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과 기분
김봉곤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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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곤, 시절과 기분.



나는 혜인이 좋은 이유를 한 열가지는 숨 한번 쉬지않고 말할 수 있었는데,

사실 고민하고 말 것도 없이 나의 마음은 예스였다.

#1

그 때의 너와 나, 사랑이었을까?

나는 읽으면서 '나'와 혜인이 애인이라기 보다는 친구라기엔 가깝고, 애인이라기엔 거리가 있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정체성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잘 몰랐던 그 때의 나와 모든지 능숙해보이는 혜인의 연애는 토스트를 먹다가 시작되었다.

나는 이 부분에서 혜인이 굉장히 시원시원하고 또 물불 안 가리는 당찬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고백을 받은 다음 날,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꾸미고 오는 것이 아닌 더 후리하게 입고 온 혜인을 보고 더 그녀에게 반한다.

이 소설의 반전이자 웃긴 부분이었다.

​

고백도 가벼웠고, 만남도 가벼웠고 또 헤어짐도 가벼웠다.

토스트를 먹다가 고백을 받고, 연애를 했고, 갑자기 혜인이 잠수를 탔고, 다시 재회했을 때도 절절한 연인의 모습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이랬던 연애였기에 더 기억에 오래 남을 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남들과는 달랐던, 그런 여자애. 그리고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좋아했다고 생각한 여자애.

사랑이라고 부르기 뭐한, 그렇다고 우정은 아닌.

딱 <사랑과 우정사이>라는 곡이 어울리는 나와 혜인의 연애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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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지만, 가볍지 않고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고

이런 감정을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이런 아슬아슬한 경계를 이렇게 잘 표현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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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나의 세계를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는데,

그 시절의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모르고 관심도 없다는 사실은 내 용기이기도 했다.

#2 혜인은 알고 있었을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 '나'는 끝까지 혜인에게 말하지 못한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나 성소수자다' '나를 알아봐달라'고 말하는 나와

혜인에게 말하지 못하는 '나'를 보았을 때 약간의 갭이 느껴졌지만, 그것조차도 이해가 됐다.

비밀은 나를 잘 모르는 익명의 다수에게 말했을 때, 오히려 더 편해질 수 있을 수도. 라고 생각해서였다.

익명의 다수가 '나'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고 인터넷에 욕을 쓰든 뭘 하든 사실상 신고나 고소를 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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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혜인은 그렇게 넘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을 것이다.

첫 사랑, 사랑을 잘 알지 못했을 때의 풋사랑 그리고 동시에 미안한 감정.

그리고 그녀에게서 외면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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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저런 생각을 한 것일 것이다.

그녀가 나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나는 좀 더 편안해졌고, 그것은 나의 용기가 되었다고.

그 용기라는 것은 혜인을 마주할 용기일까? 아니면 굳이 나의 이야기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었을까.

'나'의 이런 짧은 문장에서도 이런 건 아닐까, 저런 건 아닐까라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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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의문이 든 게, 과연 혜인이 몰랐을까 라는 점이다.

나는 읽으면서 이미 혜인이 '나'의 정체성을 알고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그 일이 정말 <아무렇지 않기 때문에>

지금 다시 재회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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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인은 아무렇지 않게 나와 그 시절을 회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것은 '나'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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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혜인이 다 알면서 태연한 행동을 취하는 반면에

마지막에 결국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답답하기도, 또 이해가 되기도 했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하지 못했을 때, 가장 답답한 건 본인일테니까.

그 답답함이 내 목구멍까지 차오를 정도로, 섬세한 감정묘사가 이어져서

김봉곤 작가가 이러한 감정묘사를 굉장히 잘 한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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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심장의 무늬를 구별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답을 찾고 싶지도 않았다.

#3 결국 나의 몫으로 남은 고백

혜인을 만나러 가면서 '나'는 말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고백하기 좋은 타이밍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혜인에게 책을 건네주고 기차역에서 헤어지는 순간까지 목구멍에 차오른 말을 끝내 뱉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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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났을 때, '나'는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혜인이 알지 않을까? 아니,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결국 '나'는 어떠한 답도 찾지 않는다.

선택지 중에서 아무런 답을 선택하지 않고 그대로 엎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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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것이 시험이었다면, 틀린 답이 될 수도 있다.

답을 고르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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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이것조차도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망쳤지만, 그마저도 '나'의 선택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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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나'가 다른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중에 가서 말을 할 수도 있고,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지금은 서글프고, 답답하지만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현재도 미래에는 회상할 수 있는 추억이 된다.

마치, 혜인과 '나'가 다시 만나 옛날의 연애같지도 않았던 연애를 회상하며 웃고 떠든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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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향한 답답함과 서글픔 그리고 애잔함이 동시에 들면서

나도 한 번 쯤 해보았던 '풋사랑'에 대한 기억이 마구 떠오르게 하는 책

<시절과 기분>, 소설집에 실린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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