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파란여우 > 사랑에 관한 7가지의 다른 색깔
오페라 읽어주는 남자 - 오페라 속에 숨어 있는 7가지 색깔의 사랑 이야기 명진 읽어주는 시리즈 2
김학민 지음 / 명진출판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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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를 읽어 준다고? 그림도 읽어주고 음식 맛도 읽어주는 세상에서 오페라까지 읽어주는 책이라니. 오페라는 대중문화의 범주 안에 포함 되는가 아닌가 하는 명제 앞에서 잠시 망설이게 되지만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교도소 마당가에 울려 퍼지던 피가로의 결혼 중 ‘꽃의 이중창’을 들으며 부드러운 여가수의 아리아를 누구든 아름답게 듣지 않을 수 없다. 어려운 라틴어로만 들리던 멜로디는 어느새 가슴속에 자리 잡는다. 우리의 판소리처럼 서양의 오페라는 시적인 감성과 희곡적인 장치에 의하여 무대를 연출하게 만들고 무대아래 관객들은 이 두 가지 요소로 만드는 오페라의 주인공들과 그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를 들으며 울고 웃는다. 이 책이 저자의 오페라 일반화, 대중화를 목전에 두고 만든 책이니만큼 전문지식을 요구한다면 분명 실망할지도 모른다.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각종 사진과 그림까지 곁들인 이 책은 전문지식을 알기 전에 초보자로써 반드시 입문해야 할 첫 번째 단계의 서정적 교양서적이다. 단편 소설 모음집이라고 여긴다면 이 책을 읽는 부담감은 이내 떨쳐진다.


자, 그럼 이 책에 수록된 7편의 사랑이야기를 들어보자. 어차피 오페라는 사랑이야기의 시적인 요소를 배경으로 깔아야 극적이고 근사하지 않던가. 사람 사는 일이 결국엔 ‘사랑’하기 위함이다. 그 사랑의 다양성을 7가지 이야기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1. 트리스탄과 이졸데

은밀한, 미완성이기에 더욱 갈망하게 되는 욕망, 낮이 아닌 밤의 삶, 삶의 열정이 아닌 죽음으로 치닫는 열정, 이러한 것들이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끝없는 동경이나 사랑의 관능적인 기쁨을 표현하는데 있어 놀라울 만큼 최고의 성애와 관능의 이야기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에 이졸데가 죽는 장면은 ‘무한한 사랑에 대한 영혼적 동경’을 보여줌으로써 죽음을 소원하는 영원한 사랑의 형태를 나타낸다. 오작 밤의 장막 안에서만 허락된 사랑의 끝은 그렇게 독약처럼 감염이 되고, 죽음으로 사랑을 완성한다.

나의 피여, 기쁨에 넘쳐 흐르라.

나의 상처를 닫아줄 그녀.

내게로 와 나를 구해주오.

이렇게 세상을 마감하고 그녀에게로 환희 속에 달려가리!


2. 카르멘

니체는 이 오페라를 관람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전에 무대에서 이렇게 참혹하고, 이렇게 비극적인 곡을 들을 수는 없었다.” 차이코프스키는 “이 가극은 반드시 세계를 정복할 것이다.”고 했다. 그들의 말처럼 전 세계에 책임감 없고 방탕한 바람둥이의 대명사처럼 된 카르멘. 하지만 그녀는 자유와 욕망을 쫓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카르멘은 이제까지 다른 여인네들이 보여주던 지고지순한 여인이 아니다. 그녀는 리얼하고 다이나믹하다. 그녀의 불꽃같은 이야기는 별로 시덥잖은 허영과 겉치레의 프랑스 오페라 무대에서 스페인풍의 정열적인 자유분방함과 뜨거움으로 달구어진 한 떨기 짙붉은 흑장미다. 사랑은 식었지만 미진한 정 때문에 상대에게 구속될 수 없는 원초적 자유의 피를 가진 여자. 유혹에 약한 남자들이여! 정신을 가다듬지 않으면 죽음으로 불러들이는 악마의 꽃이 그대를 삼킬지도 모른다. 역대의 여러 가수들이 불의 화신인 카르멘을 연기했지만 그 중 마리아 칼라스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녀의 강렬하고 고혹적인 검은 눈동자, 흡입당할 것 같은 육감적인 입술, 아니 그녀의 다이나믹한 현실속의 삶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카르멘은 얌전히 앉아서 자기를 사랑해 줄 남자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을 찾아 무엇이든, 어디든지 갈 수 있으며 그것이 사라졌을 때는 언제든지 스스로 벗어 던질 수 있는 사랑  앞에서 능동적이고 개척적이며 도발적인 여인이다.

