을 쓰고 번역하는 일을 하는 남경태씨.

지은이는 사전적 정의보다 전반적인 이미지를 드러냄으로써 154개 항목의 개념어를 설명한다. 개념을 바탕한 이론이 무르익으며 또다른 개념을 낳으므로 개념들은 연관되고 중첩되어 단일한 의미보다 복합적인 뜻을 가지기 때문.

예컨대 ‘사관(史觀)’. “과거는 다 안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로 운을 뗀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을 두고 한국에서는 의사, 일본에서는 테러범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들어 사관이 다르면 역사해석이 달라짐을 예거한다.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을 두고 시해니, 의거니 하는 까닭도 마찬가지.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피라미드 건설, 수양제의 화북~강남 대운하 건설이 당대와 현재의 평가가 다름을 들어 시대에 따라 관점이 달라짐을 설명한다.

‘주체인 나는 대상인 강아지를 주변세계와 함께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있다’식 대신 ‘나는 강아지를 보고 있다’고 깨놓고 말하는 것도 특징. ‘민족주의’ 항목. 전두환 군사독재가 지배하던 1980년대에 진보적 정치 세력의 일각에서는 우리사회가 경제·군사적으로 식민지 상태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다는 판단에서 민족주의 노선을 택했다면서 이를 일종의 좌익 민족주의라 본다. 평왈, 길가던 개도 웃을 황당한 현상이었다.

변증법-변증법적 유물론-자본주의-사회주의-노동-착취-상품 등 고구마 캐듯 읽어 체계를 잡을 수 있다. 또는 처음부터 가나다 순으로 읽음으로써 분야를 넘나들어 지루함을 덜 수도 있다. 어렴풋하던 개념이나, 덩달아 아는 척하던 개념이 확실히 잡힌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172419.html

 

* 아래는 한국일보에 실린 기사를 옮겨논 것이다. 확인하시고 참조하시길 바란다.

 

"인문학 개념, 사전부터 찾지 말고 그림을 그려보세요"
'개념어 사전' 펴낸 남경태씨

우리가 많이 보는 대형 국어사전은 인터넷을 ‘전 세계의 컴퓨터가 서로 연결되어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 통신망’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개념어 사전>(들녘 발행ㆍ452쪽ㆍ1만3,000원)은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의 시선을 빌어 인터넷을 설명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노동자가 토지에서 해방돼 법적, 정치적 자유를 얻는 동시에 새로이 자본에 경제적으로 예속된다는 점에서 이중적이고 분열적이다. 인터넷은 그 같은 이중적, 분열적인 속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인터넷은 본질적으로 자체의 내용을 가지지 않은 매체-비유하자면 인터넷은 자동차가 아니라 자동차를 달리게 하는 도로일 뿐이다-이지만, 광범위한 정보를 매개하고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므로 들뢰즈와 가타리가 보는 분열증, 이중성과 닮은 꼴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처럼 <개념어 사전>은 각 개념에 대한 설명을, 그 개념의 탄생 배경 및 역사적 사회적 맥락 등과 연결해 파악한다.

저자인 남경태(45)씨는 <문학과 예술의 문화사> <세상을 바꾼 문자, 알파벳> 등 70여권을 번역한 1급 번역자이자 <종횡무진 한국사> <한눈에 읽는 현대철학> 등 대여섯 권의 저자이기도 하다.

“자연과학과 달리 인문학의 개념은 단일한 의미보다 복합적인 뜻을 지니고, 하나의 개념도 인접 개념과 연관되고 중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개념을 이해할 때는 사전적 정의보다 그 개념에 관한 전반적인 이미지를 얻는 것이 올바른 이해의 방법입니다.”

그가 말하는 ‘개념에 대한 이미지’는 하나의 개념을 전체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너, 잘났다’라고 말하는데 이를 문자 그대로만 받아들이면 ‘잘 났다’라는 뜻이지만, 앞 뒤 흐름을 헤아린다면 ‘너, 잘난 척 하지 마라’라는, 정반대의 뜻이 됩니다. 인문학에서 말하는 각종 개념은 이렇게 해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책은 권력에 대한 설명에서도, 지식이 곧 권력이라는 철학자 미셸 푸코의 주장을 차용한다. 이성이 지배하던 시대에 인간을 몽매한 상태에서 해방시킨 지식이 이제는 권력과 하나가 돼 도리어 억압과 질곡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사례를 말해주는 퀴즈를 덧붙인다. 의사가 라틴어로 처방전을 쓰고 약사가 약을 잘게 갈아주는 이유는? 답은 환자가 자신의 증상이 가벼운 감기라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하고, 환자가 받은 약이 실은 아스피린이라는 것을 모르게 하기 위해서란다.

책에는 가상현실, 담론, 디아스포라, 마녀사냥, 모더니즘, 신자유주의, 엄숙주의, 유물론, 자본주의, 제3의 물결, 창조론, 카오스, 파시즘, 패러디, 하이브리드 등 150여 개의 개념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다. 대부분 우리가 오래 전부터 사용했거나 익숙한 것들로 저자가 책을 쓰면서 메모해놓은 철학 역사 심리학 예술 등 인문학 전반의 개념들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용어 사전이 아니라 인문학의 지적 탐색이다. 각 개념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이 그 자체로 책 한 권씩을 압축한 것 같아 인문학적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은근한 재미를 준다.

그렇다면 저자의 말처럼, 인문학의 개념들은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그는 무엇보다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눈으로만 읽지 말고 그 의미를 되씹어 보자고 한다. “책에서 뭔가를 뽑아내려고만 하지 말고, 책을 나의 사고 작용을 촉발하는 수단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한 가지 개념의 사전적 정의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이 말하는, 혹은 그것이 형성된 역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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