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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르츠 바스켓 8
타카야 나츠키 지음, 정은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나 판타지 소설을 볼 때 내가 별로 안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주인공에게 너무 과한 불행을 안겨주는 설정이었다. 아니 그것이 그 이야기를 진행해나가는데 당연히 필요해야할 요소가 아니라, 단지 그 '불행'을 통한 독자들에 대한 '동정'만을 끌어내기 위한 매체로 쓰이는 것이 맘에 안들었던 것 같다. 그런 것을 거북함없이 그려내는 재주(또는 이야기를 돌려내는데에)가 진짜 일류 작가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썬 후르츠 바스켓은 왠지...? 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작품이었다.
그냥 한번 보고 말 것이라면 재미있고 부담스럽지 않아 좋긴 하지만 만약 그것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을 느끼고 싶다고 생각하며 읽었을 때엔 영 씁쓸한 것이, 마치 너무 오래 우려낸 녹차를 마시는 기분이다.
주인공인 혼다 토오루와 그 주변 인물들이 안게 된 그 불행에 대한,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고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여는 모습. 표면만 보면 그럴싸한, 어쩌면 눈물도 흘릴 수 있지 않을까한 감동적인 스토리. 하지만 내가 이 작품을 두세번 반복해서 읽으며 생각했던 것은 작가가 너무 성급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토오루에게 떠맡기는 설정은 주인공 자신에게도, 읽는 독자에게도 꺼름직을 준다. 그래, 적어도 유키나 쿄우같은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 일어섰다! 라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감동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도대체 이 이야기에서 토오루는 모조히 해결사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캐릭터들은 빛을 발하지 못한다. 겉보기엔 매력적이더라도 내면을 뒤져보면 인간적으로 동조되는 부분을 전혀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속빈 강정이라고 표현하면 맞으려나. 도대체가 장기말처럼 무미건조하게 작가에게 휘둘려지는 그 모습이란. 아니, 설정 자체는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납득시키지 못한(적어도 내겐) 작가에겐 그 책임이 있다. 작가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매우 서둘렀고, 때문에 그 '의도'는 매우 노골적이었기에...
'날개의 전설'보다는 확실히 그림도 내용도 나아지긴 했지만 글쎄. 많은 일본순정만화가들이 말도 안되는 것으로 동정과 감동을 유발하려 하는데, 후르츠 바스켓의 작가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무서운 작가라 느껴졌다.-_- 설마 산업성과 작품성을 한꺼번에 쥐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겠지...잔머리는 꽤나 굴렸던 것같지만 좀 더 여유있게 그렸더라면 훨씬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는데. 한가지 예로 후르츠 바스켓과 비슷한 '펀펀 공방'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에서의 작가는 크게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진전시키며, 감동을 줘야할 때는 독자들이 노렸다. 라는 느낌을 받지 않는 한도에서, 슬그머니 입가에 미소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준다. 하지만 후르바 작가는 그런 의미에서, 물론 자신의 취향과 신념대로 였겠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노렸기 때문에 싫다.'
너무나 명백한 오버-_-이기 때문에 때로는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있다. 개인적으론 작품에서 자신의 무언가를 강요하는 듯한 작품은 그 의도가 희미하더라도 일단 싫어하고 보기 때문에 글이 별로 객관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작품 자체에는 큰 반감은 없는데 작가가 싫었기에 이런 엉뚱한 비난글이 되었다.
만약에 작가에 관한 생각없이 그저 만화 자체를 즐기고 싶다면 매우 재미있는 만화이기에 별을 세개 주었다. 꽤나 엄살떠는 만화이지만, 만약 그것도 애교로 볼 수 있는 아량넓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별 네개 정도는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은근슬쩍'이라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나로썬 별로 그리 좋은 느낌의 책은 아니었지만...그래도 나올 때마다 꾸준히 보고 있으니 어느 정도 추천받을만 하지 않을까? 그림이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게 그렇게 크게 신경쓰일 정도는 아니고, 개그도 무척 재미있으니까.<-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부분
하지만 역시 이런 겉치레식 감동을 노리는 만화가 점점 많아진다는 것은...-_-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