달콤한 말로 유혹하는 남자보다

난 차라리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 남자가 더 좋아

날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난 너를 사랑할 수 있어.

까만 머리에 검붉은 장미꽃을 꽂은 여인이 당신 앞으로 다가와 당신을 사랑의 그물 속으로 끌어당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번쯤 마약 같은 여인의 향기에 취하고 싶어도 좋을 일. 다만, 목숨을 담보로 한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기를.


3. 코지 판 투테

‘여자란 다 그래’ 여자의 마음을 믿을 수 없다는 남자들의 마음이란...남녀간의 애정의 신뢰문제를 다룬 이 오페라는 여자의 지조에 대하여 할말이 많다.

여자의 지조는

마치 아라비아의 불사조 같은 것!

모두 그것이 있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실제 본 사람은 없지.

두 어린 자매는 겉으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변심하지 않고 약혼자를 기다릴 수 있다고 믿지만, 그들의 나약한 의지는 ‘불’과 ‘화살’이라는 이미지로 에로티시즘적인 욕구에 무너지고 남자의 유혹 앞에 넘어간다. 모차르트가 그려내는 비교적 경쾌하고 단순한 이미지는 그 뒤에 에로틱한 욕망과 환상을 그려낸다. 이 오페라의 이탈리아어 원판에는 상당히 야한 음담패설이 담겨 있다고 하니 모차르트의 인간 내면을 읽는 기술이 어느 정도인지 알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여자의 지조를 시험하면서까지 사랑을 구하려 하는 남자들의 마음이란 도무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나약한 여자들이여, 유혹에 넘어가지 말기를. 발을 잘 못 디디면 절벽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대의 발걸음을 조심하라. 그래도 끝내 그들이 헤피엔딩이라니 가슴 졸이던 나는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남자들이여, 제발 사랑 갖고 장난치지 말자. 나처럼 심장 약한 여자들은 고통스런 시험을 극복하지 못한다.


4. 살로메

헤롯왕과 그의 의붓딸 살로메. 그리고 세례요한의 비정상적인 삼각관계와 근친상간이라는 자극적인 이야기 살로메. 처녀이지만 관능적인 살로메의 악마와 같은 어긋난 사랑의 방법을 불온하고 저속하며 음울하게 보여주는 오페라다. 일방적 사랑에 대한 잘못된 방식은 사랑하는 남자의 목을 요구하고 그제 서야 자신의 소유가 되었음을 확인하는 악녀 살로메를 보면 사랑은 치명적인 함정 같은 것이다. 왜곡된 사랑이라고 비난하지 말라. 그것은 다만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을 뿐이다. 내가 숫처녀로써 당신을 맞이할테니 당신 또한 나에게로 와 영원한 나의 소유가 되어다오. 하는 이런 식의 소름 돋는 순수함의 위장을 결코 놓치지 말기를.

저 달은 은빛 꽃과도 같아

차갑고 정결한...

그래 저건 순수함으로 끝까지 남은

숫처녀의 아름다움이지.


5. 오텔로

여성의 무고함, 사랑과 희망의 상실을 농축되고 강렬하게 다룬 작품이다. 불타는 질투는 결국엔 파국으로 결론이 나고, 인간은 그렇게 나약한 존재이다. 남부러울 것 없는 아리따운 백인 여인이 흑인 장군을 만나면서 사랑하는 남자인 그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설정 자체가 이 극의 흥미를 더해줄 수 있는데, 오페라에서 흑인이 주인공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은 극적인 요소를 노린 것이지만 결국 흑인의 질투로 인하여 그의 아리따운 여인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흑인의 백인에 대한 열등감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여 진다. 그러나 어쨌든 질투는 사랑의 독약이고, 듣고 싶은 것만 들려 줄 수 있는 사랑이라면 세상의 모든 사랑의 비극은 없었으리라. 맨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의 환희로 가득하던 사랑의 이중창은 그러므로 이별의 이중창으로 바뀌고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어리석은 질투였다고 죽어가는 그녀에게 마지막 입맞춤으로 말하지만, 그러나 어리석은 자여. 그것은 이미 사랑의 이름이 아니다.

당신을 죽이기 전에 이렇게 그대에게 입맞췄지

이제 나 죽어가면서 어둠 속에서

그대에게 입맞춤을....

한 번 더 입맞춤을...


6. 돈 지오반니

호색한 지오반니의 여성편력 유형을 살펴보자. 여름에는 마른여자, 겨울에는 통통한 여자, 물론, 영계를 제일 좋아하지만 여자목록의 숫자를 채우기 위하여 나이 든 여자도 마다하지 않는다. 치마만 둘렀다 하면 주변 상황은 아랑곳없이 접근하는 게 모차르트가 그려낸 조반니의 모습이다. 여성편력에 대한 아무런 죄의식이 없는 그의 가치관은 섹스 중독증 환자이지만 세상일이란 사필귀정이다. 많은 재산과 상류층이라는 신분, 세련된 매너는 여성들에게 취약점이고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팠던 지오반니는 바람둥이의 대표 명사로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 남자들은 한 번쯤 지오반니와 같은 능력을 동경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그럴려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용기도 함께 갖출 수 있기를.

술이 취할 때 까지 연회를 마련하라. 술이 끝나면 춤을 추자.

거리에 연인이 있으면 아무라도 데리고 오라......

그 사이에 나는 아무나 골라서 내일 아침까지는 명부에 10명을 늘리지 않으면 안 된다.

지옥의 제일 밑바닥 어둡고 습하고 괴로운 통로에나 떨어져라, 이 바람둥이 짐승아!!!


7. 피가로의 결혼

고대 봉건 시대의 잘못된 관습인 ‘초야권’이라는 참으로 추하고 비인간적인 영주의 권리에 대항한 피가로의 재치 있는 행동으로 지배층의 문제점을 고발한 작품으로 모차르트의 3대 가극 중에서 가장 많은 상연을 한 작품이다. 프랑스 혁명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평도 받지만 모차르트는 원작에 비하여 그의 특유의 명랑함과 재치로 위기에 처한 서민을 구하고 지배계층의 독선과 위선을 개심하게 만든다는 내용이다. 바람기 많은 남편을 용서하는 백작부인의 사랑은, 사랑은 법보다 강하고 용서는 사랑보다 강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용서하기 위하여 분노하고 아파해야 하는 시간의 계곡을 지나 마침내 그를 포용한다는 것은 불완전한 나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한 것이니, 용서야 말로 진정한 사랑이라는 그런 의미로 모차르트는 피가로라는 영민한 재치꾼을 등장시켰을까. 완전한 사랑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하여 세상은 왜 이리 극복해야할 난관과 넘어가야할 험준한 산맥이 많은 건지.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가야 하는 운명 앞에 때로는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아직 밤의 어둠 속에 세상이 잠들어 있는 동안,

시냇물 재잘거리고 산들바람 부네요.

........................................................

모든 것이 사랑의 환희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니 이리 오세요.

 

- 사 족 -

웅장하고 거대한 무대와 등장 배우들의 화려한 몸놀림과 과장된 그들의 묘사와 일반 대중예술의 공연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고가인 입장료 등을 보면서 오페라가 진정 대중화에 성공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의구심을 떨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공연되는 오페라의 소재는 서양 작가의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간혹 국내 작가의 창작 작품이 오르기는 하지만 그것을 한 급수 낮다거나 어색하다고 평하는 국내의 오페라계의 기류에 대하여 나는 불만이다. 어차피 오페라는 서양식 판소리이고, 그것을 우리 것으로 온전하게 옮겨오기까지는 더 많은 투자와 공부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우리 오페라의 창작품이 엉성하다는 것을 이유로 흥행위주의 서양식 유명 오페라를 답습만 하고 있는 처지는 안타깝지만 그래도 열악한 우리 오페라를 우리가 지켜 봐주지 않는다면 누가 봐 주겠는가. 그러므로 이 책의 저자인 김학민이 보석을 캐는 심정으로 우리의 창작 오페라에 대하여 제2권을 쓸 수 있는 좋은 시절이 왔으면 하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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